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승규의 스타트업 법률 CASE STUDY] #6. 스타트업 임원의 보수
대표이사였는데 월급을 반환하라니?
증권회사 A에서 과장으로 일하던 창수는 오랜만에 만난 고향 선배로부터 블록체인 스타트업 B에 CEO로 입사할 것을 제안받았습니다. 선배가 이런저런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소문은 창수도 들은 바 있었지만, 자주 보는 사이도 아니었는데 뜻밖의 제안을 해오자 창수는 당황했고 일단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러나 창수도 안정적이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 직장 생활에 지쳐가고 있었기에 조금씩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결정적으로 선배가 현재 연봉의 150%를 제안하자 창수는 결국 합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CEO, 대표이사’라고 적힌 새 명함을 보고 있으면 기분도 좋고 약간 우쭐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선배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거창한 말을 하면서 자신은 회사 법인등기부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고, 명함에는 자신의 직함을 ‘본부장’이라고 적었습니다.
창수가 회사에 출근해 보니 인테리어는 증권회사 못지않게 세련되었지만, 아직 블록체인 기술을 개발할 개발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선배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눠봐도 구체적으로 블록체인과 코인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블록체인과 코인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선배 또한 블록체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선배의 계획이라는 것은 블록체인과 코인으로 짧은 시간에 큰돈을 벌어 보자는 것뿐이었습니다.
창수는 자신의 이직 결정이 성급했던 것은 아닌지 불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어쨌든 150%로 인상된 급여가 계좌에 매월 잘 입금되고 있었고,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다는 설렘도 있어 열성적으로 일에 매진했습니다. 선배에게는 블록체인과 코인이라는 키워드 외에 아무런 계획도 없었으니 창수가 사업을 처음부터 구상해 나가야 했고, 창수는 개발팀과 상의하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선배는 창수의 사업 계획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그런 식으로 사업해서 어느 세월에 큰돈을 버냐는 재촉하는 소리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 선배가 창수와 상의도 없이 새로운 임원을 한 명 영입했는데 직책은 부사장이라고 하면서 선배와 마찬가지로 등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선배가 블록체인 전문가로 소개한 부사장은 아무리 봐도 블록체인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고, 정확히 무슨 일을 했던 사람인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부사장은 대주주인 선배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 빠르게 회사를 장악해 나갔습니다. 이어서 부사장의 사람들이 여럿 입사했고, 창수가 모셔왔던 개발자들은 회사를 떠났습니다. 창수는 회사에서 점점 소외되고 고립되기 시작했고 부사장은 대표이사인 창수도 모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창수는 부사장이 영입되고 두 달쯤 지나서야 회사가 사기성 다단계 회사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회사는 투자자들에게 책임지지 못할 약속을 잔뜩 늘어놓고, 몇 명을 모집하면 얼마를 주며, 다이아몬드가 어떻고 골드가 어떻고 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창수는 그제야 자기가 속된 말로 바지사장이 될 처지라는 것을 깨달았고, 선배에게 찾아가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러자 선배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동안 제대로 한 일이 없으니 월급으로 준 돈을 모두 돌려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창수는 어이가 없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해 선배를 한번 노려보기만 하고 별다른 반박도 없이 자리를 떴습니다.
그런데 창수가 퇴사하고 2주쯤 지난 후 창수에게 소장이 송달되었습니다. 법무법인이 작성한 소장에는 창수가 그동안 부당하게 보수를 받았으므로, 그동안 회사에서 받은 보수 전액을 회사에 반환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임원 보수를 승인하는 주주총회 결의가 없어 창수가 회사에 보수를 청구할 권리가 없음에도 보수를 받아 갔다는 것입니다. 창수는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기가 회사에서 몇 시간을 일했는지 어떤 일들을 했는지 모두 증명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선배는 코웃음을 치며 그런 이야기는 법정에서 하면 된다고 비아냥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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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원의 보수’는 주주총회 결의 필요
상법 제388조는 ‘이사의 보수는 정관에 그 액을 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주주총회의 결의로 이를 정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이사의 보수에 관한 정관 규정이나 주주총회의 결의가 없으면 이사는 보수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회사 설립 시 정관에 임원의 보수를 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임원에게 보수를 지급하기 위해서는 주주총회 결의가 필요합니다. 즉, 임원은 일을 한 시간과는 상관없이 주주총회 결의가 있어야 회사에 보수를 청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사 보수에 관한 주주총회 결의가 없었다면 창수가 회사에 보수를 청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주총회 결의를 거치지 않고 이사가 이미 받은 돈은 어떻게 될까요?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이미 받은 돈은 부당이득이므로 회사에 반환해야 합니다. 창수에게는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창수는 재직 중에 받은 돈을 회사에 반환해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자신이 명목상 임원으로 실질은 근로자이며 선배가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자신을 지휘, 감독했다고 주장해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2. 스타트업에서의 임원과 근로자의 지위
창수가 대표이사가 아니고 회사의 근로자였다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경우 창수가 받은 돈은 근로의 대가인 ‘임금’이 되므로 반환할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창수는 근로자가 아닌 대표이사, 즉 임원이었으므로 근로기준법의 보호가 아닌 임원 보수에 관한 상법 규정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스타트업이라 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임원과 근로자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스타트업에 종사한다면 이러한 임원과 근로자의 지위 차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특히, 스타트업의 임원급으로 이직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임원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미리 이해하고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기업에 입사해서 등기 임원이 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스타트업에서 등기 임원이 되는 일은 비교적 흔한 일입니다. 실제로 자신은 일반 직원인 줄 알고 있었는데, 퇴사할 때 보니 임원이라 보수를 반환하게 되는 웃지 못할 경우가 벌어지곤 합니다.
한편, 위 사례에서 선배와 부사장은 이사의 의무와 책임을 이미 알고 있기에 등기 이사가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회사에서 등기 임원직을 제안한다면 무조건 승낙할 일은 아니고, 여러 가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위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한 가상의 사례이며, 등장 인물, 회사, 단체, 서비스, 제품은 실존하는 것과 무관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글: 법무법인 세움 변승규 변호사
원문: [변승규 변호사의 스타트업 법률 케이스 스터디] #6. 스타트업 임원의 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