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회사에서 “프로젝트 관리”라는 말을 듣지 않는 날이 없다. 신제품 출시도 프로젝트, 시스템 도입도 프로젝트, 심지어 회사 이사도 프로젝트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은 부족하다. 늘 그랬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부족함이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서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벽이 될지도 모른다. 글로벌 프로젝트 관리 협회(PMI)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PMI의 ‘글로벌 프로젝트 관리 인재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2035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3천만 명의 프로젝트 관리 전문가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한다. 지금 전 세계에 4천만 명의 프로젝트 전문가가 있으니, 10년 후엔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 숫자가 얼마나 큰지 감이 안 온다면, 전 세계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2천5백만 명, 간호사가 3천만 명 정도라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프로젝트 관리라는 직업이 이제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는지 알 수 있다.
한국은 어떨까? 현재 40만 명 수준인 프로젝트 관리 전문가 수요가 2035년엔 55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2만 명이 새로 필요하다는 뜻이다. 은퇴하는 사람들까지 고려하면 실제로는 더 많은 인재를 키워야 한다.
답은 간단하다. 세상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첫째, 디지털 전환이다. 모든 회사가 디지털화를 외치고 있지만, 이는 단순히 컴퓨터를 더 많이 쓰는 게 아니다. 업무 방식 자체를 바꾸는 거대한 프로젝트다. 누군가는 이 변화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둘째, 경제적 불확실성이다. 팬데믹, 공급망 위기, 지정학적 갈등…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기업들은 기존 사업 모델을 재구성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셋째, 대규모 인프라 투자다. 반도체 공장, 배터리 생산 기지,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규모가 커질수록 프로젝트 관리의 중요성도 커진다. 조금만 삐끗해도 수조 원이 날아갈 수 있으니까.
모든 산업에서 프로젝트 관리자가 필요한 건 아니다. 건설업에서 수요가 가장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최대 66%까지 증가한다고 한다. 제조업, 전문 서비스, IT 서비스도 성장세가 만만치 않다.
특히 한국 같은 경우, 반도체, 배터리, 친환경 에너지가 주력 산업인데, 이 분야들은 모두 대규모 프로젝트로 움직인다. 삼성의 미국 텍사스 반도체 공장, SK의 배터리 생산 기지, 한화의 태양광 사업… 이런 프로젝트들을 성공시키려면 고숙련 프로젝트 관리 인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PMI의 피에르 르 만 회장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수백만 명의 프로젝트 전문가가 아니라, 리더십을 발휘하고 성과를 달성하며 대담한 아이디어를 실질적이고 지속가능한 결과로 전환할 수 있는 준비된 전문가들”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프로젝트 관리자는 단순히 일정을 관리하고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불확실성 속에서 방향을 제시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때로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IT 프로젝트에서 개발이 예상보다 지연되고 있다고 하자. 일정을 늦출 것인가, 기능을 줄일 것인가, 인력을 더 투입할 것인가? 각각의 선택지마다 비용과 위험이 다르다. 프로젝트 관리자는 이런 상황에서 최선의 판단을 내려야 한다.
PMI는 세 가지 전략을 제시했다.
첫째, 프로젝트 전문가들이 전략적 사고방식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단순히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는 게 아니라, 조직의 전략을 이해하고 그에 맞춰 프로젝트를 이끌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기업들이 직원들의 업스킬링과 리스킬링에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기존 직원들을 프로젝트 관리자로 키우는 게 새로운 사람을 채용하는 것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
셋째, 교육계와 산업계가 협력해 인재 파이프라인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대학에서부터 프로젝트 관리 교육을 강화하고, 자격 인증 제도를 확대하는 것이다.
이 보고서를 읽으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프로젝트 관리자라는 직업의 미래가 밝아 보여서 좋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과연 우리가 이 3천만 명의 인재를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단순히 숫자만 채우면 되는 게 아니다. 실제로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들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프로젝트 관리라는 일 자체도 변화하고 있다. AI와 자동화 기술이 발달하면서 단순 반복적인 업무는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의 프로젝트 관리자는 더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양이 아니라 질이다. 3천만 명의 프로젝트 관리자가 필요하다지만, 그들이 모두 뛰어난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최소한의 역량은 갖춰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PMI 보고서는 단순한 통계 자료를 넘어서 우리에게 중요한 화두를 던져준다. 우리는 어떤 프로젝트 관리자를 키울 것인가? 그리고 그들은 미래의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답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질문은 명확해졌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