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화이트칼라가 해고 0순위가 된 이유
이제 화이트칼라가 해고 0순위가 된 이유
이효석의 주식으로 보는 세상
현재는 ‘어떤’ 위기일까? : 그야말로 경제 위기 상황입니다. 지금이 위기의 한복판인지, 아니면 최악의 상황은 이미 지나갔는지까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이 위기라는 겁니다. 지금껏 위기엔 줄곧 이름이 붙었습니다. ‘대공황’,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등이 대표적이죠. 그럼 먼 훗날, 현재는 어떤 위기라고 부르게 될까요?
유력한 후보는 ‘먹고 살기 힘들었던 위기(Cost of living crisis)’입니다.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물가가 높이 올랐기 때문이죠. 이밖에도 파운드화 폭락 사태를 겪었던 ‘영국의 위기’도 유력한 후보가 될 것이고, 한국은 ‘레고랜드 위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는 ‘화이트칼라의 불황’이라는 단어가 부각되고 있는데요. 사무직 종사자들이 불황을 맞고 있단 내용입니다. 오늘은 이 위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차갑게 식은 미국 고용 : 최근 미국 고용 시장에 매서운 한파가 불고 있습니다. 빅테크 기업들이 최근 잇따라 대규모 인원 감축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메타는 1.1만명, 아마존은 1만명을 해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트위터, 시게이트(하드디스크 제조 업체), 스냅(SNS 서비스 스냅 모기업) 등도 인력을 대거 정리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주에만 실리콘밸리에서 2만명이 직장을 떠났다”고 전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당분간은 해고와 관련된 소식이 많이 들릴 전망입니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그룹 KPMG가 전 세계 CEO 132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향후 6개월간 고용을 안 늘리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75%나 됩니다. 더구나 응답자 80%가 “직원을 줄여야 할지 고민하고 있거나 앞으로 고민하게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관련 내용). 앞으로도 해고 사태가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시사하는 내용입니다.
누가 해고될까? : 그럼 이제 중요한 대목은 바로 ‘누가 해고되고 있는가’겠죠. 앞서 언급한 화이트칼라의 불황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 현재는 사무직 종사자들이 주된 해고 대상입니다. 이전 경기 침체기에 블루칼라 직원들이 가장 먼저 직장을 잃었던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때문에 파이낸셜타임스를 포함한 외신들은 화이트칼라의 불황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국 취업 포털 ‘집리크루터(Zip Recruiter)’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줄리아 폴락은 “이번 사태가 과거 경기 침체 때보다 사무직 근로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 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생산직 업종에선 여전히 노동력 부족을 겪고 있기 때문에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는 곳이 더 많다”고 덧붙였습니다. 현재 경제 위기의 여파가 사무직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입니다.
화이트칼라의 불황, AI 기술 발전의 여파? : 그럼 왜 현재와 같은 화이트칼라의 불황이 생겼을까요? 뻔한 얘기지만, 올해 들어 급격한 금리 인상이 이어지며 경기가 침체됐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기간 비대면 수요가 증가하면서 빅테크 기업들이 직원을 많이 늘렸는데, 경기 침체가 시작되자 다시 몸집을 줄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비단 코로나 때문만의 일일까요? AI 기술이 더 고도화되면서 사람의 일자리, 그것도 사무직 일자리가 위협 받고 있기 때문인데요. 19세기 초반 방직기가 등장하면서 러다이트 운동이 시작된 상황과 비슷합니다. 앞으로는 기계가 아닌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게 되는 겁니다.
생산직 업무를 AI가 대체하긴 어려워 :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AI와 관련한 명언 중 모라벡의 역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어려워하는 걸 AI는 쉽게 할 수 있지만, 반대로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건 AI가 어려워한다는 역설입니다.
예를 들어 5개 국어를 구사하는 건 사람에게 너무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AI에겐 쉽죠. 복잡한 수학 문제를 푸는 것도 사람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AI한텐 너무 쉬운 일입니다. 반면 식탁을 닦고 바닥을 청소하는 등 사람이 일상적으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AI에겐 어렵습니다. 어쩌면, 모라벡의 역설이 <왜 블루칼라가 아닌 화이트칼라가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무직 업무보다 생산직 업무를 대체하기가 더 어렵다는 거죠.
대학 전공 선택에 변화가 생길 수도 : 단순히 직장에서만이 아니라 학교에서도 변화 조짐이 일고 있습니다. 얼마 전 대학생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최근에는 1학년 때 학과를 정하지 않고 2학년 때 학과를 정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올해 전공을 고른 학생 중에선 극히 일부 학생들만 기계과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전기차로 전환이 되면 엔진 제작 기술이 필요 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최근 H사에서 관련 인력을 뽑지 않겠다는 뉘앙스를 풍긴 게 트리거가 된 것 같다는 얘기였습니다. 반대로 컴퓨터 공학과에는 거의 절반에 가까운 지원자가 몰렸다더군요.
그 얘기를 듣고 저는 제가 학교 다닐 때였던 20년 전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당시엔 이공계 기피 현상이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일 정도였다고요. (사실 2000년대 닷컴 버블의 후유증일 수도 있습니다.) 학생들은 정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럼 설마 그때는 문과를 선호했었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고요.
이공계 기피, 다시 반복될까? : 하지만 현재 벌어지는 화이트칼라 불황 사태를 보면, 또 새삼 세상은 돌고 돈다는 사실이 떠오릅니다. 빅테크가 성장하면서 소위 SW 개발자들이 엄청난 연봉을 받으면서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지금은 해고 대상이 되는 것처럼요. 20년 전, 이공계 기피 현상이 지금은 완전히 잊히고 오히려 이공계를 선호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놓치면 아까운 소식
> 러시아,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 : 우크라이나 침공 후 서방의 경제 제재를 받는 러시아가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는 소식입니다(🔗관련 기사). 그동안 러시아 경제는 강도 높은 제재에도 불구하고 잘 버텼단 평가를 받았습니다. 중국과 인도 등 우방국들과 에너지 거래를 늘렸고, 정부 차원의 지출도 확대해 경기를 부양한 덕분입니다. 특히 세계적으로 에너지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러시아 경제의 버팀목이 됐었는데요.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더는 버티기 힘들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공식적인 경기 침체에 접어들었고, 내년부터는 더 심각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번져가는 FTX 파산 여파, 이젠 대출 업계까지? : 세계 3위권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 FTX가 얼마 전 파산 보호를 신청했죠. 이로 인해 코인 가격이 폭락하는 등 파장이 급속도로 확산 중인데요. 그 여파가 이들 업계에 투자한 대출 업계로도 번지고 있습니다. 어제 암호화폐 대출업계의 ‘큰손’으로 불리는 제네시스란 업체가 신규 대출 중단을 선언한 건데요. 이 업체의 암호화폐 대출 잔액만 약 3조7500억원에 달합니다. 뿐만 아니라 FTX 관계사에 대출을 내준 블록파이란 업체도 파산 신청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