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디디아이(KDDI, 이하 KDDI)는 NTT도코모, 소프트뱅크와 함께 일본의 3대 이동 통신사로 꼽히는 기업이다. 일본 내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가 1984년 설립해, 2013년 기준 제2위 통신 업체로 성장했다. 이들이 일본의 벤처캐피털 ‘글로벌브레인(Global Brain, 이하 GB)과 손잡고 본격적인 한국 스타트업 투자에 나선다.
이를 위해 KDDI와 GB 측은 한국 전임 담당자를 파견하기까지 했다. 단기간의 일회성 투자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한국 벤처 전반으로 투자 범위를 넓히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들은 왜 한국을 선택했을까. 글로벌브레인의 노부타케 스즈키, 김정용 파트너와 KDDI 우시오다 토모카즈 부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왼쪽부터 KDDI 우시오다 토모카즈 부장, 글로벌브레인 노부타케 스즈키
■ 日 3대 이동 통신사 KDDI, 왜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할까?
KDDI가 벤처 투자를 위해 세운 지사는 전 세계에 단 세 곳. 일본, 미국에 이어 새로운 투자 거점으로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펀드 규모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를 부탁한다.
KDDI 우시오다 토모카즈 부장 (이하 KDDI) : KDDI는 2012년에 GB와 함께 합계누적약속금액이 100억 엔인 KDDI Open InnovationFund(KOIF)를 설립했고, GB가 2016년에 새롭게 설립한 150억 엔 규모의 신펀드인 GB6에 KOIF에서 투자하여 GB6를 통해 한국 벤처에 투자를 진행한다. GB6에는 한국의 정부계 금융기관도 투자를 할 예정으로 4~5년에 걸쳐서 건 당 5천만 엔에서 수억 엔, 누적으로는 수십억 엔가량을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그리고 이 투자의 조직 체계를 만들기 위해 KDDI와 GB에서 전임 담당자가 2016년 10월에 부임했다.
KOIF는 한국 외에 어떤 해외 기업에 투자하나.
KDDI : 현재까지 KOIF는 34개 기업에 투자했는데, 이 중 13개가 해외 기업이다. 미국, 영국 기업에도 투자하고 있다.
집중하고자 하는 분야가 있다면.
KDDI: AR·VR·AI·IoT와 같은 하이테크 분야는 물론 모바일·인터넷 분야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분야에서 투자처를 물색할 예정이다. 기본적으로는 일본 시장에 들여올 수 있는, 일본보다 선진적인 기술과 서비스를 가진 기업 위주가 될 것이다.
펀드 운용을 일본 벤처투자사인 GB가 맡았다. 협업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KDDI : 먼저 GB는 이미 VCNC, 파이브락스, NBT 등 10개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들 중 두 개사는 엑시트했고, 작년에는 한국 오피스도 개설했다. 일본 VC 중 한국 벤처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고, 관련 네트워크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파트너로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GB: GB에서는 한일 양국에서의 창업 경험을 가지고 있는 김정용 파트너를 한국 KOIF담당으로 선임했고 , GB의 스즈키 노부타케 파트너가 당분간 한국에 있으면서 도움을 줄 예정이다. 구체적인 딜 소싱은 KDDI의 우시오다 토모카즈씨와 김정용 파트너가 하게 된다.
일본, 미국에 이어 세 번째 해외 투자 거점으로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 전임 담당자를 파견하면서까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가 궁금하다.
KDDI : 시장 규모나 GDP는 일본이 한국에 비해 세 배 정도 높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벤처 자금 조달액은 한국이 일본을 웃돌고, 정부 지원도 적극적이다. 전체적으로 벤처 생태계가 좀 더 활성화되어 있는 분위기다. 또 한국과 일본은 이웃 국가이기 때문에, 문화에도 비슷한 면이 많다. 그래서 한국에서 성공한 서비스를 일본에 출시해보면 사용자들이 친숙함을 느낀다. 그런데 동시에, 한국 서비스를 일본으로 들여올 때 생각보다 경쟁이 치열하지가 않다. 라인(LINE)이 처음 일본에 들어왔을 때도, 경쟁자가 많지 않아 금세 선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GB가 투자했던 파이브락스(5Rocks)의 선례도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2014년 미국 최대 모바일 광고 회사에 매각됐다.
일본에는 자금은 많은데 투자할만한 스타트업이 적다는 편견도 있다. 해외로 투자 범위를 넓히는 이유가 이 때문인가.
GB: 그렇진 않다. 일본에도 투자할만한 기업이 아직 많다. 일본에서도 활발히 투자를 진행하고 있지만, 우리가 해외 투자에 나서는 이유는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 최고 수준의 인재를 갖춘 다양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싶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도 VR, 로봇 등은 일본의 특기지만 모바일 서비스나 코어 테크놀로지 쪽으로는 한국이 앞서있다. 각 국가, 기업별 강점이 다르기에 해외 투자도 부지런하게 진행하고 있다.
투자를 원하는 기업은 어떤 방식으로 지원할 수 있나.
KDDI: 한국에서의 첫 활동으로 코트라, KDDI, GB 삼자 공동으로 일본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피칭 콘테스트를 실시했다. 약 100개 사의 응모가 있었고, 이 중 10개사가 도쿄 KDDI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실시했다. 앞으로도 KDDI나 KDDI 파트너 기업과 사업 시너지를 모색하며 투자 검토를 할 예정이다.
■ 34개 대기업과의 협업 기회,
일본 최대 규모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 ‘무겐라보’
무겐라보(KDDI∞Labo)는 KDDI가 벌써 11회째 운영하고 있는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이다. 일본 내에서는 인지도나 규모 면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무겐라보 이야기를 해보자. 어떤 프로그램인가.
KDDI: KDDI의 벤처 비즈니스는 초기 단계부터 후기 단계에 이르는 전 영역의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다. 그중 초기 단계 스타트업은 이 무겐라보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한다. 5년 전에 처음 시작된 무겐라보는 1년에 2회씩 진행되어 벌써 11기를 맞았다. 지금까지 1,300여 개의 기업이 지원했고, 54개의 기업이 프로그램을 수료했다. 9기까지는 인큐베이팅 형태로 아이디어만 가진 극 초기 기업이 프로덕트를 세상에 내놓는 단계까지를 지원하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지난 기수인 10기부터는 프로그램 성격을 엑셀러레이팅으로 바꾸고, 이미 제품을 출시했지만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을 선발했다. KDDI가 가진 여러 채널과 네트워크를 통해 이들의 시장 진입을 도왔고, 전 기수에 비해 더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일본 최대 규모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이라고 들었다. 참여 스타트업은 무겐라보를 통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나.
KDDI: KDDI 뿐 아니라 34개 대기업이 파트너사로 들어와 있다는 점이다. 구글·세븐일레븐·테레비아사히 등 유명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협업 욕구는 높지만 현실적인 접점이 많지 않다. 무겐라보는 그 가교 역할을 맡고 있다고 보면 된다. KDDI는 이동 통신사이기 때문에 지원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된다. 이를 위해 파트너사를 모집했다. 처음에는 우리가 권유하는 형태였지만, 이제는 대기업 측에서 스스로 우리에게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다. 무겐라보를 통해 대기업은 혁신의 동력을, 스타트업은 온·오프랑니 유통 채널과 사업 노하우를 얻어가게 된다. 또 한 기수가 끝나면, 데모데이를 개최하는 데 이 자리에 700명 정도가 참여한다. 다양한 협업, 투자 유치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무겐라보 프로그램의 파트너사
구체적인 성공 사례가 있다면.
KDDI: 마모리오(Mamorio)는 물건 분실 방지 IoT 기기를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이들은 무겐라보를 통해 재팬에어라인(일본 국적 항공사), 테레비 아사히 (방송국) 등과 협업했다. 기내와 방송국 모두 비품이 하나라도 없어지면 안 되는 장소다. 무겐라보를 통해 이 두 대기업과 마모리오가 실증 실험을 거쳤고, 사업화에 성공해 현재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지원은 KDDI 혼자서는 불가능하지 않나. 여러 대기업이 파트너사로 있다는 것은, 참여 스타트업에게 분명 폭넓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자금 지원도 있나.
KDDI: 무겐라보는 자금 지원을 전제로 한 프로그램은 아니다.
한국 기업도 이번 기수에 처음으로 선발이 되었다고 들었다.
KDDI: 맞다. ‘왓챠’를 서비스하는 프로그램스가 참여하게 됐다. 최근 KDDI가 VOD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 현재 일본에도 넷플릭스 등이 들어와 있지만, 아직 VOD 시장의 명확한 승자가 없는 상태다. 프로그램스와의 좋은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
무겐라보 프로그램에는 어떻게 지원할 수 있나.
KDDI: 공고가 떴을 때 홈페이지에서 직접 응모할 수 있다. 지난 기수에는 코트라에서 선발한 기업을 대상으로 심사했다. 향후에도 한국 내 전문 기관과 협업하는 방식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을 검토해가고 싶다.
■ 한국 스타트업, ‘글로벌 향’은 강점, ‘빨리빨리 문화’는 강점이자 약점
이미 10개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한 경험이 있는 GB의 노부타케 스즈키 파트너가 일본 시장과 한국 스타트업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 했다.
앞서 말했듯 GB는 VCNC, 파이브락스 등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한 경험이 있다. 투자자로서 경험한 한국 스타트업의 강점은 무엇인가.
GB : 한국 스타트업의 강점은 모두 사업 구상 초기 단계부터 글로벌 진출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한국 내수 시장 자체가 크지 않다 보니 모두 처음부터 세계 시장에 나가야 한다는 의식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어 구사 능력도 좋은 편이다. GB가 2012년 처음 한국 기업에 투자를 시작했을 때에도 커뮤니케이션 부분에서는 거의 문제가 없었다. 일본 기업의 경우 내수 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 있어서, 해외 쪽으로 나가려는 의지가 높지 않다. 또 카이스트 등 명문대를 나오거나, 해외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창업하는 사람의 수가 일본에 비해 많다. 일본에서는 아직 대기업에 취직하고자 하는 대학생들이 더 많은 편이다. 좋은 인재들이 창업계에 모인다는 점은 확실한 경쟁력이라고 본다.
반대로 약점이 있다면.
GB: ‘한국 기업은 이래서 안 돼’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다만 일본의 비즈니스 문화와 충돌되는 경우는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기능 하나를 넣으려고 해도 몇 달을 상의하고, 개발에도 또 몇 개월이 걸린다. 완벽한 걸 만들어 시장에 내놓겠다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스타트업의 경우 완벽하지 않더라도 일단 기능을 추가해보고, 반응을 살핀 뒤 빠르게 수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빠른 움직임이 강점이자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 스타트업이 유념해야할 점이 있나.
GB: 시장 첫 진입은 좀 어려울 수 있다. 특히 B2B 분야에서는 계약을 맺는데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도 걸린다. 그만큼 검토 과정이 길다. 하지만 한 번 계약을 맺은 곳과 연을 계속 이어가는 것도 일본 기업만의 특성이다. 유행이나 조건에 따라 계약을 자주 바꾸는 한국 풍토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다. 일반 사용자들도 마찬가지다. 서비스 질에 대한 기대 수준은 높지만, 한 번 선택한 서비스를 끝까지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무언가 바꾸는 걸 귀찮다고 여긴다. 이런 부분을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분야를 떠나 어떤 성격의 팀에 투자하고 싶은지 말씀해달라.
KDDI: 역시 KDDI와 협업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팀이다. 또 KDDI는 해외에도 80여개 법인을 가지고 있다. 꼭 일본 뿐 아니라 다양한 시장 진출을 지원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멀리는 미얀마와 같은 신흥국으로의 진출도 함께 검토해볼 수 있다. 세계로 진출하고자 하는 스타트업을 기다리겠다.
GB: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팀을 찾고있다. 여태 투자했던 한국 스타트업들이 모두 그랬듯,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다양한 글로벌 경험이 있는 팀에 투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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