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s Story #430] 대학원 계의 잡플래닛, ‘김박사넷’
지난 5월, 열 명의 서울대 대학원생들이 집단 자퇴하는 사건이 있었다. 한 교수가 성희롱과 함께 각종 갑질, 횡령 등의 불의를 저질렀지만, 이에 대한 적합한 징계가 내려지지 않은 것에 대한 항의다.
교수가 학생의 미래에 대한 전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기에, 대학원은 아주 오래전 부터 ‘인권 사각지대’로 불렸다. 지난 3월 포항공대 자체 조사에 따르면 62.6%의 대학원생이 교수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답했다.
교수의 지도 방식이나 연구 성과 등이 자신의 진로 문제와 직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비 대학원생들이 조회할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하고자, 과거 서울대 대학원생으로 살았던 두 명의 창업가가 교수 평가 조회 서비스인 ‘김박사넷’을 만들었다. 팔루썸니의 유일혁 대표를 만나봤다.
창업 멤버 두 분이 모두 대학원 생활을 경험했다고 들었다. 당시 겪었던 갑질 등이 창업의 계기가 된 건가.
그건 아니다. 우리가 함께 있었던 실험실은 분위기가 좋았다. 우리가 졸업한 서울대 공대는 60%의 졸업생이 대학원에 진학하기 때문에, 주변인들로부터 여러 불합리한 문제에 대해 듣긴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 진로에 대한 문제다. 만약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면, 지금 당장의 교수의 횡포는 참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연구실과 지도 교수를 선택했을 때, 그다음 경력을 어떻게 가져갈 수 있을지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김박사넷을 만들었다.
하지만 대학원 졸업 후 진로는 대학원생 각자의 성향이나 열의, 생활 수준에 따라 모두 다르지 않나. 교수 개인에 대한 평가를 기준으로 이를 일반화할 수 있을까.
그렇다. 한계가 있긴 하지만, 이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산정할 수 있는 지표가 무엇일지를 고민했다. 첫 번째로 삼은 기준이 지도 교수의 연구 실적이다. 논문 중에서도 SCI(과학기술논문 인용 색인)급 논문이 있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학술지에 등재된 양질의 논문들이다.
이러한 SCI급 논문에는 ‘교신 저자’라는 논문의 최종 책임 검수자가 있으며, 대개의 경우 그 연구실의 대학원생이 수행한 연구를 지도한 지도교수가 교신저자를 맡는다. 논문의 질을 보장하는 일종의 검수자로 들어가 있는 거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논문의 교신 저자로 그 교수가 참여했는지에 따라 해당 연구실과 교수의 실적을 평가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해당 연구실 출신 대학원생들이 박사가 되는 평균 기간을 취합해 기준으로 제시했다.
그런 정보들은 어디서 모을 수 있었나.
각 학교 도서관에서 졸업생 정보를 찾을 수 있다. 학위 논문을 통해 졸업 학기와 나이, 졸업생 수 등에 대한 정보를 가공해 낼 수 있다. 크롤링 등 다양한 방법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교수의 연구 실적, 졸업생 평균 학위 취득 학기 수, 평균 졸업 나이, 졸업생 수, 재학생 또는 졸업생들의 평점과 한 줄 평 등이 우리가 제공하는 정보다.
졸업 후 졸업생들 각각의 진로 방향에 대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는 건가.
향후에는 거기까지 서비스를 확장하고자 한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원 입학 전, 활용할 수 있는 정보 위주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대학원생들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라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소비할 수 있는 집단이 너무 특정적이라는 것은 한계점으로 보이기도 한다. 시장 크기에 대한 걱정은 없었나.
사실 처음부터 창업이 목적은 아니었다. 다만 문제를 해결하고자 김박사넷을 만들었고, 올 1월 서울대 학내 게시판인 스누라이프에 게시를 해봤다. 베타 버전인데도 굉장히 큰 반응을 얻었고, 기자들에게서도 많은 연락을 받았다. 그 후로 이 서비스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려면 사업화가 필요했던 거다. 그 후로 국내 대학원생이 몇 명인지, 이 시장 규모가 얼마인지에 대해 계속 조사를 했다. 그 때 충격을 받았는데, 국내에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했나.
국내 대학원생의 수가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 불과 20년 전이다. 2014년 대학원생의 수가 정점을 찍었는데, 그때가 33만 명이었다. 20년 만에 박사 과정의 대학원 생 수는 10배 이상 증가를 한 것이다. 애초에 대학원생의 수도 적었고, 기본적으로 이들에 대한 정보 자체를 얻기가 어려웠던 것이 이유라고 본다. 실제 매년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 수가 12만 명이다. 대학 진학자 수가 35만 명 정도이니, 이에 비하면 적은 수가 아니다. 그래서 과거 대학원생의 수 자체가 적었을 땐, 졸업하고 나면 어쨌든 취업이 됐었지만, 지금은 그런 보장이 없다. 통계 자료를 보면 80, 90년대에는 박사 졸업을 하고 교수 임용까지 걸리는 시간이 마이너스였다. 졸업 전에 이미 교수로 임용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박사 졸업 후에도 평균 7년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원에 진학할 때에도 최대한 많은 정보를 찾아보고 신중하게 결정을 해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김박사넷과 같은 사업 모델이 현시점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김박사넷의 수익 모델은 무엇인가.
계속해서 여러 아이디어를 내며 고민하는 단계다. 지금은 사람을 모으고, 서비스를 확장하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하고 있다. 현재 성장 속도는 빠른 편이다. 올해 1월 말에 서비스를 출시했고, 현재 6개월 정도 운영을 했는데 포항공대, 카이스트, 서울대 등 총 10개 대학원의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학생들이 직접 올리는 한 줄 평은 1,900개 정도 된다.
타 리뷰 사이트처럼, 본인이 한줄평을 작성해야만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시스템인가.
아니다. 한 줄 평은 회원가입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우리는 자발성이 정보의 정확성을 담보해준다고 믿는다. 김박사넷에 한 줄 평을 남기려면, 일단 서울대학교 소속임을 증명하는 이메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인증 절차도 걸친다. 이 귀찮은 과정을 거쳐 끝끝내 한줄평을 남기는 사람들은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후배들을 위해 유용한 정보를 남기고 있다. 우린 한 줄 평이 어떤 인센티브와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낟.
교수의 강압적 지시에 따라 재학 중인 대학원생이 거짓 리뷰를 남길 위험은 없나.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사람이 복수 평가를 할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었다. 평점은 가장 최신의 것이 반영되는 형태다. 실제 최근 조작의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악평이 많은 교수인데, 어느 시점 이후로 너무 좋은 평가만 올라온다든가 하는 경우다. 하지만, 이내 다른 한 줄 평을 통해 한 줄 평의 방향성이 바뀌고 자정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한 줄 평의 작성자를 유추할 수 없는 범위 내에서, 사용자가 이를 인지할 수 있을만한 방법을 모색해서 제공할 예정이다.
일부 교수는 명예훼손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 줄 평이나 평점 삭제를 요청하는 교수들이 있었다. 현재 교수들 내에서도 김박사넷이 많이 알려져 있다. 우리의 제1원칙은 작성자 보호다. 그래서 일단 교수가 삭제 요청을 해오면 이를 받아들여 준다. 하지만 ‘이 한 줄 평은 해당 교수의 요청으로 삭제됐다’는 흔적이 남게 된다. 그 연구실 안에서 제대로 된 토론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는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소위 말하는 일류 대학원의 정보만을 제공한다는 아쉬움을 말하는 사용자도 있었다.
열심히 확장 중이다. 현재 학과 추가 게시판을 만들어 뒀다. 사용자가 직접 기본 정보를 입력하면, 관련 페이지를 오픈해주는 식으로 부족함을 메우고 있다.
교수 입장에서 역으로 김박사넷을 마케팅 채널로 활용할 수도 있지 않겠나.
그렇다. 실제 내 친구들이 이제 막 교수로 임용이 됐다. 미국 유명 대학에서 박사 학위도 받고 실적도 좋은데, 소위 말하는 탑스쿨 교수가 되는 건 힘드니 지방 대학 쪽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대학원의 경우 오히려 지원하는 대학원생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실제 여러 방법으로 영업을 해야 하는 사정이다. 해외에서 대학원생을 모집해오기 위해 애쓰는 경우도 많다. 이를 위해 김박사넷에서는 글로벌 페이지도 만들었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학과나 교수 등이 김박사넷을 통해 국내는 물론 해외 인재들과의 접점을 늘려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투자자들도 만나봤나. 어떤 이야기를 주로 해주던가.
주로 비즈니스 모델이 확실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창업자 둘이 변리사, 박사 출신이기 때문에, 사업하다가 잘 안 되면 다시 돌아갈 거냐는 우려도 많이 한다. 수익 모델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하고 있는 상태지만, 향후 채용 관련 서비스로도 확장할 계획이 있다. 최근 많은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병역특례 업체로 선정되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도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석박사 이상의 인재를 찾을 때, 각 졸업생이 어떤 연구를 했고 그중에서도 누가 가장 좋은 실적을 냈는지 보여주는 추천 시스템을 구축할 수도 있다. 현재 수집하고 있는 데이터로도 충분히 가능한 모델이다. 또 내가 변리사 출신이기 때문에, 어떤 특허와 논문이 가치가 있는지를 가려내는 안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특허 관련 정보도 늘려나갈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김박사넷의 단기, 중장기 목표에 대해 말씀해달라.
전기 대학원 모집 기간이 10월 까지다. 이 동안 많은 사람이 우리 사이트를 방문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따라서 10월까지 최대한 많은 정보를 구축해서 일 방문자 5천 명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단기 목표다. 중장기적으로는 탄탄한 수익 모델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비즈니스 모델을 찾을 때까지 계속 아이디어를 내고 테스트해 볼 생각이다. 대학원 제도가 사라지지 않을 테니, 우리도 끝까지 서비스를 지켜나갈 것이다. 지켜봐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