
13년째를 맞는 이번 가을은 유난히 춥게 느껴진다.
작년 이맘때, 우리는 “무지의 용기“에 대해 썼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시작할 수 있었고, 그 순수함이 12년을 버티게 해준 원동력이었다고. 그때의 글을 다시 읽어보니 낭만적이다. 지금은 그런 낭만을 쓸 여유가 없다.
지난 몇년 간 스타트업 생태계는 혹독했다. 투자 시장은 얼어붙었고, 수많은 기업이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어떤 곳은 문을 닫았고, 어떤 곳은 간신히 버티고 있다. 우리가 인터뷰했던 창업가들에게서 오는 연락이 예전과 달라졌다. “투자 유치했습니다”가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을 바꿨습니다”, 팀을 줄였습니다”, “사업을 정리합니다”는 소식이 더 많아졌다.
플래텀도 다르지 않다. 미디어 산업 전체가 어렵다. 광고 시장은 위축되었고, 구독 모델은 생각보다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득 깨닫는다. 창업하고 처음 몇 년은 기쁨의 연속이었다. 성장하는 게 느껴졌으니까. 매달 독자가 늘었고, 창업가들이 우리를 찾았고, 생태계 안에서 우리의 자리가 만들어지는 게 보였다. 그때는 모든 게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허리가 굽어지는 게 느껴진다. 겸손해져서가 아니다.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게 많아져서다.
초기에는 몰랐다. 한 줄의 기사가 창업가에게 어떤 의미인지, 우리가 쓰지 않은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큰 침묵인지. 미디어의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 13년이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모르고 시작했는지 알게 되었다.
얼마 전, 스타트업 생태계에 오래 있었던 선배 창업가가 말했다. “플래텀 글에서 따뜻함을 느낀다”고. 고마운 말이었다. 우리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읽혀진다니. 어쩌면 그것이 13년 동안 우리가 배운 것인지도 모른다. 화려하게 쓰는 법이 아니라, 따뜻하게 듣는 법.
올해 들어 취재 요청이 줄어들 거라 예상했다. 좋은 소식이 없으니 인터뷰할 것도 없을 거라고. 실제로 투자 유치 기사는 확연히 줄었다. 하지만 창업가들이 우리를 찾는 빈도는 오히려 늘었다. 다만 이유가 달랐다.
“저희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나요?”
최근 한 창업가는 이렇게 말했다. “몇 년 전에는 투자 받았다고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어요. 지금은 팀 절반을 보내고 사업 방향을 완전히 바꿨는데 아무도 관심 없더라고요. 근데 이상하게 지금이 더 진짜 같아요. 그때는 뭔가 둥둥 떠있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발이 땅에 닿아 있는 느낌이랄까요.”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두 시간이 넘는 대화 끝에, 우리는 그가 왜 계속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플래텀이 가장 힘들 때 우리의 존재 이유가 가장 명확해졌다. 광고 문의 전화가 뜸해지고, 구독자 증가가 더딜수록,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가 분명해졌다. 화려한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묵묵히 버티고 있다는 것을 기록하기 위해.
잘나갈 때는 누구나 이야기를 한다. 어려울 때는 침묵한다.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성공 스토리는 경쟁적으로 다루지만, 실패하거나 버티는 이야기는 외면한다. 그런데 생태계는 성공 스토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이사이,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고, 버티고 견디는 시간들로 채워진다.
13년을 하면서 우리가 찾은 역할은 그것이다. 침묵하는 시간을 기록하는 것. 누구도 주목하지 않을 때 여전히 듣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따뜻하게 전하는 것.
작년에 우리는 “너무 많이 알면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썼다. 지금은 다르게 말하고 싶다. 많이 알게 되었다.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지, 한 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더 따뜻하게 쓰려 한다.
13이라는 숫자가 불길하다고들 한다. 13년째는 분명 쉽지 않다. 하지만 12라는 완성된 사이클을 넘어섰다는 것은, 우리가 이제 다른 이유로 이 자리에 있다는 뜻이다. 낭만이나 희망이 아니라, 필요와 책임 때문에. 그리고 누군가 우리의 글에서 따뜻함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여전히 매일 아침 책상 앞에 앉는다. 허리는 굽어졌지만, 듣는 귀는 더 열려 있다. 놓치지 말아야 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지금 이 시간을 기록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몫이다.
지금 버티는 모든 창업가들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도 이 말을 하고 싶다. 우리는 여전히 여기 있다. 앞으로도 여기 있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누군가도 여전히 여기 있으니까.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할 사람이 필요하니까.
플래텀 대표 조상래, 편집장 손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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