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디즈 투자인사이드 20] 크라우드펀딩으로 만들어가는 직접민주주의
정치의 영역에서도 크라우드펀딩은 활발히 작동 중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첫 대선을 치를 당시 “Yes, We Can!”이라는 메시지로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 측은 21개월에 걸쳐 7억 5천만 달러의 정치 자금을 모집했는데, 특기할 사항은 총 모금액의 80%가 다수의 일반인들이 200달러 이하의 소액을 기부하여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최근 미국 대선을 위한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에 대항하며 강력한 맞수로 떠오른 버니 샌더스 역시 크라우드펀딩으로 대선과 운영자금들을 충당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샌더스의 젊은 지지자들 역시 크라우드펀딩에 익숙하여 전당대회에 참여하기 위한 자금을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았다는 사실도 흥미로운 점입니다.
상기 사례들의 특징은 크라우드펀딩이 특정 정치인을 후원하기 위한 방법으로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었다는 점입니다. 대의 민주주의체제에 자연스럽게 부합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입니다. 정치인이 생각하는 정책적 방향성과 정치적 철학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그 뜻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금전적 후원을 하는 것. 자금지원을 통해 지지의사를 표명하고 향후 이러한 의사의 표현은 선거에서의 투표 참여로 연결될 것입니다.
크라우드펀딩을 활용한 새로운 정치모델의 등장 가능성
최근 크라우드펀딩이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뉴질랜드에서는 개인이 소유한 해변을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매입하여 공공에게 돌려주기도 하고(링크), 기업이 지역 공동체를 살리며 공유가치를 창출해 나가는 방법으로 활용되기도 하며(링크), 고객 생애가치를 극대화하고 초기부터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으로도 이용이 가능합니다(링크).
크라우드펀딩이 이와 같이 많은 영역을 변모시키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정치의 영역에서도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실제로 그러한 움직임이 있는 사례를 살펴보고, 추가적으로 활용 가능한 방법들도 생각해보았습니다.
- 정당을 만들거나 정치 성향에 후원
최근 영국에서 중요한 정치적 이슈가 있었죠. 바로 유럽연합에서 영국이 탈퇴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을 묻는 일명 브랙시트(Brexit : British Exit)에 대한 국민투표가 있었습니다. 브랙시트 투표는 ‘유럽 연합에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묻는 투표였는데, 찬반 비율이 유사하게 나타났습니다. 그 말인 즉슨 투표의 최종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투표자 수의 절반에 육박했다는 말입니다.
이 브랙시트 투표 이후 영국에서 새로운 정치 크라우드펀딩의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MoreUnited.uk라는 사이트가 영국의 선거자금 모집에 관한 기존 방식을 바꿈으로써 현재의 정치 구조에서는 자신의 의견이 온전히 반영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취지로 개설되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정당 불문하고 누구든지 MoreUnited.uk가 추구하는 원칙에 따라 정책을 지지하면, 이와 같이 지지를 받은 정책을 실제로 입안하여 반영할 의지가 있는 정치인을 후원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대의민주제는 기본적으로 국민이 자신을 대신할 대표를 선출하고, 그 대표들로 구성된 의회의 의결을 통해 법을 만들고 정책에 반영시키는 방식입니다. 이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선출된 대표들은 전체 국민을 대변하여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자신이 속한 정당의 이익을 옹호하는 경향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정책적 방향성이나 철학이, 전체 국민의 이익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MoreUnited.uk는 그 대안으로 자신들이 중요시하는 5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이에 동감하는 사람들을 결집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이루어진 크라우드펀딩의 모집 자금을 5가지 원칙에 부합하는 정책을 펴려는 의지가 있는 정치인을 후원하는 것입니다. 그 원칙들은 양극화를 줄일 수 있는 공정하고 효과적인 시장 경제 체제, 정치인이 아닌 시민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민주주의, 환경을 보호하는 청정 경제, 다양성을 존중하는 개방주의, 이민자를 수용하며 국제적 협력을 강조하는 영국 등입니다.
개설한지 4일 만에 2만명 가량이 프로젝트에 동참하겠다고 참여했습니다. 아직 직접 모금을 시작하지는 않고 사람들을 모으고 있는 단계이지만, 크라우드펀딩을 활용하여 직접민주주의에 한걸음 더 다가가려는 의미있는 시도라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의 행보와 실적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지역주민들이 적극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된 지도 20년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지방자치제도 역시 선거를 통해 기초 의회 의원 및 기초단체장을 선출하여 이들을 통한 대의민주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시의회와 같은 지방 의회가 있고 시장을 비롯한 지방 행정기관이 있습니다. 대개 지역공동사회에 기반하여 비교적 규모가 크지 않기 떄문에 주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과 여지는 많지만 기본적으로 ‘대의’정치체제라는 틀은 변하지 않습니다.
한번 상상해보았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원하는 정책을 제시하고 그것을 성공시킬 자금을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모집하고 실행해 나가는 것을. 예를 들어 동네에 도서관을 만들고 싶은 주민들이 모여 거주한 지역에 특화된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합니다. 사람들이 펀딩에 참여할 의사를 표시하고 자금을 모집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할 동력을 확보합니다. 다만 이에 대한 적절한 제어장치로서, 집행 전 지방의회에서의 구체적인 실행방안에 대한 토론 및 최종 승인절차를 마련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펀딩에 참여한 주민들에 대해서는 지방세 등 세제상의 감면 또는 지역사회로부터의 복지수혜 등 일정한 혜택을 부여한다면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이는 본래 지역주민들의 편익을 증대하기 위해 사용될 세금의 사용처를 사실상 주민들 스스로가 정하는 것과 같은 효과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의사결정의 권한이 의회나 단체장에게만 집중되지 않고, 지역주민에게 분산시키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주민들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고 힘을 모아 그 일을 이루어가는 것. 단순히 의견을 제시하고 그것이 채택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역 발전을 위한 생산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모여서. 시작하고 제시하는 몇명과 동감하고 참여하는 다수에 의해 함께 만들어가는 더 나은 지역 공동체. 지역공동체를 스스로 발전시키는 방법으로 크라우드펀딩이 활용될 수 있지 않을까요?
크라우드펀딩은 민주화의 확대 과정
크라우드펀딩은 직접금융을 통한 금융의 민주화를 이뤄내고 있습니다. 정치의 영역에서도 돈의 기부를 통한 의사표현의 방식으로 정치의 민주화를 더 확대하고 있습니다. 대의민주제의 아쉬움을 보완하는 직접민주제의 성격이 더해집니다.
국민들은 ‘선거’라는 중요한 수단을 통해 정치적 의사표시를 합니다. 여기에 크라우드펀딩이라는 자금 모집의 수단을 통해 그러한 의사표시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국민의 의사가 직접 표출되고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에 더 가까워집니다.
단순히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을 넘어 정책을 함께 만들고 입안된 정책내용을 집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까지도 크라우드펀딩은 제시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의사를 대변해줄 수 있는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도, 지역에서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드는 것도 가능합니다.
모두가 주인이 되고 참여할 수 있는, 직접 민주주의. 크라우드펀딩이 발전하면서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모습 중 하나로 기대해봅니다.
글 : 박진규 現 와디즈 전략기획팀장 / 前 산업은행 기업금융담당
와디즈는 생소한 ‘크라우드펀딩 투자’에 대해 조금 더 쉽게 접근 할 수 있도록 ‘와디즈 투자인사이드’를 신설하여 양질의 컨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