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지(prezi)에 대한 몇 가지 선입견
가끔 강의중 쉬는시간이나 끝나고 나서 키노트, 파워포인트, 프레지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 어떤 것이 가장 좋으냐는 질문이 대부분이다. 뭐 당연히 던질만한 질문이지만 어찌보면 어리석은 질문이기도 하다. 내 대답은 대략 이렇다. “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다”
어떤 연주자는 펜더 텔리캐스터를 기가 막히게 치고 누구는 깁슨 레스폴로 명곡을 만들어 낸다. 펜더와 깁슨 둘 중 어떤게 더 좋으냐고 묻는것과 똑같지 않은가 ? 기타때문에 명곡이 태어난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의도를 그 기타로 가장 잘 풀어낼 수 있어서 그게 명곡이 된것 아니던가 ? 무협지를 읽다보면 종종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무림인이면 누구나 찾아 헤메는 전설의 무술비급을 익힌 전도유망한 어떤 젊은이가 고수한테 도전하는 장면이다. 놀랍게도 그 늙은 고수는 오래동안 감추어두었던 비전절기로 그 젊은이를 상대하지 않고 시정잡배도 알고 있는 초보적인 권법으로 그 젊은이를 제압한다.
난 키노트를 주로 사용한다. 지금 나의 행태와 딱 잘 맞기 때문이다. 왜 프레지를 사용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난 ‘아직 프레지를 사용해야 겠다고 맘먹은 스토리가 없어서’라고 답했다. 어찌나 사용을 안해봤는지 아마 지금 프레지를 잡는다면 며칠은 엄청 고생할 듯 하다. 그러나 프레지가 가지고 있는 핵심은 그대로일 거라 추측하고 있다.
‘그렇다면 프레지에 딱 어울리는 스토리가 있다는 말입니까?’라는 물음에 난 ‘적어도 내 생각엔 그렇다’고 대답했다. 화가들에겐 각자의 스타일이 있다. 그 스타일은 평생을 두고 보통 2~3번 변하는 것 같다. 우리는 그걸 가지고 그 화가이 작품세계를 초기-중기-후기 같이 나누곤 한다. 스토리를 주로 만들어내는 나도 나만의 몇몇 스타일이 있고 그 몇 개는 패턴화 되었다. 어쩌면 수련이라는 것은 평생 한군데 몰두하면서 찾는 나만의 패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난 항상 프레지에 가장 어울리는 패턴은 Big Picture 라고 생각해왔다. 또 몇개가 더 있는데 그건 아직 어렴풋하다.
최근 들어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강의에서 난 프레지를 드디어 뽑아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딱 내가 생각해오던 그런 패턴의 이야기가 드디어 등장했다. 이 이야기는 거대한 Map인데 전체를 보여줘야할 필요도 있고 그 상태에서 특정한 부분에 접근해서 얘기해야할 필요도 있는 그런 플롯을 가졌다. 그러면서 오솔길처럼 이어진 다음코스를 끊임없이 따라다니기도 해야 하는 그런 구조다.
버스를 타고 오락가락하면서 계속 그걸 어떤 형태로 표현할지를 생각하고 있다. 두 갈래인데 하나는 전지적인 시점에서 전체 맵을 수직으로 내려보는 구도로 가는 것과 1인칭 시점이 되어 자동차경주 게임을 하듯 로드무비같이 계속 길을 가는 구도이다. 아마 기술적으로는 후자가 더 어렵고 고려할 사항이 많으며 맵전체가 예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둘 다 시도하려고 할텐데 전자의 것을 먼저 시도하게 될 것 같다.
난 이걸 완전히 아날로그식 프레젠테이션으로 만드려고 한다. 노트에 상세히 스케치해두고 전지보다 더 큰 크기에 그림 한장을 그려 이걸 몇 미터 위에서 내려다 보며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아니면 수십센치 위에서 사진을 여러장을 찍어 초고해상도 사진 한장으로 이어붙이기를 할 수도 있다. 이건 딱~ 프레지이기 때문에 해낼 수 있는 이야기 전개 방식이다.
내가 프레지를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것은 ‘전체’에 대한 염려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전체의 그림과 구도를 청중의 머리속에 넣기를 좋아하는데 프레지는 고유의 장점에도 불구, 자칫하면 전체를 보여주기는 커녕 조각낼 위험이 크다. 프레지 고유의 특성을 단지 신기한 화면전환 효과에만 두고 생각없이 작성한다면 정말 위험할 수 있다.
단, 정확하고 정밀하게 논리를 증명해가야 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 목적이 아니라 이야기전체에 뭉게구름같은 느낌만을 전달하는 이야기라면 프레지를 사용해도 상관없다 생각한다.
이상이 프레지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었다. 아마 몇몇 선구자들이 나의 이런 선입견을 보기좋게 깨리라 믿는다. 그것으로 나의 견문도 넓어지고 어리석었다고 자책하면서 또한 성장하겠지.
출처원문 : 프레지에 대한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