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로에 들어선 것처럼 혼란스러운 디지털 세상. 우리는 매일 스마트폰을 켜고 수많은 앱을 다운로드하며 새로운 동굴로 발을 들인다. 그때마다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이용약관이다. 누가 그것을 읽겠는가? 한국인 세 명 중 한 명은 읽지 않는다. 그저 ‘동의합니다’를 누를 뿐이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위험한 무심함이다.
글로벌 사이버 보안 기업 노드VPN의 조사 결과는 세태를 보여준다. 한국인의 36%는 앱이나 온라인 서비스의 개인정보 보호 정책을 전혀 읽지 않는다. 평균 80개 이상의 앱을 사용하는 현실에서, 이는 마치 자신의 집 열쇠를 80명의 낯선 사람에게 나눠주고 “알아서 잘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현재 앱스토어의 현실은 어떠한가? 애플 앱스토어에는 약 180만 개, 구글 플레이스토어에는 약 330만 개의 앱이 존재한다. 그 엄청난 숫자 앞에서 사용자들은 지친다. 무한히 반복되는 약관, 끝없이 나타나는 권한 설정 창. 결국 우리는 ‘그냥 넘기는’ 습관을 갖게 된다. 마치 열차가 지나갈 때 철길의 위험 표지판을 무시하는 것처럼.
특히 15~29세의 젊은 연령대가 약관에 무관심하다는 사실은 더욱 우려스럽다. 디지털 네이티브라 불리는 이들이 오히려 디지털 세상의 위험에 더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는 아이러니. 모든 연령대에서 제3자와의 데이터 공유 정책에 가장 관심이 높지만, 그마저도 절반은 읽지 않는다.
앱 권한 허용에서는 상대적으로 신중한 모습을 보인다. 전체 응답자 중 92%는 앱 기능에 꼭 필요한 권한만 허용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것이 충분한가? 노드VPN의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안드로이드 앱의 87%, iOS 앱의 60%가 실제로는 필요하지 않은 기기 접근을 요청하고 있다.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권한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무지를 이용한 과도한 요구인지 판단할 수 있는가?
소프트웨어나 앱 업데이트를 미루는 행동도 문제다. 전체의 25%가 업데이트를 자주 미룬다고 답했다. 이는 마치 집의 열린 창문을 그대로 두고 외출하는 것과 같다. 해커들에게는 열린 초대장이나 다름없다.
노드VPN의 사이버 보안 전문가 아드리아누스 워멘호번은 이렇게 말한다. “데이터와 석유, 토지 중 무엇이 더 가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은 여전하지만,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는 데이터라는 명확한 답이 있다.” 물리적인 자산과 달리 개인정보는 흔적도 없이 복사, 도난, 손상, 판매가 이루어질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가장 두려운 현실이다.
우리는 매일 디지털 세상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어둠 속에서 빛이 되어주는 것은 지식뿐이다. 앱은 반드시 공식 스토어에서 다운로드하고, 요구하는 권한을 꼼꼼히 살피고, 카메라나 마이크 같은 민감한 권한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허용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 정책을 확인하고, 수집 정보가 과도할 경우 다른 앱을 찾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심코 ‘동의합니다’를 누르는 순간,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들이 새어나간다는 사실이다. 디지털 시대의 무심함은 곧 위험이다. 우리는 지금, 약관을 읽지 않은 채 미로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