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600만 달러의 실험, 1년 후 5억 명이 쓴다

1년 전, 단 600만 달러의 훈련 비용으로 미국 AI 패권에 균열을 낸 스타트업이 있었다. 2025년 1월 20일 딥시크(DeepSeek)가 공개한 저비용 생성형 AI 모델 ‘R1’은 챗GPT에 버금가는 성능을 선보이며 업계를 뒤흔들었다. 출시 일주일 만에 미국 앱스토어 1위를 차지했고, 엔비디아 주가는 하루 만에 17% 폭락했다. 마크 앤드리슨은 이를 “AI의 스푸트니크 모멘트”라 불렀다.

그로부터 1년, ‘딥시크 쇼크’는 중국 AI 생태계를 어떻게 바꿨을까.

흔들리는 미국의 우위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 AI·안보·기술센터가 135개국 웹사이트 트래픽을 분석해 2026년 1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8월 기준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코파일럿, 퍼플렉시티 등 미국 모델이 전 세계 대형언어모델(LLM) 웹사이트 방문의 약 93%를 차지하고 있다. 수치만 보면 압도적이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 우위가 불안정한 기반 위에 있다고 경고한다.

딥시크 R1 출시 후 단 2개월 만에 중국 기반 LLM 플랫폼 트래픽은 460% 이상 급증했다. 중국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3%에서 13%로 네 배 이상 뛰었다. 이후 미국 플랫폼의 성장세가 지속되면서 6%대로 조정됐지만, 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재편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였다.

지역별 차이도 뚜렷하다. 2025년 이전 중국 LLM 사용은 중국과 홍콩에 국한됐으나, 딥시크 출시 이후 러시아,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 베이징과 경제·정치적 유대가 깊은 개발도상국에서 채택이 급증했다. 중국 모델은 30개국에서 10% 이상, 11개국에서 2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반면 유럽, 동아시아, 호주 등 미국 동맹국에서는 증가폭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가격도 외교도 아닌, 성능

보고서는 중국 AI 약진의 원인에 대한 통념들에 의문을 제기한다. 가격 차이는 실제로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중국 모델의 유료 API 가격이 미국 경쟁사보다 훨씬 저렴하지만, 대부분의 플랫폼이 무료 티어를 제공하고 사용자의 98%가 이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언어 지원도 마찬가지다. 중국 개발사들이 다국어 지원을 빠르게 확대해 일부 모델은 100개 이상 언어를 지원한다. 전 세계 대사관을 통한 중국의 AI 외교 활동 역시 일반 사용자 선택에는 제한적 영향을 미쳤다.

결국 핵심은 성능이었다. 2025년 이전 중국 모델은 글로벌 경쟁력이 부족했다. 딥시크가 그 격차를 충분히 좁히면서 전환할 가치를 만들어냈다. AI 시장에는 독점 포맷도 없고 재학습 비용도 없다. 사용자는 국적이나 외교 신호가 아닌 품질과 편의성을 따른다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투자 열기, 상장 러시

딥시크 쇼크는 중국 AI 투자 지형도 바꿨다. AI 기반 소프트웨어 개발 플랫폼 딥위즈덤(DeepWisdom)의 우청린(Wu Chenglin) 대표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딥시크가 중국 AI 커뮤니티에 자신감을 불어넣었다”고 말했다. 세 차례 폐업 위기를 겪었던 그의 회사는 딥시크 이후 투자 붐에 힘입어 앤트그룹, 캐세이캐피탈, 바이두벤처스 등으로부터 2억 2천만 위안(약 430억 원)을 유치했다.

베이징 소재 진추캐피탈(Jinqiu Capital)은 지난 12개월간 50개 이상 AI 기업과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스야충(Shi Yaqiong) 부사장은 “2024년 1천만~2천만 달러였던 초기 밸류에이션이 2025년에는 2천만~4천만 달러로 상승했다”고 전했다.

투자 열기는 홍콩 증시 상장으로 이어졌다. 즈푸AI(Zhipu AI)는 1월 8일 상장해 첫날 13% 상승하며 약 90억 달러의 밸류에이션을 기록했다. 다음 날 상장한 미니맥스(MiniMax)는 첫날 109% 급등, 공모가의 두 배를 넘겼다. 미니맥스는 이번 IPO로 48억 홍콩달러(약 6억 2천만 달러)를 조달했으며 밸류에이션은 약 140억 달러에 달한다.

다만 두 기업 모두 아직 적자 상태다. 즈푸AI는 2025년 상반기 1억 9100만 위안 매출에 24억 위안 손실을, 미니맥스는 같은 해 1~9월 5300만 달러 매출에 5억 1200만 달러 손실을 기록했다. 오픈AI 밸류에이션 약 5000억 달러, 앤스로픽 약 3500억 달러와 비교하면 규모 차이가 크지만, 중국 AI 자산에 대한 투자자 수요가 확인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오픈소스와 저비용이라는 무기

미국의 엔비디아 고성능 칩 수출 규제에도 중국 AI 업계의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제약이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냈다. 창업가 리웨이지아(Li Weijia)는 “칩 수출 규제로 인해 중국 AI는 오픈소스와 저비용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오히려 사회적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딥시크는 MIT 라이선스로 R1의 시스템 내부 구조를 공개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닐 샤(Neil Shah) 애널리스트는 “이것이 개발자와 기업의 채택을 촉진했다”며 “비용에 민감한 신흥 시장에서 강한 채택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서방에서는 프라이버시와 국가 안보 우려로 사용자들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인재도 몰리고 있다. 온라인 채용 플랫폼 즈롄자오핀(Zhilian Zhaopin)에 따르면 2025년 1~3분기 AI 관련 직종 지원자 수는 전년 대비 39% 증가했다.

5억 명의 사용자

2023년 7월 항저우의 헤지펀드 하이플라이어(High-Flyer)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한 딥시크는 현재 글로벌 챗봇 시장 점유율 4%를 기록하고 있다. 시밀러웹(Similarweb) 2025년 12월 기준 챗GPT가 68%, 구글 제미나이가 18.2%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1년 전 챗GPT 점유율이 87.2%였던 점을 감안하면 시장 경쟁이 빠르게 심화되고 있다.

중국 내수 시장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중국인터넷정보센터(CNNIC)에 따르면 2025년 6월 기준 5억 1500만 명의 중국 인터넷 사용자가 생성형 AI 제품을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2024년 12월 대비 2억 6600만 명 증가한 수치로, 6개월 만에 사용자가 두 배로 늘었다. 보급률은 36.5%에 달한다.

창업가 양이원(Yang Yiwen)은 2025년 춘절 때 딥시크로 가족 여행을 계획하는 모습을 부모님이 지켜봤다고 전했다. “꽤 재미있어하셨어요.” AI가 실험실을 넘어 일상으로 스며든 순간이었다.

안전하지 않은 리더십

랜드연구소 보고서의 결론은 명확하다. “미국의 글로벌 AI 리더십은 여전히 강하지만, 안전하지 않다.” 경쟁자들이 개선되고 사용자들이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서, 패권은 과거의 성공이나 지정학적 영향력이 아닌 지속적으로 더 나은 모델을 내놓는 능력에 달리게 됐다.

딥시크의 차세대 모델 R2 출시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600만 달러로 시작된 실험의 다음 장이 곧 열린다.

한국과 중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현장 중심으로 취재하며, 최신 창업 트렌드와 기술 혁신의 흐름을 분석해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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