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시니어 창업의 아이콘 ‘추스젠’ 91세로 타계
‘담배왕’ 그리고 ‘오렌지왕’으로 불리우던 훙타그룹 창립자이자 과일 브랜드 추청 창립자 추스젠(褚時健)이 5일 타계했다. 향년 91세.
우리에겐 낮선 이름이지만, 추스젠은 훙타그룹(紅塔集團)을 중국을 넘어 아시아 최고, 세계 정상급급 담배기업으로 끌어올린 주인공이자 고난을 거쳐 시니어 창업까지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90년 초 중국 대표 경제인으로 회자되던 추스젠은 최정상에서 한 순간에 바닥까지 곤두박질치는 시련을 겪게 된다. 1996년 뇌물수수 혐의로 무기징역 선고를 받은 것. 병보석으로 사회에 복귀한 그는 70대 중반에 재창업의 길을 걷는다. 그가 창업한 오렌지 브랜드 ‘추청(褚橙)’은 중국 대표 과일 브랜드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이 성공을 발판으로 추스젠은 ‘오렌지왕’이라는 또 다른 별명을 얻게 된다.
1928년 중국 남서부 윈난성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추스젠은 50세 이전까지 부침있는 삶을 겪는다. 공산당에 입당해 1950년대 잠시 공무원 생활을 하기도 하지만, 문화대혁명 여파로 가족과 함께 시골로 강제 이전하기도 한다.
51세의 나이에 그에게 맡겨진 건 파산직전에 있던 국영 담배공장을 경영하는 일이었다. 누구도 맡기 꺼려하던 일이자 실패가 예견된 업무였지만, 여기서 추스젠의 능력이 발휘된다. 공격적인 경영을 펼친 추스젠은 그 회사를 1980년대와 1990년대 중국에서 가장 크고 수익성 높은 담배 기업으로 성장시키며 윈난 지역 세수의 주역으로 만든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홍타그룹이다.
추스젠은 90년대 초 ‘중국 우수 기업가’ ‘중국 개혁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며 승승장구하지만, 1999년 횡령 등 부패 혐의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는다. 엎친데 곂친격으로 외동딸이 자살하는 비운을 겪는다. 17년 형으로 감형된 추스젠은 몇년 뒤인 2002년 가석방되며 꼬박 1년간 요양에 매달린다.
몸을 추스린 그는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자신의 거주지 근처 160헥타르의 땅을 확보하고 35만 그루의 오렌지 나무를 심는다. 75세에 오렌지 판매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그의 성공을 점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5년이 채 되지 않아 그의 오렌지 농장은 규모있는 사업이 되었다. 2006년 추스젠의 오렌지 농장은 1000 메트릭 톤을 생산하고 있었으며, 생산량과 품질이 뒷받침되어 2010년 윈난성 성도 쿤밍에서 가장 있기있는 과일 브랜드가 되었다. 당시에는 흔치않던 현대식 농장 경영이 빛을 발했다.
추스젠은 온라인에서 기회가 있다고 판단하고 2012년 온라인 식품 공급 업체인 벤라이닷컴과 손을 잡는다. 이는 추스젠의 과일 브랜드가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은 계기가 된다. 벤라이닷컴는 추스젠의 드라마틱한 삶과 그의 농장에서 재배되는 과일의 안전성으로 강조하는 마케팅을 했으며 주링허우와 바링허우 등 젊은 소비자들은 이에 크게 반응했다.
추스젠의 오렌지가 여타 글로벌 기업의 상품에 비해 특별히 좋은 것이라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추스젠 자체가 브랜드가 되었고 그것이 사업 확장에 영향을 미쳤다. 베이징 초등학교 교사인 장난씨는 “추스젠의 노력과 정신을 존경한다. 작년에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통해 추청 오렌지를 샀다. 이 오렌지는 베이징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되는 그 어떤 오렌지보다 품질이 좋다.”고 말한다.
이러한 인기를 발판으로 2014년에 추스젠은 공식적으로 ‘추청’이라는 브랜드를 정식으로 등록했으며 ‘오렌지 왕’이라는 별명도 부여 받았다.
추스젠의 90여 년 인생에서 빛을 본 시기는 암울했던 시기에 비해 크지 않다. 평생 동안 좌절과 시련을 경험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세간의 평가에 생전 추스젠은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 추청이 전국적인 브랜드가 된 뒤에도 그는 입버릇처럼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크게 낙담할 필요도 없고, 좋은 일이 있다 해서 안심해서도 안 된다”라는 말을 했었다.
젠 샤오윈 윈난성 사회과학아카데미 연구원은 “추스젠은 투쟁심, 탐험심, 혁신정신의 화신이다. 망해가던 담배 회사를 아시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담배 브랜드 중 하나로 변화시켰고, 노년기에 현대 농업 기업을 설립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정신에서 나왔다”라며, “중국이 젊어지려면 추스젠과 같은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3차 양회 윈난성 대표로 참석했던 환경공학자 양 샤오후에는 “1980년대 윈난성에서 추스젠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당시 지역을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이었다”라며, “그는 80이 다된 나이에 기술서적을 독파해 과일 생산을 고도화했다. 당시 중국인이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라며 그의 도전정신을 높이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