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5] 방시혁 대표님께 드리는 글 : 서울대 졸업식 축사에 답하며
안녕하세요. 방시혁 대표님.
저는 K-pop을 포함한 문화 콘텐츠를 다루는 스타트업 <카운터컬쳐>(Counter-culture)에서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맡고 있는 레이먼드 권(Raymond Kwon)이라고 합니다.
지난달 2월26일, 방 대표님께서 서울대 졸업식 축사를 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들뜬 마음으로 현장을 찾았습니다. K-pop 부문에서 이미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신 대표님의 메시지를 육성으로 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Artist 방시혁
다소 멋쩍은 미소로 단상으로 나오신 대표님은 안경을 고쳐잡고 잠시 숨을 크게 내쉰 뒤, 원고를 차분히 읽어 내려가셨습니다. 후배들을 격려하는 자리에 연사로 초대받았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이같은 사회적 의례들이 자신에게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는 듯한 모습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아티스트 방시혁’이라는 인상이 아직 더 강하게 남아있는 저에겐, 그 모습이 오히려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진솔해서, 강력했던
개인의 경험을 진솔하게 풀어내고, 그 경험에서 얻은 배움을 사회로 돌려주는 글만큼 강력한 매체는 없을 것입니다. 방 대표님의 연설문이 그랬습니다. 미학과에 진학하게 된 이유, 음악 프로듀서로 방향을 바꾼 계기, <JYP 엔터테인먼트>를 창업하고 이어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이하 <빅히트>)로 독립하게 된 과정, 그리고 마침내 <방탄소년단(BTS)>이라는 전대미문의 성공을 거두기까지. 대표님은 몇 번의 전환점을 거치며 결국 정상에 오르셨습니다.
그럼에도 연설 앞부분에서 대략 3분간, 대표님 스스로 스케치한 당신의 삶은 일반 대중들의 예상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거칠게나마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에 재미로 응수하고, 큰 그림은 흘러가는대로 두자.’ 자신은 야망가가 아니며 구체적인 꿈도 없었기 때문에, 훗날 돌아보니 그 어떤 중대한 선택들도 큰 의미를 지니진 않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들 놀라워하는 표정이었으나, 방 대표님을 전적으로 사업가로만 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는 얼마간 동의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예술가들 뿐만 아니라, 학문과 사업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들 역시 대표님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방 대표님의 연설이 더 진솔하게 다가왔습니다.
최재천, 쿤데라, 이동진, 그리고 잡스
저에겐 그렇게 네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최재천(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밀란 쿤데라(소설가), 이동진(영화평론가), 그리고 스티브잡스(기업가). 대표님도 잘 아시다시피,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대체될 수 없는 존재감을 갖고 있는 분들입니다.
우선 최재천 교수는 <거품예찬>(2016, 문학과지성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구의 그 어떤 생물도 미래 환경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거기에 알맞게 적응할 수 있도록 맞춤 번식을 하지 않는다. (중략) 진화는 그래서 언제나 결과론적이다. 다 벌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성패가 갈라진다” (중략) “따지고 보면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미리 예측하고 앞뒤 균형을 맞추려 부단히 노력하지만 제대로 성공해본 적은 거의 없다”
방 대표님은 미학을 전공하다가 왜 음악 프로듀서로 전향했는지 자문한 뒤 “사실 기억이 안 난다”고 털어놨습니다. <빅히트>를 왜 차리게 됐는지도 불명확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최 교수님에 따르면 자연의 이치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자연은 자신의 영속 가능성을 위해 늘 잉여를 만든다는 것이죠. 밀란 쿤데라가 방 대표님 옆에 있었다면 아마 어깨를 토닥이며 이렇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싶네요.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사람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해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중략)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중략) “우리 인생이라는 밑그림은 완성작 없는 초안, 무용한 밑그림이다.”(<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中, 민음사, 1999)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므로 대충 살자는 것이 아닙니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성실할 수 있다는 거이죠. 방 대표님 역시 “알 수 없는 미래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시간을 쓸 바에, 지금 주어진 납득할 수 없는 문제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방법 중 하나로 본인이 행복한 상황을 스스로 정의하고 그것을 계속 반복하면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간추리셨죠. “반복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소명이 되어 여러분의 앞길을 끌어주리라 생각한다.”
이 말을 요약한 문장을 어느 책 날개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문장을 보고 한참을 서성였습니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살고 싶고,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 살고 싶다” [<밤은 책이다>(예담, 2011), 이동진]
그러니까 이 바람처럼 방 대표님은 “앞으로도 꿈 없이 살”테지만, 그래서 “<빅히트>가 어떤 기업이 될지, <방탄소년단>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심지어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에 대한 그림 같은 건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태생적 한계를 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모름’을 껴안고서
방 대표님의 축사를 두고, 언론들은 일제히 헤드라인으로 ‘분노’를 뽑아냈습니다. 음악 산업의 불합리와 부조리에 늘 ‘분노’하며 살아온 것이 당신의 방식이었다고 말씀하셨으니까요. 방시혁의 삶을 이끈 추동력은 분노와 불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 다르게 들었습니다. 방 대표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약속드립니다. 제 앞에 놓인 부조리한 현실엔 마냥 팔짱만 끼고 있진 않겠습니다.”
마지막 축하 인사를 끝으로 큰 박수를 받으며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 방 대표님을 본 뒤, 저 역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마음 속에 일렁이는 뭉클한 감동을 천천히 되새겨보느라 학내를 묵묵 걸었습니다. 늦은 겨울이었지만, 햇살이 얼마나 따사로운 날이었던가요. 머리 속에 방 대표님과 스티브잡스가 교차했습니다. 정확히는, 스티브 잡스의 2005년 미국 스탠포드대 졸업식 연설과 이날 방 대표님의 연설이 그랬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당시 연설에서, 자신이 리드 칼리지를 자퇴한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시에는 매우 두려웠지만, 뒤돌아보면 그건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자퇴 이후 재미없는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을 그만둘 수 있었고, 더 재밌는 강의를 찾아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주어진 환경에 한탄하기보다 자신을 이끄는 ‘재미’에 몸을 맡기고 젊음을 보낸 것이죠.
“순전히 호기심과 직감만을 믿고 우연히 저지른 일들이 훗날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중략)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제 인생에 실용적인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는 가질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만해도, 이러한 점(Dot)들이 미래에 하나로 연결될 것이라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 과거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명확해 보입니다. 미래를 내다보면서 현재의 점들을 연결시킬 순 없습니다. (중략) 점들이 어떻게든 여러분의 미래와 연결된다는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이어 그는 자신이 20살에 창업한 <애플>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도, 같은 회사에서 10년 뒤 쫓겨난 것 역시 뒤돌아보면 더 없이 훌륭한 진통이었다고 말합니다.
방 대표님과 스티브 잡스는 연설 마지막에 공통으로 ‘죽음’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방 대표님은 “저는 제 묘비에 ‘불만 많던 방시혁, 행복하게 살다 좋은 사람으로 축복 받으며 눈감음’이라고 적히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스티브 잡스 역시 “죽음은 삶이 만든 가장 훌륭한 발명”이라면서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당신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마시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삶의 아이러니가 추동력이 되어
종합하자면, 삶의 쓰라린 아이러니를 그대로 끌어안고 저항한 것이 지금의 방시혁과 지난날의 스티브 잡스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히 방 대표님과 비교할만한 위치에 있지 않지만, 방 대표님의 연설을 복기하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 역시 별다른 꿈 없이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주변의 기대에 맞춰 경영대에 진학했습니다. 전공은 지독하게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연히 기웃거렸던 역사 수업에 매료돼 미술사를 더 많이 공부했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됐는지, 졸업 이후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3년간 일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 선후배와 동기들이 줄줄이 고시에 합격하며 성공가도의 밑돌을 놓고 있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대부분은 번듯한 대기업에 안착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미래를 구상하고 있던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불안했고, 계속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비교하도록 말없이 압박해오는 사회가 미웠고, 그 사회를 향해 조금이나마 제 목소리를 내보고 싶어서 <한겨레신문>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방 대표님이 말한 분노, 저 자신의 표현으로 바꿔보자면 ‘울분’은 금세 ‘생활’에 치여 흩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저 자신에 실망한 적도 많았습니다.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3년반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제가 본래 꿈꾸던 콘텐츠 업계로 넘어왔습니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살아보려고 발버둥치고 있지만, 매일 자그마한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다만 성실하게 실패한다면, 그것이 미래에 굵은 선으로 이어질 것이란 믿음만은 간직하고 있습니다.
방시혁과 스타트업
대표님의 연설을 제가 몸담고 있는 스타트업계에 비춰 평가해보건대, 이 업계는 방 대표님이 말한 ‘분노’의 집결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이들은 어느 시점에, 자신에게 이같은 질문을 던졌을 것입니다.
‘나는 누구지? 이것이 내가 원하던 삶인가? 다른 방식으로 살 순 없을까? 왜 한 가지 정답만 강요하는가?’
역설적이게도, 스타트업계는 한 가지 정답만 열심히 찾아서 스카이캐슬에 입성한 이들이 팔할이 넘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새 출발한 이들의 마음 속엔 ‘열정’과 ‘분노’가 저마다의 비율로 뒤섞여 있습니다.
그렇게 저희도 출발을 시작했습니다. 방 대표님이 <방탄소년단>을 이끌고 바로 북미권 진출을 감행했듯이, 제가 몸담고 있는 회사 역시 북미로 바로 직행합니다. K-pop 콘텐츠로 처음부터 북미 시장에서 승부를 보려고 합니다.
이 사업에 함께 하고 있는 이들 역시 불안한 건 매한가지입니다.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릴 수가 없으니까요. 왜 자신이 카페인 짙은 커피를 연신 마셔가며 새벽을 버티고 있는지 지금은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순 없을 것입니다. 물론 사후에 그럴듯한 인과관계를 만들어낼 순 있겠지만, 그것은 설명을 위한 설명일 뿐, 그저 하루하루 간헐적이지만 치명적인 ‘재미’에 붙들려 주어진 사명을 수행해나갈 뿐입니다.
지도를 버리고
흐릿하지만 지도가 대략이나마 있었던 곳에서, 지도가 전혀 없는 곳으로 나와 분투하고 있는 스타트업계 동료들에게 방 대표님의 이번 연설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더 정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실패할 지도 모르지만,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하나의 전범이 되었지만, 우리는 언젠가 방 대표님과 만난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3년전 세상을 떠난 위대한 석학, 움베르토 에코의 책 제목을 저희는 역시 마침내 찾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도 방 대표님처럼 단촐한 묘비명 몇 자를 남기고 눈을 감을 수도 있겠지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법”(2009, 열린책들)
여기, 방 대표님의 연설문을 다시 손에 꼭 붙들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레이먼드 권 드림
[ZOOM] 코너에선 지난 한달 남짓 국내 종합일간지 6곳(경향동아·조선·중앙·한겨레·한국)의 신년기획을 분석하는 연재를 선보여 왔습니다. 다만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서울대 졸업식 축사가 스타트업계에 주는 통찰이 적지 않아, 이번 한 주만 이 서간문으로 대신하려고 합니다. 다음 주에 다시 신년기획 5회차 분석 글로 찾아 뵙겠습니다.
필자 소개 : 레이먼드 권(Raymond Kwon) / 前 <한겨레신문> 기자, 어쩌다 <한국기자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는 콘텐츠 미디어 크리에이티브 스타트업 <카운터컬쳐>(Counter-culture) 커뮤니케이션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E-mail : raymond@counter-culture.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