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PPT ‘증거강박증’은 없는가?
결론(주장)-이유(명분)-증거로 이어지는 논리의 3요소에서 결국 청중이 움직이는 것은 ‘이유’때문이다. 증거는 그야말로 거들뿐이다. 따라서 증거는 최대한 깔끔하게 손질해 알아보기 쉬운 단순한 형태로 출처와 함께 제시하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사실에 의거한 증거를 놓고 해설을 하고 해석을 한다음 의미있는 메시지를 청중에게 던진다.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는 작업은 아주 중요하지만 일단 찾아낸 증거는 그 자체로 청중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임팩트 있게 해석되었을 때 힘을 가지는 것이다. 난 해석의 힘을 기획자의 3가지 생각정리 역량 중 두번째 ‘생각의 깊이’에 대한 능력이라고 했었다.
이 두번째 생각정리 능력이 간과된 채 결정적인 증거만 제시하면 청중이 모두 내가 의도하는 바대로 생각해 줄것이라 믿는 것은 착각이다. 예를들어 분석성향이 강한 경제학자들이나 재무 데이타 등 숫자를 주로 다루는 직종에 종사하는 기획자들은 장기간의 경제지표 변화 등과 같은 챠트형태와 같은 ‘증거’를 슬라이드 내에서 가장 크게 그리고 그 사실에서 임팩트있는 메시지를 찾아내 포장하고 이야기를 만드는데엔 상대적으로 소홀한데 나는 그것을 증거강박증이라 부른다.
증거는 엮어주지 않는 이상 그 자체로 흐름과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에 증거가 단순나열되는 지루한 프레젠테이션(혹은 문서)가 될 수밖에 없다. 위 슬라이드 모습이 전형적인 증거강박증의 형태인데 챠트로 그려진 증거가 슬라이드의 2/3를 차지하고 있고 헤드라인 아래의 몇 줄의 텍스트는 증거에 대한 해석과 그에 따른 이유를 설명하고 있으나 챠트와 텍스트가 따로 놀고 있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청중이 증거의 출처에 대해 의심을 제기할 것이라고 예상되지 않는 상황 즉, 나를 언제나 믿어왔던 청중(직장상사나 동료)이거나 시간이 없다면 증거는 ‘사실이라고 치고’ 간단히 넘어가버리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된다면 위 슬라이드의 아래 2/3는 무시된다. 모든 신경은 바로위의 텍스트 몇 줄에 집중되는데 그건 보다시피 좀 부실한 상태다. 난 상황에 따라 저 챠트 자체가 생략되고 간단한 숫자 몇 개로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경우엔 해당 챠트를 각주를 달아놓고 첨부자료로 빼내는 것이 맞다. 이것이 첫번째 처리방법인데 이렇게 해놓으면 증거강박증이 있는 기획자라면 광장공포증에 시달리게될것임. (그에게있어 장표는 챠트가 전부였기 때문임)
위 슬라이드는 챠트를 첨부로 빼내고 각주로 처리한 상태를 보여준다. 발표중 누군가 그 숫자의 근거를 대라고 요구하면 선택적으로 보여줄 요량으로 말이다. 챠트가 떠난 자리엔 증거를 4단계로 해석한 텍스트와 우리가 이 슬라이드에서 진짜 말하고 싶었던 두 가지의 시사점이 흐름과 구조를 가지며 배치된다. 만약 챠트를 빼기 싫으면 적어도 챠트의 크기를 줄이고 해설과 시사점을 제대로 표시할 준비를 하라. 그리고 첫번째 슬라이드 그림처럼 챠트와 두 가지 이유가 서로 분리되어 따로 놀고 있게 만들지 말라.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챠트라면 모를까 내용이 어렵다면 청중들 중에서 일부는 저 텍스트가 챠트의 어느 부분과 매칭되는지 모를 수도 있다. 아마 고위 임원들이 모인 회의석상에서라면 저 챠트에 대해 질문하기 쉽지 않을수도 있다 자칫하면 자신의 상식이 폭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챠트를 첨부자료로 빼내고 싶지 않다면 오히려 챠트를 더 중심부로 끌어들여 스토리텔링의 중심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스로슬링 박사가 이 부문에선 가히 천재적이다) 챠트내의 특이 포인트를 표시하여 화살표로 끌어내고 그것을 텍스트에 연결만 시켜도 이는 간단하게 완성된다. 세번째 슬라이드 그림이 그것을 보여준다. 이제 텍스트는 챠트 안으로 내려와 특정 부분을 해설하고 지칭한다. 훨씬 친절해졌다. 색깔이 다른 부분을 주목하라. 우리는 다음 슬라이드에서 동그란 부분을 확대해서 자세히 설명할 예정이다. 그래서 저렇게 주목하라고 칠해놓은 것이다. 결국 다음 슬라이드는 저 동그란 부분을 줌인(Zoom-In)하여 들어가는 느낌이 될 것이다. 슬라이드와 슬라이드는 그렇게 연결성을 가지게 된다.
출처원문 : 증거강박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