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 서비스 기업은 사업모델 특례 상장이 유리하다
기술성장기업 상장특례(이하, 기술특례)는 수익성 요건은 충족하지 못하였지만 기술력이 우수한 기업을 대상으로 공인된 외부 기관의 평가와 검증을 통해서 상장 기회를 주는 제도이다. 기술특례를 이용하는 기업은 외형 요건이 완화되어 자기자본 10억원 및 시가총액 90억원이라는 조건만 충족하면 된다. 대신 전문평가기관 두 곳의 기술평가 결과로 A 및 BBB 등급 이상을 받아야만 상장예비심사 청구자격이 부여된다. 전문평가기관은 지난 달 한국기술신용평가가 추가되어 기술신용평가기관 7개사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과 같은 국책연구기관 16개사를 포함하여 총 23곳이 되었다.
기술특례는 세부적으로 기술성 특례, 사업모델 특례, 성장성 추천 특례로 나뉜다
기술특례는 세부적으로 기술평가 특례와 성장성 추천 특례로 나뉘고, 기술평가 특례는 다시 기술성 특례와 사업모델 특례로 나뉜다. 흔히 ‘기술특례’라고 하면 기술성 특례를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업모델 특례와 성장성 추천 특례를 혼동하는 경우도 많다. 사업모델 특례는 앞서 말한대로 전문평가기관 두 곳으로부터 사업모델에 관한 기술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와 달리 성장성 추천 특례는 전문평가기관이 아닌 주관사가 기업의 성장성을 평가하고 한국거래소에 직접 성장성 보고서를 제출하는 방식이다. 주관사가 기업의 성장성을 판단해 추천하는 만큼 주관사에게 상장 이후 6개월간 공모가의 90%를 보장해야 하는 풋백옵션이 부여된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3월부터 기술특례 상장을 위한 표준 기술평가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전문평가기관마다 평가 기준이 다르고 평가 결과 또한 일관성이 없다는 업계 비판을 수용한 것이다. 당초 계획보다 늦어져 8월 중에 표준 기술평가모델 개발을 완료하고 올해 4분기 중에 최초로 적용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들, 특히 바이오 업체들은 상장 일정을 모두 미루며 상장 문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반면 한국거래소는 기술평가의 객관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이지 기술평가의 통과 기준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우려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습이다.
사업모델 특례는 사업모델의 타당성, 경쟁우위도, 사업경쟁력을 중점으로 평가한다
사업모델 특례는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사업모델을 갖춘 기업들을 위한 상장 트랙으로 2017년에 처음 도입되었다. 줄곧 기업들에게 외면받다가 본격적으로 활용된 것은 2년 후인 2019년부터이다. 2019년 7월에 상장한 플리토를 시작으로 캐리소프트, 엔비티, 와이더플래닛, 라이프시맨틱스 등이 사업모델 특례를 활용하여 코스닥에 입성했다. 최근에 상장한 원티드랩의 경우 성장성 추천 특례를 활용하였지만 주관사의 성장성 평가는 기술기반 기업이 아닌 사업모델 기업으로 이루어졌다.
기술성 평가가 기술의 완성도, 경쟁우위도, 기술제품의 시장경쟁력 등을 주요 평가 항목으로 한다면, 사업모델 평가는 사업모델의 타당성, 경쟁우위도, 사업경쟁력 등을 주요 평가 항목으로 한다. 독창적인 사업모델을 기반으로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을 위한 제도인만큼 별도의 인센티브 제도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금융규제 샌드박스의 하나인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될 경우 일부 평가 항목들에 대한 평가를 ‘우수’한 것으로 인정한다. 기술성 평가 항목과 사업모델 평가 항목 간 공통 분모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시장 규모 및 성장성, 시장경쟁 상황과 같은 시장성에 관한 평가 항목이 그렇다. 인력의 수준과 전문성, 지식재산권 보유현황이나 R&D 투자현황과 같은 내부 자원 및 인프라에 관한 항목들도 사업성 평가에 빠질 수 없기 때문에 양쪽에 모두 존재한다. 사업모델의 경우 업종 특성을 감안할 필요성이 적기 때문에 앞선 표준 기술평가모델이 개발되더라도 그 변화가 상대적으로 적거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2005년부터 시작된 기술성 특례는 바이오, 의료, 소부장 업종에 적합하다
2005년부터 시작된 기술특례 제도와 기술성 평가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인 끝에 연구개발한 원천성 기술로 시장 지배력을 갖는 상황을 상상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바이오, 의료 또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과 같이 자본 및 기술집약적인 업종이 적합하다. 기술특례 제도가 도입된 이래 작년 말까지 총 143개사가 이 제도를 통해서 코스닥에 상장했다. 2013년부터 기술특례 대상 업종이 전 업종으로 확대되었으나 이 중 바이오 기업이 93개사로 가장 많다. 의료와 소부장까지 고려하면 서비스업과 같은 기타 업종의 경우 한 자리 수로 줄어들게 된다.
기술성 평가 모델에 의하면 하나의 핵심 기술이 신뢰성, 확장성, 모방난이도, 차별성 등 모든 요소를 갖추어야 기술력이 우수한 기업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기술제품에 여러 기술이 관련되고 적용되어 있는 경우 평가기관은 평가대상 기술을 선택하라고 요구한다. 하나의 유효 성분이 하나의 의약품을 구성하는 바이오 기업과 달리 비바이오 기업에게는 이러한 상황이 익숙하지 않다. 시장성 평가도 그들에게 부적합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기술제품의 상용화 수준을 평가하면서 ‘기술제품의 생산 및 품질관리 역량’을 평가하도록 하고 있다. 서비스업 기업은 ‘생산’과 ‘생산 역량’을 자신이 속하는 업종에 맞추어 나름의 내용으로 정의하고 평가위원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종합 예술에 가까운 ICT 서비스 기업에게는 사업모델 특례가 더 어울린다
여러 개체를 서로 연결하고, 수집된 정보를 통합 및 분석하고, 이로부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여 제공하는 ICT 서비스는 종합 예술에 가깝다. 양면 또는 다면 시장을 다루어야 하는 플랫폼 비즈니스가 대표적이다. 시장 구조의 특수성 때문에 플랫폼 비즈니스에서는 여러 분야의 기술들이 서로 접목되고 융합되어 다양한 목적과 용도로 사용된다. 빠른 시장 변화의 특성상 자체 연구 개발 능력보다는 외부 기술 도입과 응용 능력이 중요한 경우가 많다. 대부분 기존 시장 질서나 경계를 파괴하거나 흔드는 독창적인 사업모델을 갖는다. 그래서 플랫폼을 표방하는 ICT 서비스에게는 사업모델 특례가 더 어울린다.
사업모델 특례라는 이름 때문에 비기술 기업을 위한 상장 트랙으로 오인하는 것은 곤란하다. 집단지성 번역 플랫폼을 제공하는 플리토는 단순히 사람을 모아서 번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아니라 플랫폼을 중심으로 다국어 언어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코퍼스로 정제 및 가공하여 판매하는 기업이다. 와이더플래닛도 일반적인 온라인 광고 플랫폼과는 다르다. 와이더플래닛은 자체적인 DMP(Data Management Platform)를 활용하여 온라인 사용자의 관심 행태를 분석하고 타겟 사용자에게 맞춤형 광고를 전달하는 AI/빅데이터 기반 퍼포먼스 타겟팅 광고 서비스를 제공한다. 와이더플래닛은 전체 인력의 약 70%가 엔지니어에 해당하는 기술 기업이다. 라이프시맨틱스가 개인 건강 기록(Personal Health Record, PHR)을 통합 관리하는 데에는 상호 운용성 보장을 위한 의료 정보 기술, 데이터 분석을 위한 빅데이터 처리 기술, 위변조 방지를 위한 블록체인 기술 등 다양한 기반 기술이 사용되고 있다. 라이프시맨틱스는 핵심 자산인 개인 건강 기록 플랫폼을 기반으로 의료 마이데이터 서비스, 디지털 치료제, 비대면 진료 중개 서비스와 같은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과 서비스를 함께 공급하고 있다.
사업모델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우선순위는 다를 수 있지만 모든 업종에 공통되는 가장 기본적인 경쟁의 차원(dimensions of competition)은 원가(cost), 품질(quality), 시간(time), 유연성(flexibility)의 네 가지이다. 서비스업에서는 하나의 기술이 원가를 대폭 절감하거나, 불량률을 극적으로 감소시키거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 다양한 인력, 시스템(체계), 기술 간 상호작용이 원가, 품질, 시간, 유연성 측면에서 영향력을 미치고 경쟁력을 갖게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플리토는 집단 지성을 활용함으로써 전통적인 전문가 번역 대비 번역 비용을 절감시키고, 코퍼스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여 집단 지성이 갖는 특징적인 약점과 문제점들을 해결하였다. 플리토가 확보한 글로벌 사용자들은 시간적인 제약을 해결했고, 플랫폼을 활용하기 때문에 텍스트 외에도 음성, 영상, 이미지에 이르는 다양한 유형의 언어 데이터를 생성해낼 수 있다. 이처럼 비록 원천성의 기술은 아니지만 기업이 가진 다양하고 복합적인 자원과 인프라를 원천으로 하여 독창적인 사업모델과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기술성 특례가 아닌 사업모델 특례를 통해서 상장을 준비하는 것이 유리하다. 역으로 상장을 꿈꾸는 기업이라면 다른 기업들이 갖지 못한 새로운 기술 개발에 매달리기 보다는 경쟁력 확보를 위한 다른 차원의 대체재를 발굴하여 확보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는 것을 추천한다.
원문 : ICT 서비스 기업은 사업모델 특례 상장이 유리하다
저자소개 : 김성현 파트너 변리사는 한양대 정보통신학부와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기술가치평가사, 기술거래사 및 VC전문인력 자격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기술사업화, 투자 및 IPO에 관심이 많습니다. ICT 전공을 기반으로 인공지능, IoT, 클라우드 컴퓨팅, 블록체인 등과 지능형 반도체, 체외진단기기와 같은 융복합 기술을 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