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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1

기사 제목은 이랬다. ‘수평적 문화의 정석, IT 스타트업 A사를 가다’. 사진 속 사무실은 칸막이가 없었고, 대표는 직원들과 같은 책상에 앉아 있었다.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우리는 직급이 없습니다. 서로 이름을 부르죠. 누구나 의견을 낼 수 있고, 좋은 아이디어는 바로 실행됩니다.

나는 그 기사를 세 번 읽었다. 왜 세 번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손이 스크롤을 올렸다.

전 직장에서 퇴사한 지 두 달째였다. 중견기업. 칸막이와 직급과 보고서의 세계. 거기서 나는 부장님이 좋아하는 안을 미리 파악해서 그 방향으로 기획서를 쓰는 법을 배웠다. 회의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회식에서 술을 따르고, 연말 평가에서 감사합니다 하는 법을.

채용 페이지도 봤다. ‘우리가 원하는 사람: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 나는 지원서를 썼다. 면접에서 대표가 물었다. 왜 오고 싶으세요? 나는 말했다. 일하고 싶어서요. 그가 웃었다. 어떤 일이요? 제대로 된 일이요. 무슨 뜻인지 나도 정확히 몰랐다.

합격 메일을 받은 날 밤, 나는 치킨을 시켰다. 혼자 사는 원룸이었다. 배달이 왔을 때 현관문을 여는데 손이 떨렸다. 왜인지 몰랐다. 치킨 박스를 식탁에 놓고, 맥주 캔을 땄다. 푸시, 소리가 났다. 갑자기 조용하다는 걸 알았다. 텔레비전을 켰다. 아무 채널이나. 소리가 필요했다. 닭다리를 뜯는데 기름이 턱을 타고 흘렀다. 닦지 않았다. 두 조각 먹고 멈췄다. 배가 불렀는지 아닌지 몰랐다. 맥주를 마저 마시고 누웠다. 천장을 봤다. 기쁜 건지 무서운 건지, 그것도 몰랐다.


2

입사 석 달째 되던 화요일이었다.

전체 회의가 있었다. 신규 서비스 론칭 방향을 정하는 자리. 회의실에 스물네 명이 앉았다. 대표가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자, 오늘은 정해진 거 없어요. 자유롭게. A안이든 B안이든, 아예 다른 안이든.

잠깐 침묵이 흘렀다. 개발팀의 준호가 손을 들었다. 입사 사 개월 차, 나보다 한 달 먼저 온 사람이었다. 저는 B안이 나을 것 같습니다. 이유는 세 가지인데요—. 그는 조리 있게 설명했다. 사용자 데이터를 인용하고, 경쟁사 사례를 들었다. 나는 옆에서 들으면서 생각했다. 준비를 많이 했구나.

대표가 끝까지 들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분석이에요. 그리고 잠깐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근데 저는 A안으로 가고 싶어요. 대표의 설명도 길었다. 논리도 있었다. 다만 결론이 먼저 있고 이유가 따라붙는 느낌이었다. 회의는 A안으로 끝났다.

그 뒤로 전체 회의에서 준호의 손이 올라가는 걸 보지 못했다. 한번은 대표가 직접 물었다. 준호 씨 생각은요? 준호가 대답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게 전부였다. 대표가 다음 사람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날 점심, 나는 혼자 편의점 삼각김밥을 먹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비닐을 뜯으면서 준호 생각을 했다. 괜찮습니다. 그 말이 계속 떠올랐다. 참치마요였다. 맛은 평범했다.

넉 달째, 슬랙에서 이상한 패턴이 보였다. 대표가 전체 채널에 글을 올리면, 이모지가 달리는 순서가 있었다. 누가 먼저 다는지. 어느 날 기획팀장이 휴가를 갔다. 대표 글에 이모지가 삼십 초 동안 안 달렸다. 이상하게 긴 삼십 초였다. 결국 초기 멤버 중 한 명이 달았다. 🔥. 그제야 다른 이모지들이 따라 붙었다.

나는 그걸 보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웃긴 건지 슬픈 건지. 그날 저녁 버스에서 고등학교 때 생각이 났다. 교실에서 인기 많은 애 주변에 몰려들던 풍경. 뭐가 달라진 걸까.

다섯 달째, 대표보다 먼저 퇴근하면 다음 날 뭔가 달랐다. 대표가 뭐라 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조금 덜 웃었다. 그걸 두 번 겪고 나니 여섯 시 반에 일어나기가 어려워졌다.

여섯 달째, 나는 회의에서 말을 줄였다.

일곱 달째, 대표 메시지에 이모지를 달기 시작했다. 👍로 시작해서 🔥로 바꿨다.

여덟 달째, 어느 날 저녁 집에 와서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다시 열었다. 왜 그러는지 몰랐다. 한참을 서 있다가 물만 한 잔 마시고 잤다.


3

금요일 저녁이었다. 대부분 퇴근한 시간. 나는 다음 주 발표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대표가 다가왔다.

잠깐 얘기할 수 있어요?

회의실로 들어갔다. 대표가 문을 닫았다. 손바닥에 땀이 났다.

대표가 말했다. 개인적인 부탁이 하나 있는데.

다음 주에 이사를 해요. 서류 정리가 좀 밀렸거든요. 보험이랑 계약서 같은 거. 주말에 잠깐 도와줄 수 있어요? 요즘 너무 바빠서, 믿을 수 있는 사람한테만 부탁하는 거야.

나는 입을 열었다. 그날 사실—

대표가 손을 저었다. 아, 바쁘면 괜찮아요. 진짜로. 다른 사람한테 부탁할게요. 그가 웃었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요.

그 웃음이 이상했다. 입은 웃는데 눈이 웃지 않았다. 아니, 눈도 웃는 것 같은데 뭔가 빠져 있었다. 일 초쯤 침묵이 흘렀다. 그 일 초가 길었다.

아뇨, 할게요. 내가 말했다. 약속 옮기면 돼요.

진짜요? 대표 얼굴이 밝아졌다. 고마워요. 역시.

회의실을 나왔다.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했다. 거울에 내 얼굴이 있었다. 물이 턱을 타고 흘렀다. 닦지 않고 한참 서 있었다.

주말에 대표의 집으로 갔다.

아파트였다. 넓었다. 짐이 반쯤 포장되어 있었다. 대표가 서류 박스를 가리켰다. 이거 정리 좀 해줘요. 분류는 제가 불러줄게요.

보험 증권, 아파트 계약서, 자동차 등록증, 아이 학원 서류. 손을 움직이면서 생각했다. 지금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냥 손만 움직였다.

중간에 대표 전화가 울렸다. 아내였나 보다. 대표가 거실 구석으로 가서 받았다. 목소리가 작아졌다. 아니, 지금은 좀… 응, 알았어… 그건 내가 어떻게… 통화가 길어졌다. 나는 서류를 정리하는 척하면서 안 들으려고 했다. 들렸다.

대표가 전화를 끊고 돌아왔다. 얼굴이 달랐다. 회사에서 보는 얼굴이 아니었다. 눈가의 주름이 깊어 보였다. 어깨가 처져 있었다. 서류 박스를 보다가 멈췄다.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미안해요. 대표가 말했다. 잠깐 딴생각했어요.

괜찮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대표가 고개를 들었다. 잠깐 눈이 마주쳤다. 이상한 표정이었다. 내가 한 말을 곱씹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걸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 얼굴을 바꿨다. 이 초쯤 걸렸다. 자, 계속하죠. 밝은 목소리였다.

점심을 같이 먹었다. 대표가 회사 초기 얘기를 했다. 힘들었던 시절, 투자 거절, 포기하고 싶던 순간들. 진심인 것 같았다. 아까 전화 끊고 멈춰 있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이 사람도 어디선가는 저런 얼굴을 하고 있구나.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했다. 물을 틀고 오래 서 있었다. 눈을 감았는데 이상한 게 떠올랐다.

아버지였다.

정확히는 현관문 소리였다. 어릴 때 우리 집에 손님이 자주 왔다. 아버지는 손님 앞에서 농담을 잘했다. 웃음소리가 거실을 채웠다. 나도 따라 웃었다.

손님이 가면 현관문이 닫혔다. 철컥. 그 소리가 나는 순간, 아버지 얼굴이 바뀌었다. 매번. 웃음이 사라지고, 입이 일자가 되고, 눈이 차가워졌다. 이 초 만에. 나는 그걸 볼 때마다 숨을 멈췄다. 지금부터 조심해야 해. 몸이 먼저 알았다.

한번은 손님이 우산을 두고 갔다. 현관문이 닫히고 아버지 얼굴이 바뀐 직후, 초인종이 울렸다. 아버지가 문을 열었다. 아, 우산! 하하, 비 오는데 큰일 날 뻔했네. 웃는 얼굴이었다. 문이 닫혔다. 다시 일자 입. 나는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어느 쪽이 진짜일까.

지금도 현관문 철컥 소리를 들으면 어깨가 굳는다. 내 집인데도. 혼자 사는데도.

샤워를 끄고 나왔다. 오늘 대표가 얼굴 바꾸던 순간이 떠올랐다. 이 초. 똑같았다.

거울에 김이 서렸다. 손으로 닦았다. 내 얼굴이 보였다. 나는 어느 쪽일까.


4

월요일 아침, 전체 회의가 잡혔다. 긴급 공지가 있다고 했다.

회의실에 스물여덟 명이 모였다. 의자가 모자라서 몇 명은 서 있었다. 대표가 앞에 섰다.

여러분,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시리즈 A 투자가 확정됐다고 했다. 박수가 터졌다. 대표가 손을 들어 박수를 멈췄다.

그리고 중요한 변화가 있습니다.

화면에 조직도가 떴다. 처음 보는 것이었다. 팀이 나뉘어 있었다. 팀 위에 팀장. 팀장 위에 본부장. 본부장 위에 대표.

우리도 이제 체계가 필요한 규모가 됐어요. 대표가 말했다. 지금까지는 가족처럼 했지만, 앞으로는 조금 달라질 거예요. 팀장 직급을 신설하고, 인사 평가 제도도 도입합니다.

대표가 덧붙였다. 하지만 우리 문화의 본질은 변하지 않아요. 여전히 수평적으로, 서로 존중하면서.

나는 대표의 얼굴을 봤다. 주말에 본 얼굴이 겹쳐졌다. 멈춰 있다가 이 초 만에 바뀌던 표정. 어느 쪽이 진짜일까. 둘 다일까.

회의가 끝났다. 사람들이 흩어졌다.

초기 멤버 중 한 명이 내 자리로 왔다. 삼 년 차. 대표랑 같이 시작한 사람이었다.

뭐, 원래 다 이렇게 되는 거지.

무슨 뜻이에요?

그가 웃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갔다.

슬랙에 알림이 떴다. 대표가 전체 채널에 글을 올렸다. ‘새로운 출발을 함께 축하해요! 🚀’ 이모지가 달리기 시작했다. 기획팀장이 먼저. 그다음 초기 멤버들.

나는 화면을 봤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 멈췄다. 달았다. 🔥.

왜 달았는지 모르겠다. 모니터를 껐다.

점심시간이 됐다. 사람들이 일어났다. 대표가 먼저. 익숙한 사람들이 따라갔다.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가방에서 샌드위치를 꺼냈다. 자리에서 혼자 먹었다. 창밖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샌드위치를 씹다가 준호 쪽을 봤다. 거기 있었다. 헤드폰을 끼고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점심시간인데. 요즘 그는 시키는 것만 했다. 회의에서도 슬랙에서도 말이 없었다. 누가 시킨 건 아닌데 그렇게 됐다.

샌드위치를 다 먹었다. 봉지를 구겼다.

저녁이 됐다. 대표는 자리에 있었다. 시계를 봤다. 여섯 시 반. 오늘은 그냥 일어났다.

대표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수고하세요.

수고해요.

밖으로 나왔다. 비가 그쳐 있었다. 공기가 축축했다. 지하철역까지 걸었다.

지하철이 왔다. 탔다. 문이 닫혔다.

창밖으로 불빛이 흘러갔다. 내일도 출근할 것이다. 이모지를 달 것이다.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역에 내렸다. 집으로 걸었다. 현관문을 열었다. 철컥. 어깨가 살짝 굳었다가 풀렸다.

불을 켰다. 침대에 누웠다.

잠이 왔다.

— 끝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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