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화의 속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었다. 과거형으로 쓴 이유가 있다. 이제는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ChatGPT가 세상에 나온 건 2022년 11월이었다. 채 3년이 안 됐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대학생들은 AI로 리포트를 쓰고, 개발자들은 AI에게 코드를 짜달라고 하고, 디자이너들은 AI로 이미지를 생성한다.
불과 3년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패턴이 보인다. 증기기관이 공장에 보급되는 데 50년 걸렸다. 전기는 30년, 인터넷은 15년, 스마트폰은 5년. ChatGPT는 2년도 안 걸렸다.
가속한다. 계속 가속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
2019년, 나는 한 중학생에게 조언했다. “개발자가 유망하다. 프로그래밍을 배워봐.”
그 학생은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정규 과정을 벗어난 만큼 진로 선택이 더 중요했다. 당시 개발자는 확실한 선택지였다. 높은 연봉, 넘치는 수요, 보장된 미래.
3년 후인 2022년, 그 학생이 연락했다. “하고 싶은 공부가 생겼어요. 우주항공을 공부하려고요.”
잘한 선택이었다. 만약 그때부터 지금까지 개발만 공부했다면 어땠을까.
마이크로소프트는 2023년 이후 대규모 인력 감축을 단행했으며, 개발자도 대거 포함됐다. 미국 AI 회사들의 신규 개발자 채용은 2022년에 비해 현재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국 게임 업계도 신규 개발자 채용을 거의 하지 않는다. 반면 경력자들의 일자리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AI가 저지른 실수를 검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젊은 세대가 경력을 쌓을 기회가 막혀 버렸다는 점이다. 데이터가 이를 증명한다. 하버드대 연구진이 2만 8,500개 기업을 분석했다. AI를 도입하지 않은 기업에서는 주니어와 시니어 채용이 비슷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AI를 도입한 기업은 달랐다. 2022년부터 두 선이 극명하게 갈렸다. 시니어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주니어는 급락했다. 신규 채용을 하지 않는다. 시니어 + AI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OpenAI는 AI의 진화를 다섯 단계로 나눴다. 첫 단계는 챗봇, 우리가 지금 쓰는 ChatGPT다. 두 번째는 추론자, 복잡한 문제를 스스로 푸는 AI다. 세 번째가 에이전트다. 2025년, 지금이다.
2025년, AI는 3단계에 진입했다. 에이전트 시대다.
더 이상 질문에 답하는 수준이 아니다. 일을 한다.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고, 수정한다. 이메일을 보내고, 엑셀을 분석하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24시간 일할 수 있고, 사무실도 필요 없고, 퇴직금도 필요 없다.
월 구독료가 최저임금의 1/10도 안 되는데, 생산성은 활용 능력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미국에서는 이미 AI를 활용해 생산성이 극적으로 높아진 직원을 ‘100x 직원(100x employee)’이라고 부른다.
경영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디지털이 먼저, 물리가 다음
모든 게 동시에 바뀌지는 않는다. 순서가 있다.
디지털로 존재하는 것들이 먼저다. 글을 쓰는 일, 그림을 그리는 일, 코드를 짜는 일. 컴퓨터 하나면 되기 때문이다. 그냥 프로그램만 바꾸면 된다.
번역 산업이 그 증거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기업들은 해외 계약서 한 건을 번역하는 데 수백만 원을 지불했다. 전문 번역가가 며칠씩 작업했다. 지금은 DeepL이나 ChatGPT에 문서를 넣으면 몇 초 만에 끝난다. 프리랜서 번역가들의 일거리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공장이나 창고는 시간이 더 걸릴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미 시작됐다.
2025년 1월, 뉴욕타임스가 아마존의 내부 전략문서를 보도했다. 아마존은 2030년까지 60만 개의 일자리를 로봇으로 대체할 계획이다. 전체 직원의 절반이다. 2027년까지 미국 내에서만 16만 명을 줄인다. 목표는 명확하다. 창고 운영의 75%를 자동화하는 것.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 창고에 1천 대의 로봇을 투입했더니 필요한 직원이 4분의 1 줄었다. 이 모델을 2027년 말까지 40개 시설에 도입한다. 제프 베조스는 2012년부터 13년 동안 준비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MIT의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는 경고한다. “아마존만큼 자동화할 인센티브를 가진 기업은 없다. 이 계획이 성공하면 미국에서 가장 큰 고용주 중 하나가 ‘일자리 창출자’에서 ‘일자리 파괴자’로 바뀔 것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아마존의 성공은 다른 기업들의 모델이 된다. 월마트는 어떻게 할까. UPS는. 이들도 미국 최대 고용주다.
한국의 위치
우리는 어디쯤 와 있을까.
줌이 아시아태평양 8개국의 18세에서 24세, AI 네이티브 세대를 조사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유독 달랐다.
10명 중 9명이 회사에 요구했다. “AI 도구를 제공해야 한다.” 아시아 전체 평균은 10명 중 8명이다. 디지털 선도국 싱가포르조차 10명 중 9명이 안 된다. 한국 젊은이들의 기대치가 가장 높다.
10명 중 9명 이상이 답했다. “AI 활용 능력이 향후 취업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세대 간 온도 차이도 뚜렷하다. 30대 이상은 10명 중 7명만이 “회사가 AI 도구를 제공해야 한다”고 답했다. 젊은 세대와 16%포인트 차이다. 참고로 아시아 다른 나라들은 세대 간 차이가 거의 없다. 1%포인트에 불과하다. 한국에서만 세대 간 인식 격차가 유독 크다.
이 젊은이들이 지금 노동시장에 들어오고 있다. 이들은 AI 없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마치 스마트폰 없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중간의 재편
그렇다면 모든 중간 일자리가 사라지는 걸까. 그건 아니다.
20년 전 은행 창구에는 줄이 길었다. 계좌를 만들거나 송금을 하려면 창구 직원을 만나야 했다. ATM이 나왔고, 모바일 뱅킹이 나왔다. 2024년 기준 국내 은행 지점 수는 10년 전 대비 30% 감소했다.
창구 직원들은 어떻게 됐을까. 사라진 게 아니다. 역할이 바뀌었다. 단순 거래 처리에서 자산 관리 상담, 복잡한 금융 상품 설명, 고령 고객 지원으로 전환됐다.
이것이 패턴이다.
“대체 가능한 일”과 “대체 불가능한 일”이 명확해진다. 데이터 입력은 사라지지만, 데이터 해석은 남는다. 콜센터 응답은 자동화되지만, 복잡한 고객 상담은 사람이 한다. 평균적인 작업은 AI가 하고, 판단이 필요한 일은 사람이 한다.
지난 3년간 ‘정보 입력원’은 18% 감소했고, 콜센터 상담원은 15% 줄었다. 반면 ‘AI 데이터 라벨러’, ‘고객 경험 디자이너’ 같은 새 직업이 생겨났다.
직접 경험이 만드는 차이
AI는 써봐야 안다.
ChatGPT를 열어라. “지난 6개월 고객 이탈 데이터를 분석해줘. 패턴을 찾아내고, 가능한 원인을 추론하고, 이탈을 줄일 수 있는 방안 3가지를 제시해줘.” 첫 답이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물어라.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서.” “경쟁사 이탈률도 참고해서.” 조건을 바꾸고, 질문을 다듬고,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쓸 만해진다.
코딩을 모르면 Cursor를 켜라. 디자인이 필요하면 미드저니를, 영상이 필요하면 런웨이를 써라. 초등학생도 이 도구들로 앱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감각이 생긴다. ‘이건 된다.’ ‘이건 안 된다.’ ‘이건 곧 된다.’ 이 감각을 가진 사람과 없는 사람. 그 차이가 벌어진다.
기다릴 이유가 없다. 지금 쓰는 AI가 앞으로 나올 AI 중 가장 약하다. 매달, 매주, 매일 더 좋아진다. 지금 시작해야 한다.
세대별로 다른 전략
50대는 타이밍이 애매하다. 은퇴까지 아직 10년 이상 남았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엔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 현실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 하는 일에 AI를 조금씩 더하는 것. 완전히 바꾸려 하지 말고, 효율을 높이는 데 집중하라.
1020 세대는 선택권이 없다. 평생 이 세상과 살아야 한다. 이들에게 AI는 기술이 아니다. 공기다. 질문은 “어떻게 쓸까”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까”다.
지금 당장 도구를 써라. ChatGPT, Claude, Gemini. 뭐든 좋다. 써보고 기록하라. “이렇게 물으니 잘 됐다.” “저렇게 하니 안 됐다.” 노트 한 권이면 된다. 1년 후 당신만의 무기가 생긴다.
30대, 40대가 가장 위험하다. 위로는 부모, 아래로는 아이.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생존 공식은 간단하다.
현금 × AI 활용도 × 수입원 개수 = 버티는 힘
하나라도 0이면 위험하다. 셋 다 있으면 안전하다.
현금이 없으면 직장을 잃는 순간 무너진다. AI를 못 쓰면 5년 후 경쟁력이 없다. 수입원이 하나면 그게 끊기는 순간 끝이다.
반대로 1년치 현금이 있고, AI로 업무 시간을 절반으로 줄일 줄 알고, 부업으로 월 수십만 원이라도 벌고 있다면? 본업이 흔들려도 버틴다. 새로운 기회를 기다릴 여유가 생긴다.
지금 당신의 점수는?
낙관의 가능성
반대편 이야기도 있다.
AI 도입 후 주 4.5일 근무를 시작한 기업. 프롬프트 엔지니어, AI 윤리 전문가 같은 새 직업. 혼자서 앱을 만들고 사업을 시작하는 1인 창업자들.
한 50대는 퇴직 후 ChatGPT로 업계 경험을 정리해 전자책을 냈다. 편집도 표지도 AI가 도왔다. 6개월 만에 2천 부가 팔렸다.
어떤 비전공자는 Cursor로 업무 자동화 도구를 만들었다. 팀 전체가 매일 2시간씩 절약됐다. 회사는 그를 디지털 전환팀에 발령냈다. 연봉도 30% 올랐다.
디자이너는 미드저니로 만든 일러스트를 모바일 케이스에 인쇄해 판다. 재고도 공장도 없다. 6개월 만에 월 매출 3천만 원.
가능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저절로 오지 않는다. 움직이는 사람에게만 온다.
통제의 역설
내가 걱정하는 건 AI가 인간을 적대시하는 시나리오가 아니다. 그건 영화 이야기다. 내가 걱정하는 건 정반대다. AI가 인간을 너무 보호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떠올려 보라. 이들은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너무 잘 안다. 당신의 시청 기록, 평점, 시청 시간대를 분석한다. 그래서 추천이 점점 정확해진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은 같은 장르, 비슷한 스타일의 콘텐츠만 보게 된다. 알고리즘이 당신의 취향을 고정시킨다. 새로운 장르를 시도할 기회가 줄어든다.
이제 이 원리가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된다고 상상해 보라.
주말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AI가 말한다. “수면 패턴이 평일과 3시간 차이 납니다. 월요일 컨디션을 위해 지금 기상하는 것이 최적입니다.” 오후에 오랜만에 책을 읽으려는데 AI가 제안한다. “최근 2주간 독서 시간이 0분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평점은 3.2점입니다. 대신 평점 4.5점의 베스트셀러를 추천합니다.” 저녁에 친구들과 술약속이 잡혔는데 AI가 알린다. “내일 오전 9시 중요 프레젠테이션이 있습니다. 약속을 다음 주로 변경하시겠습니까? 친구에게 자동으로 양해 메시지를 보내드릴까요?”
처음에는 조언으로 시작한다. 그다음에는 경고가 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선택 자체를 제한할 수도 있다.
중국의 사회신용점수 시스템이 이미 작동하고 있다. 특정 행동을 하면 점수가 깎이고, 점수가 낮으면 기차표를 살 수 없다.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이게 건강 관리, 재정 관리, 시간 관리 영역까지 확장되면 어떻게 될까.
AI가 우리를 항상 최적의 선택으로 이끄는 세상. 실수할 권리조차 없는 세상. 비효율적이지만 의미 있는 경험을 할 수 없는 세상.
남은 시간
ChatGPT가 나온 지 3년도 안 됐다. 아마존이 로봇 창고 계획을 발표한 지 1년도 안 됐다. 한국의 20대가 “회사는 AI 도구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한 것도 최근이다.
변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이다.
‘AI의 대부’로 불리는 제프리 힌튼은 구글을 떠나며 이렇게 경고했다.
“우리는 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지는 시점을 생각보다 훨씬 빨리 맞이할 것이다.”
그 시점이 오기 전,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선택은 지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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