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s Story #277] 목장 후계자들이 만든 스타트업 ‘목장커머스’
오종석 목장커머스 대표는 어릴 때부터 사료값이 1원만 올라도, 그해의 가축 농사가 얼마나 휘청거릴 수 있는지를 직접 보면서 자랐다. 2012년에는 사료값이 올라 실제로 집에 있는 소를 다 내다판 일도 있었다.
오 대표는 ‘서울은 복잡해서 못 살겠다’며 너스레를 떠는 모태 농촌인이다. 대학도 축산학과(건국대학교 )를 졸업했고, 지금의 창업 동료들도 그곳에서 만났다. 대부분이 목장 후계농으로 이루어진 이 팀은 가상의 소비자가 아닌, 몇 년 후의 자신을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 한다.
목장의 후계농들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을까. 목장커머스의 오종석 대표를 만나봤다.
목장커머스 오종석 대표
나는 후계농이다.
가족과 함께 농사짓고 산다. 축산학과를 나왔는데, 선배들이 가장 많이 취업하는 곳이 사료 회사다. 그런데 규모가 큰 사료 회사에 들어가도 월급이 많지 않은 경우가 많더라. 15년 후에는 내가 설 자리가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스물 두살 이후부터 창업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대학 친구들과 손을 잡고 시작했다.
2012년에 집에서 키우던 소를 다 내다 팔았다.
고기값보다 사료값이 더 높아져 버렸기 때문이다. 축산업은 사료 때문에 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축산 비용의 최대 60%가 사료값이기 때문이다. 92년에는 사료값이 치솟아 돼지를 길바닥에 버리는 일이 있었고, 2013년에도 사료값이 올라서 소를 굶겨 죽이는 사례도 있었다. 예전에는 시골에 가면 집마다 소를 한 두 마리씩은 꼭 키웠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 FTA 체결 이후 사료값이 오르면서 대형 목장, 축산 전원농들만 소를 키우고 있다.
사료값이 왜 이리 불안정 하냐고?
한국은 97% 사료 수입국이다. 사료에 들어가는 옥수수, 대두, 콩 찌꺼기 같은 원료를 죄다 수입하다 보니 국제 곡물 변동가에 따라 사료값이 들쑥날쑥하다. 그런데 국내 사료사가 200개 정도 있는데, 그중 상위 10개 회사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우리는 공동구매라는 형태로 사료값을 안정화시키고자 한다.
자본이 없는 농가는 가격 횡포에 끌려다니다가 결국 몰락한다.
일단 사료값 변동의 칼자루를 기업이 쥐고 있다 보니, 이들과 계약을 맺은 자유 농가는 불평등한 관계를 이어갈 수 밖에 없다. 기업이 농가에게 육류 납품가를 낮추라고 요구하고 이를 거부하는 농가에게는 사료값을 높여버리거나 공급을 중단해버린다. 그럼 가축을 먹일 방도가 없는 자유농가가 몰락하게 된다. 그럼 기업은 그 농장을 사서 직영으로 운영해버린다. 자신의 땅을 갖고 농사를 지었던 사람들이 모두 일개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된다. 기업은 농장을 자사화 시키는 ‘계열화 사업’이 진행될수록 이익을 많이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사육하는 돼지가 총 1천만 두인데, 얼마 전 한 기업이 이 중 90만 두를 계열화 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덴마크의 협동조합 ‘대니쉬크라운’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한국보다 작은 나라인 덴마크는 전 세계로 돼지고기를 수출한다. 대니쉬크라운(Danish Crown)이라는 협동조합 덕분이다. 1882년 500여 농가가 모여 만든 양돈 축산 협동조합이다. 이들은 사료 공장을 만들어 직접 사료를 생산한다. 사료 회사에 의존할 필요가 없는거다. 유통 채널도 직접 관리한다. 사료값이 반값으로 떨어지니 자연스럽게 값도 저렴해진다. 국내 돼지고기가 키로그램 당 3,700원 정도 한다면, 이들은 2,300원에 내놓을 수 있는거다. 이 조합은 1년에 10조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국내에도 이를 본뜬 협동조합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지역별로 조합이 찢어져 있기에 대니쉬크라운처럼 그 역량이 합쳐지지는 않고 있다. 1990년에 농가 십여곳이 뭉쳐 만든 어느 협동조합은 현재 매출이 2조 원 정도 난다. 하지만 조합원으로 들어갈 경우, 조합 자체 사료만 사용할 수 있고 생산한 돼지를 조합에만 납품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자유롭지 못한 거다.
목장커머스는 축산계의 쿠팡이다.
쉽게 말해 축산 사료 공동 구매 서비스다. 우리는 각 농가가 어떤 사료를 구매할 것인지에 대한 수요를 모아, 사료 회사에 전달한다. 그러면 기업은 확정된 구매 수요를 바탕으로 주문량에 맞는 원료를 구매하고 사료 생산을 한다. 재고비, 영업비, 운송비 등이 감소해 더 싼 가격에 사료를 공급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다.
국내 사료 회사 유통 구조가 특이한 이유가 있다. 한국은 구제역 발병국이기 때문에 사료 판매를 위해서는 그 지역에 지정 집하장을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즉, 충청도에서 생산한 사료를 경기도 농가는 구매할 수가 없다. 따라서 전국에 집하장이 있어야 전국 유통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작은 사료 회사는 판매 지역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이때 목장커머스가 특정 지역 농가의 일정 수요를 모아주면, 어느 정도의 매출이 보장되기 때문에 중소 사료사도 집하장을 타지역에 설치할 수 있다. 농가 입장에서도 자기 농장 상황에 맞게 사료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훨씬 넓어진다. 결국 자유농가와 중소 사료사가 함께 공생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료 제공 = 목장커머스
사료는 1원 싸움.
대량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1원만 싸져도 규모가 엄청나다. 계산해봤을 때 사료값이 5% 감소하면, 농가 수익은 11.5% 증가한다.
고집 센 농부에게 영업하는 방법? 자식 이기는 부모 있나.
‘후계농 네트워크’가 비결이다. 어른들도 사료 유통 구조에 문제가 많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보수적으로 굴 수밖에 없다. 가축이 잘 크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사료를 한 번에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갑자기 사료를 교체하면 가축이 병들 수 있기 때문에 사료 교체는 점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축산농들은 사료 교체 자체를 꺼린다. 하지만 후계농 세대의 경우 말이 통한다. 기본적으로 웹과 앱에 익숙하고, 인터넷을 통해 이것저것 따져보고 구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업은 주로 대학교 선후배, 후계농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보통 자제들과 손 잡고 그 집에 방문하면, 더 잘 들어주는 편이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큰 위험 요소가 있다면.
가격 문제다. 중소 사료회사의 경우 공급가를 급격히 낮추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경쟁이 치열한 닭 사료 분야는 피하고 있다. 돼지, 소 시장을 노리고 있다. 규모가 크지만 아직 독점하고 있는 기업이 없어, 군소 사료 회사가 현재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시장이다. 대한민국 12만 농가 중 3천 농가가 닭, 4700 농가가 돼지, 나머지 농가가 소를 키운다. 나중에 소 시장에 역량을 집중하려 한다.
직접 사료를 만들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농가 분들이 자꾸 그러신다. 아무래도 직접 사료를 만들어야 품질 보장도 되고,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맞는 말이지만 목장커머스의 방향과는 맞지 않는다. 우리는 농가에 더 다양한 사료 회사의 제품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주고 싶다. 우리가 직접 사료를 생산해버리면, 그것은 지역별로 분립된 현재의 협동조합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타협점을 찾아가고 있다. 이를테면, 농가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사료 품질에 대한 신뢰이기 때문에 축종 별로 믿을만한 중소 회사를 3~4곳 정도만 입점시켜 판매하는 방식이다.
현재는 두 군데 농가와 거래하고 있다.
수적으로는 적지만 두 곳 모두 1만 두 정도 되는 대형 농가다. 이 목장이 1년에 사료를 40억 원어치 사용한다. 현재 사료의 일부분만 교체했는데도, 매출이 월 1,600만 원 정도 나고 있다. 우리의 순수익은 매출의 2% 정도지만 한 농가당 사용하는 사료량이 크기 때문에 매출 성장은 무리 없이 이루어질 거라고 본다.
축산 업계에 뛰어들고 싶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
농업 스타트업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그 관심은 과일, 곡식 농사 쪽에만 집중되어 있다. 축산 스타트업은 우리가 최초다. 그만큼 업계 이해도나 관심이 낮은 편이다. 축산 사료 시장만 11조 규모다.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5년 안에 자리 잡으면 무조건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보고 있다.
IoT 실험을 하고 싶은 개발자 분들을 환영한다.
현재 농가에도 IoT 기술이 꽤 보급되어 있다. 그런데 그 장비들이 모두 네덜란드 산이다. 소귀에 다는 이표 하나에 30만원을 주고 수입을 한다. 사료 사업으로 시작했지만, 향후에는 IoT 국산 장비를 만들어 보급하고 싶다. 현재 카이스트와도 이 부분을 논의 중이다. 개발자분들은 언제든지 우리 농장에서 자유롭게 기술을 시험해볼 수 있다. 그런 개발자들을 환영한다. 찾아와 달라.
내년까지의 목표는?
수수료 0% 정책을 생각 중이다. 사료 회사에게 부과하던 수수료를 폐지하고, 광고 집행 등을 통해 수익을 내면 보다 더 많은 사료 회사가 부담없이 우리 플랫폼으로 들어올 수 있을 거다.
내년에는 직접 사료 회사들의 곡물 수요를 모아 수입과 제조 단가 자체를 낮추고 싶다. 사료 회사들은 현재 사료 제조에 필요한 곡물을 개별 수입하거나 다른 수입상에게서 구매하고 있다. 작은 회사들이 개별적으로 구매하다 보니 곡물의 수입 단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해당 사료가 얼마나 팔릴지 알고 있기 때문에, 입점되어 있는 사료 회사들의 수요를 한 번에 모아 곡물을 대량 구매하면 사료 생산 가격 자체가 낮아진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수익도 발생할 것이다.
현재 한국 축산업은 과도기에 있다. 젊은 피 수혈이 필요한 시점이다. 많은 청년이 축산업에 뛰어들어 함께 이 시장을 키워나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