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아이지에이웍스의 TV 애드 인덱스 리포트를 보며 든 생각이다. 이 리포트는 KT의 950만 셋톱박스 데이터를 모아 우리가 얼마나 많은 광고에 노출되는지 추적했다. 그들은 이를 ‘SCI(Synthetic Customer Intelligence)’라고 부르는 AI 기술로 분석했다. 트래커가 전국민의 시청 습관을 분석한 것이다.
3월 브랜드 노출 1위 ‘이가탄’
3월 브랜드 노출 1위는 ‘이가탄’이다. 6.8억 건. 같은 건강/의료 업종의 ‘인사돌’은 3.9억 건으로 12위였다. 단순 수치로는 약 3억 건 차이다.
2위는 ‘에이스침대'(6.6억 건)다. 밤마다 나오는 그 침대 광고를 본 사람이라면 납득할 만한 순위다. 3위는 ‘봄’이란 계절의 승자인 ‘K2 플라이하이크'(5.7억 건)다.
주목할 부분은 스포츠/레저 업종의 약진이다. 봄을 맞아 산에 오르려는 사람들을 겨냥한 트레킹화 광고들이 대거 상위권에 진입했다. ‘K2 플라이하이크'(3위), ‘르무통'(8위), ‘블랙야크343라이트스텝'(18위)까지. 이들이 노린 것은 산과 계곡을 오르내리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인스타그램에서 멋진 등산 인증샷을 올리고 싶은 허영심이었을까?
그리고 ‘엔카’의 10위 등극(4.5억 건)도 시선을 끈다. 전월 대비 183계단 상승. 한때 인기 웹툰 작가였던 기안84를 모델로 내세운 ‘나의 드림카 플랫폼’ 캠페인이 주효했다. 흥미로운 점은 중고차 플랫폼이 “젊은 세대 공략”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는 대한민국에서 ‘소유’의 꿈은 이제 자동차로 축소됐다. 아파트 대신 중고차. 그것이 2025년 대한민국 청년들의 현실이다.
방송국의 미세한 전쟁
채널별 평균 노출 순위에서는 KBS2가 4개월 만에 1위(광고당 평균 38.2만 건)를 탈환했다. 2위 SBS는 38.1만 건. 단 0.1만 건 차이다. 이런 미세한 차이가 수백억 원의 광고 수입 차이를 만든다.
KBS2의 1위 탈환에는 드라마 ‘독수리 5형제를 부탁해’의 활약이 컸다. SBS는 금토 드라마 ‘보물섬’과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예선 중계가 힘을 보탰지만 아쉽게 2위에 머물렀다.
스포츠 채널 ‘SPOTV’는 KBO 리그 개막 효과로 전월 대비 4계단 상승해 18위(4.0만 건)에 올랐다. 봄이 오면 야구가 시작되고, 야구가 시작되면 맥주 광고가 늘어난다. 계절의 순환처럼 광고의 순환도 있다.
트로트 신드롬, 여전히 현재진행형
프로그램별 평균 노출 1위는 TV CHOSUN의 ‘미스터트롯3-2부'(광고당 평균 256.1만 건)다. 2위인 ‘월드컵 예선'(189.5만 건)을 크게 앞섰다. 전월 대비 85계단 상승. 3월 13일 결승전이 방영되며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모았다.
이 통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트로트 프로그램의 압도적 장악력이다. TOP20 안에 ‘미스터트롯3’ 관련 프로그램이 무려 5개나 포함됐다. 여기에 MBN의 ‘현역가왕2 갈라쇼'(19위)까지 더하면 6개다. 우리나라 TV 시청자의 근본적 취향은 변하지 않았다. 케이팝의 세계적 성공, OTT의 급부상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저녁 시간은 여전히 트로트가 지배한다.
연예인의 가격표
TV 광고 모델 노출 순위에서는 아이유가 6.7억 건으로 1위를 차지했다. 아이유는 기존 푸라닭치킨 광고에 더해 블랙야크 등산화 광고 모델로도 발탁됐다.
트레킹화 광고 모델 경쟁도 주목할 만하다. ‘블랙야크 343라이트스텝’의 아이유와 ‘K2 플라이하이크’의 수지가 봄 시즌 트레킹화 시장에서 격돌했다. 두 여성 스타가 등산화를 신고 산에 오르는 모습. 그것이 2025년 봄, 대한민국 TV 광고의 한 장면이었다.
가장 많은 브랜드에 출연한 모델은 오지헌으로, 무려 8개 브랜드에 얼굴을 빌려주었다. 그의 얼굴은 8개의 서로 다른 상품을 대변한다. 한 사람의 신뢰도가 8개로 나뉘는 셈이다. 이런 현상을 마케팅 용어로 무엇이라고 부를까? ‘신뢰도 희석’? 아니면 ‘노출 최대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전쟁
이 모든 수치는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거대한 전쟁의 결과다. TV광고주들은 매달 수천억 원을 쏟아붓고, 방송사는 그 돈을 받아 프로그램을 만든다. 연예인들은 자신의 얼굴값을 높이기 위해 경쟁하고, 시청자인 우리는 그 모든 과정의 마지막 목적지가 된다.
우리는 하루에 몇 개의 광고를 볼까? 여기 이 리포트에 따르면 상위 20개 브랜드의 총 노출 수만 해도 약 90억 건이다. 인구 5천만 명으로 나누면 1인당 월평균 180건. 하루에 6개 정도다. 그러나 이건 상위 20개 브랜드만의 수치다.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광고를 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TV 광고만의 이야기다. 여기에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포털 사이트, 길거리 옥외광고까지 더하면? 우리의 하루는 광고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일과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정말 자유의지로 이가탄을 구매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혹은 이번 봄에 새 등산화를 사기로 ‘결정’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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