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커와 매니저, 너와 나는 다른 시간을 달린다
와이 콤비네이터(Y Combinator)의 폴 그레이엄(Paul Graham) 블로그에 재밌는 글이 있다.
‘메이커의 스케줄, 매니저의 스케줄 (Maker’s Schedule, Manager’s Schedule)’
‘메이커의 스케줄’이란 개발자가 실제 코딩을 하는 시간처럼 무언가를 만드는 시간이다. 실제 업무, 말 그대로 실무의 시간이다. ‘매니저의 스케줄’은 관리하는 시간이다. 아무 때나 치고 들어오는 즉석 보고들을 비롯한 일일보고, 주간회의, 월말 워크숍 같은 정기 보고들이 모두 ‘매니저의 스케줄’이다.
Schedule, Not Time
그런데 시간을 왜 time이라 표현했을까? 그것은 단순히 시간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간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일정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또한 매우 중요하다.
경험상 메이커의 집중력 혹은 생산성은 일하는 시간 대비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이 일을 왜 하는 것이고, 언제까지 어떻게 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등 일에 몰입하는 데 필요한 시간(transition time) 이 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비로소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오는데 당연히 이때가 생산성이 가장 높다. 그런데 너무 오래 일하게 되면 집중력에 한계가 오고 몸이 근질근질 해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야근을 많이 하는 대신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사실 당연한 이야기다.
이 그래프를 보면 알겠지만, 메이커가 결과물을 제대로 만들려면 트랜지션 타임(transition time)이 아니라 실제 일하는 시간이 길어져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한번 일을 시작했다가 중간에 흐름이 끊기면 – 점심시간이든, 상사가 불렀든, 중간에 동료들과 커피를 한잔했든 – 다시 일을 시작할 때 또 트랜지션 타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뒷부분엔 일종의 쿨 다운 타임(cool down time)이 존재하는데, 이 시간은 너무 오래 일해서 지쳤을 때도 오지만, 곧 내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끝날 것을 알고 있을 때도 발생한다. 예를 들어, 30분 후에 미팅이 있다는 것을 알면 보고서를 작성하던 사람은 새 페이지를 그리기 시작하지 않을 것이고, 개발자도 새 모듈을 코딩하기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중간에 끊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음 미팅 준비도 머릿속에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듣고 “아 그럼 미팅 시간을 미리 정해놓지 않고 갑자기 부르면 되겠구나”하는 매니저는 없길 바란다. 저런 짓을 하면 무슨 결과가 발생할까? 당신이 아무 때나 치고 들어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메이커는 당신이 존재하는 한 항상 일에 집중할 수 없다. 만약 당신 주변 사람들이 “나는 회사 사람들 다 퇴근하고 나 혼자 남았을 때(혹은 아무도 출근하기 전 새벽) 그때부터 일이 잘돼요”라고 말하고 다닌다면 당신 또라이 당첨이다. 축하한다.)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메이커는 방해받지 않는 덩어리 시간이 필요하다. 피터 드러커가 지식근로자에게는 덩어리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과 마찬가지 이유다.
그리고 메이커에게 일정 변경은 쥐약이다. 만일 두시에 상사와 미팅이 있었다고 해보자. 메이커는 점심시간부터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런데 한 시 반쯤 되어 상사가 갑자기 이전 일정에 문제가 생겼다며 네시에 보자고 연락이 온다. 메이커에게 두 시간 반 남짓한 시간이 새로 주어졌지만 아마 제대로 무언가를 작업하지 못할 것이다. 트랜지션과 쿨다운 시간을 빼고 두 시간도 채 안 될 이 덩어리는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너무도 애매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기껏해야 밀려둔 경비 정산 같은 행정잡무를 처리하거나, 자기가 해야 할 일 중에 아주 작고 마이너 한 덩어리 하나를 작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간에는 자기가 해야 할 일 중 가장 어렵고, 혁신이 필요하며, 동시에 가장 중요한 그런 일은 손도 대지 못한다. 이렇게 귀중한 반나절이 또 지나간다.
반면 매니저의 시간표는 대략 이렇게 생겼다.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글씨가 아니라 느낌만 보세요)
매니저는 업무 대부분이 보고 받은 자료를 리뷰하거나 특히 사람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하는 것이다. 폴 그레이엄은 이를 ‘Schedule of Command’라 표현했다. 남에게 시키고, 결과물을 보고받는 사람들이다. 매니저는 시간을 최대한 잘게 쪼개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미팅을 가지는 것이 자신의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들에게는 일정의 변경이 수시로 있는 일이고, 그리고 일정이 바뀌는 것에 별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데, 그저 일정표의 한 미팅을 빼서 다른 미팅과 교체하면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직급이 좀 올라가면 이런 세팅마저 비서나 부하직원이 알아서 다 해준다)
그리고 이런 일정표에 적응이 된 사람들은 트랜지션 타임도 거의 필요하지 않다. 본인은 보고자가 아니고 듣는 입장이기 때문에, 일단 만나서 들어보고, 생각은 들으면서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냥 듣고 ‘잘했어’ 하고 끝내면 없어 보이기 때문에 칭찬도 하면서 뭔가 꼬투리를 잡아 한두 가지 지적을 한다. 쿨 다운도 필요 없다. 미팅 시간이 끝나면 서둘러 마무리하고, 또 다음 미팅으로 바로 이동한다.
시간 관리에 대한 자기계발서나 여러 가지 플래너들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면, 아마 관리 능력의 문제보다 우선 스케줄의 차이 문제일 수 있다. 경험상 자기계발서나 플래너들은 매니저의 스케줄을 살아가는 사람을 위한 경우가 많다. 메이커는 우선 관리할 일정이 그리 많지 않다. 자기가 해야 할 업무의 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 업무 하나하나가 진득이 앉아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메이커가 연초부터 삼십 분 단위로 일정이 쪼개진 플래너를 새로 사서 그 칸을 촘촘히 채우며 시간관리를 하려고 하면, 곧 “내가 하는 일이 이렇게 없나”하며 자괴감에 빠질 것이다.
메이커와 매니저로 분류해 놓았지만,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 아닌 한 대부분의 사람은 회사에서 메이커이자 동시에 매니저로 일한다. 결국 시간관리의 첫 시작은 내가 업무 시간의 몇 퍼센트를 매니저의 스케줄로 보내고 있으며, 몇 퍼센트를 메이커의 스케줄로 보내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혼돈의 서막 – 다른 시간의 만남
메이커가 메이커와 같이 일할 때는 별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매니저가 매니저와 미팅을 하는 것도 별문제가 없다. 문제는 매니저가 메이커들을 모아놓고 미팅을 벌일 때 일어난다. (보통 매니저가 직급이 더 높다)
메이커는 덩어리 시간이 필요한 존재다. 매니저는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쓰는 존재다. 매니저는 미팅 순서를 자유자재로 바꾼다. 메이커는 미팅 시간이 바뀌면 돌아버린다. 메이커는 자리에 오랫동안 앉아서 아웃풋을 내야 한다. 매니저는 미팅 그 자체가 본인의 아웃풋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조직들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매니저가 된다. 따라서 경영진 차원에서 무언가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놓지 않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엔트로피가 증가하듯이 회사에 미팅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냥 횟수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주간 영업회의, 월간 마케팅 회의 등등 정례화되어버리는데, 이런 정기 미팅을 주최한다는 것 자체가 매니저의 성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미팅이 늘어갈수록 메이커가 실제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없어진다. 메이커들에겐 단순히 업무시간 – 미팅 시간 = 일할 수 있는 시간의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아무리 짧은 미팅이어도 무언가 내 일할 시간의 중간에 치고 들어오는 순간 그날 내 아웃풋은 반 토막 난다. 여기서부터 회사가 관료화되는 최악의 순환고리가 시작된다.
이 상태로 일 년 정도 지내고 나면 아마 실력 있는 메이커는 다 회사를 떠나고 매니저들만 남아 서로를 비난하며 사내정치에 열심인 회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미팅에 대한 원칙
요즘은 그래도 많은 회사들이 미팅 규칙을 만들어 놓고 (실제론 그렇게 안 하고 있지만) 있다. 미팅 전에 미리 내용을 보고 참석하자, 꼭 필요한 사람들만 참석하자, 미팅 시간을 정해놓고 타임키퍼를 두자 등등. 그런데 잘 안 지켜진다. 그 이유는, 메이커가 메이커와 하는 회의와 매니저가 메이커와 하는 회의, 매니저와 매니저가 하는 회의는 그 성격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사에 한 가지 회의 규칙을 정해놓고 일률적으로 맞추라고 하니 회의 규칙을 도저히 지킬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미팅을 시작 한 뒤에 벌어지는 일들이 아니라 애초에 그 미팅을 왜 해야 하느냐이다. 미팅을 아무리 효과적으로 해도 미팅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메이커의 능률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폴 그레이엄의 조언을 잘 들어야 한다. 매니저가 메이커와 미팅을 잡으려거든 최대한 업무시간의 앞이나 끝(출근 시간쯤 or 퇴근 시간 가까이)에 잡고 중간에 치고 들어가는 미팅이 있으면 안 되며, 미팅은 될 수 있으면 특정 요일에 몰아서 잡고 가급적 한 번도 미팅이 없는 날의 비율을 높여줘야 한다. 하루에 한 시간씩 미팅하는 것보다 차라리 미팅을 하루에 몰아서 그 날을 날려버리고 4일의 미팅 없는 날을 만들어주는 것이 메이커에게는 훨씬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회사 차원의 원칙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매니저들은 자기 직급을 믿고 자기 시간표 빈칸에 아무렇게나 미팅을 잡아버린다. 이런 만행은 회사 차원에서 막아야 한다. 매니저가 언제 메이커들과 미팅할 수 있으며 언제 할 수 없는지, 매니저의 일정이 갑자기 바뀌면 메이커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으면 매니저는 끊임없이 메이커들에게 간섭한다.
사람에 대한 원칙
폴 그레이엄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사람에 대한 이슈를 고민해야 한다.
Maker : Manager 비율
우리 회사에는 메이커와 매니저의 비율이 어느 정도 될까? 아까 말했듯이 대부분은 100% 어느 한쪽이라기보다는 자기 시간의 일정 비율을 양쪽으로 나눠서 쓴다. 우리 회사 직원들의 시간 사용을 메이커의 스케줄과 매니저의 스케줄로 나눠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걸 진짜 측정한답시고 전 직원의 일주일 시간표를 제출하라고 한다면 아마 거짓말로 가득 찬 표만 모일 것이고 당신은 또라이 매니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스타트업은 거의 100%에 근접하게 메이커 스케줄의 비율이 높을 것이고,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갈수록 매니저 스케줄의 비율이 높아질 것이다. 정답은 없고, ‘매니저의 스케줄’이 있으면 안 되는 죄악 같은 시간도 아니다. 실적에 대한 관리도 분명 필요하고, 사람에 대한 관리도 필요하다. 다만 관리를 위한 관리, 미팅을 위한 미팅의 시간이 늘어나는 것을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매니저의 스케줄 비율이 과도하게 높다면 그것도 문제가 있다. 매니저의 스케줄이 50%를 넘어간다면 이 회사는 아웃풋을 내는 것보다 성과를 관리하는 것으로 돌아가는 회사가 되어버리며, 기존 사업에서 최대한 짜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신사업이나 혁신은 기대하기 어려운 조직이 된다.
그리고 이 논의를 라인 : 스탭 인원수 비율로 너무 간단하게 생각해서도 안된다. 내 이전 직장에서는 저 숫자를 한동안 관리하면서 스탭 인원을 줄이고 라인 인원을 늘리려고 했었는데, 문제의 본질은 라인이고 스탭이고 몇몇 매니저들이 메이커들의 시간을 다 쪼개 놓는 것이었다. 스탭이 관리라는 명목 하에 라인 일하는 것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스탭 인원을 줄였는데, 당연히 스탭은 매니저(윗사람)의 비율이 높아져 버리고 애꿎은 대리 과장 메이커들만 라인으로 팔려갔다. 관리해야 하는데 손발이 없어진 매니저는 뭔가 성과를 내야 하니 라인에 있는 메이커들을 불러 모으며 들볶기 시작한다. 라인은 라인대로 원래 있던 실적 미팅들이 있었는데, 스탭 매니저의 지적질까지 대안을 세워야 하니 미팅이 점점 길어진다. 메이커들만 죽을 맛이다.
100% Manager?
자기 시간 전부를 메이커의 스케줄로 보내는 사람(100% 메이커)들은 존재하며 필요하다. 그런데 반대로 100% 매니저들은 회사에 따라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스타트업은 단언컨대 100% 매니저는 필요 없다. 그런데 중견기업, 대기업을 보면 100% 매니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실무에서는 점점 멀어지며 자기 밑의 사람관리, 성과관리만 하면 된다고 믿으니 어느 선을 넘으면 본인이 스스로 만드는 아웃풋이 0이 되는 것이다. 조직마다 다르겠지만 임원은 상당수 이 부류에 속하며, 부장 중에도 꽤 있다.
이 100% 매니저들에게 본인의 과업, 혹은 아웃풋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마 “조직관리”,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나 “대외 네트워크 관리” 같은 것을 댈 것이다. 맞을 수도 있고, 조직에 따라 그 일이 (혹은 그 사람이) 정말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만의 문제를 떠나서, 100% 매니저가 우리 회사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직원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크다. 어떤 사람은 “나도 때가 되면 저렇게 편하게(?) 회사 생활해야지” 큰 꿈(?)을 가질 수도 있고, “저 양반은 대체 뭘 하면서 월급을 받는 거지?” 하며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사람관리, 성과관리, 중요하다. 그런데 관리는 일종의 전염성이 있어서, 남들이 관리만 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관리만 하고 아웃풋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경험담이다. 나도 잠깐 나는 관리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100% 매니저는 관리 천국을 만드는데 파급력이 크다.
그래서 매니저의 스케줄이 대부분인 사람, 혹은 100%인 사람을 회사에서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판단을 하려면 CEO 본인이 혹시 그런 사람이 아닌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Manager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큰 기업에 100% 매니저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인데, 매니저의 평가 이슈가 있다. 성과가 명확하다는 영업직군도 어느 레벨이 되면 본인이 직접 영업하지 않고 자기가 맡은 조직의 숫자가 곧 자신의 숫자가 된다. 이 상황을 방치하면 밑에 사람을 쪼기만 해도 자신의 성과가 달성되는 상황이 되며, 곧 이 사람은 정기/비정기 실적 미팅들을 잡을 것이다.
매니저의 스케줄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포지션을 인정하기로 했다면, 이 사람이 회사에 주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당사자와 조직 전체에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정말 C-level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지는 사람인지, 회사 내부의 아웃풋은 적어 보여도 어떤 외부 이해관계자와의 관계에 핵심이 되는 사람이라든지, 적어도 이 사람이 하는 일이 밑에 직원들을 쪼아서 조직의 숫자를 맞추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부분을 조직의 실적과 별개로 놓고 판단이 필요하다. 조직의 성과에 매니저의 성과가 묻어가게 만들어 놓는 것은 관리 천국을 방치하는 지름길이 된다.
공간에 대한 원칙
사무실이 이사 갈 때마다 문제가 되는 “파티션 있는 독립적 공간” vs. “개방형 오피스” 논란도 사실 이 스케줄들과 관련이 있다. 메이커의 스케줄과 매니저의 스케줄 축에 혼자서 일하는지 팀이 같이 토론하며 일하는지의 축을 더하면 다음과 같은 모양이 된다.
- -메이커가 혼자: 보고서/자료 준비, 코딩, 디자인하는 시간 등
- -메이커가 같이: 팀의 아웃풋을 공유하고 각자의 역할을 나누는 시간, 그렇게 작업한 내용을 합치는 시간 등
- -매니저가 혼자: 보고자료를 혼자 리뷰하는 시간
- -매니저가 같이: 보고 받는 시간
메이커든 매니저든 혼자 일할 때는 독립적인 공간이 좋다. 문제는 메이커는 혼자 일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매니저는 위에서 보았듯이 이런 시간이 짧다. 관리해야 할 매니저가 자기 방에만 처박혀 있는다? 일 안 한다는 소문 돌기 딱 좋다. 메이커가 혼자 일할 때는 파티션이 처져있는 공간이 좋고, 너무 적막한 수준만 아니라면 조용할수록 좋을 것 같다. 눈 앞에 사람들이 자꾸 왔다 갔다 거리는 것이 보인다든지 하는 방해 요소들을 줄이는 것이 포인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회사는 독립 공간이 절실한 메이커들을 오픈 공간에 풀어놓고, 혼자서는 하는 일이 별로 없는 임원들에게 방을 준다. 대우의 의미이긴 하지만 딱 봐도 반대가 되어야 맞다.
메이커가 여럿이 같이 일할 때는 개방형 오피스처럼 오픈된 공간에 여럿이 앉을 수 있는 좀 큰 테이블, 프레젠터나 모니터가 있으면 적당하다. 작업 초반 브레인스토밍 같은 단계에서는 카페 같은 분위기의 조금은 시끌벅적하고 배경 음악이 살짝 깔려있는 분위기도 괜찮다. 매니저가 같이 일하는 경우는 보고 회의 같은 미팅을 진행할 때이다. 매니저의 미팅을 위한 공간은 메이커의 미팅과는 달리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실적 회의용 회의실 딱 그 모양을 상상하면 된다.
즉, 각 공간마다 여기가 누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공간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공간별로 어떻게 디자인하고 어떤 분위기로 꾸며 놓을지, 배경음악이 필요한지, 어느 정도 크기의 공간이 되어야 하는지 금방 답이 나온다. 독립적 공간과 개방형 오피스는 어느 한쪽을 선택할 이슈가 아니라 짬짜면처럼 공간 배분의 최적화 문제다. 문제는 칸막이가 없는 그릇에 짬뽕과 짜장면을 같이 붓는 것이다. 이건 개밥이다. 메이커의 공간 바로 옆으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지나다니며 브레인스토밍을 하게 만들어 둔다든지, 회의 공간이 너무 없어서 매니저들이 오픈된 공간에서 회의를 하게 (그리고 그 소리가 일하고 있는 메이커들에게 들리게) 방치해 둔다든지, 회사 전체에 배경 음을 깔아서 메이커가 일하는 공간에서도 계속 노래가 나온다든지 하는 이도 저도 아닌 공간 배치는 메이커의 능률 감소로 귀결된다.
물론 회사가 재정적인 이슈(혹은 리더의 사고방식)로 공간들을 구분해서 운영할만한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위에서 언급한 시간의 구분이 더욱더 중요해진다. 공간을 구분할 수 없으면 최소한 메이킹(Making)의 시간과 매니징(Managing)의 시간이라도 확실히 구분해 놓아야 메이커가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가 확보되는 것이다.
너와 나는 다른 시간을 달린다
메이커와 매니저, 우리는 같은 회사에서 일하면서도 서로 다른 시간을 달린다. 될 수 있으면 우리 업무시간엔 서로 만나지 말자.
원문 : ‘너와 나는 다른 시간을 달린다’
장영학 삼성 SDS 책임 컨설턴트 / (前)이랜드차이나 SMO, (前)엔플랫폼 차장
: 조직 문화, 마케팅, 빅데이터, 중국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