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아마존 CTO “AI 시대, 개발자의 가치는 코딩이 아닌 맥락 이해에서 나온다”

“AI가 만드는 건 ‘그럴듯해 보이는 쓰레기’… 도메인 지식이 핵심”

아마존의 버너 보겔스(Werner Vogels) CTO가 AI 시대 개발자의 역할 변화를 전망하며 ‘르네상스 개발자(renaissance developer)’라는 개념을 강조했다.

보겔스는 최근 발표한 ‘2026년 이후 기술 전망’에서 “생성형 AI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방식을 재편하면서 개발자가 쓸모없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는 개발자의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유형의 개발자가 부상하는 시작”이라고 밝혔다.

“컴파일러도, 클라우드도 개발자를 대체하지 못했다”

보겔스는 기술 발전이 개발자를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초기 어셈블리 프로그래머들은 컴파일러가 자신들을 쓸모없게 만들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다”며 “2000년대 클라우드 컴퓨팅이 등장했을 때도 운영 엔지니어들이 비슷한 우려를 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컴파일러는 더 많은 사람이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낮췄고, 클라우드는 새로운 프로젝트와 기업, 엔지니어링 역할의 폭발적 증가를 이끌었다. 보겔스는 “매번 단순화가 이루어질 때마다 수요는 오히려 더 커졌다”고 강조했다.

“AI는 예산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

보겔스가 강조하는 핵심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는 “생성형 AI는 몇 초 만에 코드를 만들어내지만, ‘GIGO(Garbage In, Garbage Out)’ 원칙은 여전하다”며 “다만 이제는 ‘그럴듯해 보이는 쓰레기’가 나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가 제시한 사례들은 구체적이다. AI는 경영진이 비용과 성능 중 어디에 우선순위를 둘지 논의하는 예산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 고객 서비스 시스템에는 99.999%의 가동률이 필요하지만 내부 대시보드는 잠시 다운되어도 괜찮다는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관계자가 “빨리 만들어라”라고 말할 때 그 이면에 “싸게 만들어라”라는 의미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읽어내지 못한다.

보겔스는 “기술적 결정을 좌우하는 정치적 요소, 제약 조건, 암묵적 우선순위는 매우 미묘하다”며 “이를 사용하는 사람과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에게 왜 중요한지 이해하는 개발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르네상스 개발자의 조건

보겔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예로 들었다. 다빈치는 모나리자를 그리기 전에 시신을 해부해 근육 구조를 이해했고, 수로를 설계하기 위해 물의 흐름을 연구했으며, 비행 기계를 상상하기 위해 새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예술, 과학, 공학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르네상스 시대 거장들처럼, AI 시대의 개발자도 다재다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정의하는 ‘르네상스 개발자’는 시스템을 서비스, API, 데이터베이스, 인프라, 그리고 사람까지 아우르는 역동적 환경으로 이해하는 사람이다. 인간과 기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의사소통하고, AI가 자신의 오류에 점점 더 확신을 갖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만드는 것의 품질과 안전성을 책임진다. 무엇보다 비즈니스, 고객, 현실의 제약 조건에 대한 도메인 지식을 갖추고 끊임없이 학습한다.

보겔스는 “한 가지 분야에 갇히기를 거부했던 르네상스의 위대한 사상가들처럼, 개발자도 더 이상 고립된 상태로 머물 수 없다”며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는 빅테크 임원의 전망이다. 현장의 목소리는 다를 수 있다.

한편, 주니어 개발자 채용은 급감 중

하지만 데이터는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3년 이후 대규모 인력 감축을 단행했으며 개발자도 대거 포함됐다. 미국 AI 회사들의 신규 개발자 채용은 2022년에 비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국 게임 업계도 마찬가지다. 반면 경력자들의 일자리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AI가 저지른 실수를 검증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젊은 세대가 경력을 쌓을 기회 자체가 막혀버렸다는 점이다.

하버드대 연구진이 2만 8,500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AI를 도입하지 않은 기업에서는 주니어와 시니어 채용이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AI를 도입한 기업은 달랐다. 2022년을 기점으로 두 곡선이 극명하게 갈라졌다. 시니어 채용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주니어 채용은 급락했다. ‘시니어 + AI’면 충분하다는 계산이 작동한 것이다.

개발자와 비개발자의 경계도 흐려지고 있다

또 다른 변화도 진행 중이다.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라 불리는 흐름이다. 자연어로 원하는 것을 설명하면 AI가 코드를 생성해주는 방식으로, 2025년 초 OpenAI 공동창업자 안드레이 카르파시(Andrej Karpathy)가 이름을 붙였다.

아직 주류는 아니지만 성장세는 가파르다. Y Combinator의 2025년 겨울 배치 스타트업 중 25%는 코드베이스의 95%가 AI 생성이었다. 비기술 창업자의 44%가 개발자를 고용하는 대신 AI 코딩 도구로 초기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있다. 클라르나(Klarna) CEO는 “코딩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면서도 이전에는 엔지니어링 팀이 몇 주 걸리던 작업의 프로토타입을 20분 만에 받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온다. 올해 채널콘에서 비팩토리 노정석 대표는 “이제 개발자는 의미 없는 것 같다”며 “마케터나 엔지니어나 다 똑같이 문제 해결을 잘하는 사람만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회사는 35명 중 15명이 엔지니어지만 백오피스 직원은 없다. “전부 AI가 해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광고의 98%도 AI 파이프라인으로 제작한다.

물론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 2025년 9월 패스트컴퍼니는 ‘바이브 코딩 숙취(hangover)’가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시니어 엔지니어들이 AI 생성 코드를 유지보수하며 ‘개발 지옥’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안 취약점, 예측 불가능한 버그, 누적되는 기술 부채가 문제로 지목된다.

그래서, 개발자란 무엇인가

보겔스의 ‘르네상스 개발자’론은 역설적인 질문을 남긴다. 그가 강조하는 핵심 역량은 코딩 자체가 아니라 도메인 지식, 맥락 이해,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이다. 그렇다면 이 역량은 반드시 ‘개발자’라는 직함을 가진 사람에게만 있어야 할까.

바이브 코딩의 부상은 코딩 능력과 소프트웨어 제작 능력이 분리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주니어 채용 급감은 전통적 개발자 커리어 경로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겔스가 말하는 ‘르네상스 개발자’가 되려면 먼저 업계에 진입해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그 문이 닫히고 있다.

결국 변하고 있는 것은 개발자의 역할만이 아니라, ‘개발자’라는 정의 자체일지도 모른다.

플래텀 에디터 / 스타트업 소식을 가감 없이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댓글

댓글 남기기


관련 기사

스타트업

더핑크퐁컴퍼니 ‘베베핀’ 완구, 일본 아마존 2개 부문 1위

글로벌

오픈AI, ChatGPT에 쇼핑 기능 탑재…아마존과 정면충돌

글로벌

AWS, 2031년까지 한국에 7조원 추가 투자

이벤트

아마존, 국내 첫 커뮤니티 펀드 출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