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현대 서울 매장 앞의 긴 대기 줄, 브랜드의 상징인 ‘탱커(Tanker)’ 시리즈와 ‘헬멧백’의 연이은 품절 사태. 지금 패션계에서 가장 강력한 팬덤을 가진 브랜드를 꼽으라면 단연 ‘요시다 포터(Yoshida & Co. PORTER)’일 것이다. 그런데, 혹시 ‘포터 가방’이 사실은 두 종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이는 단순히 디자인 라인의 차이가 아니다. 1962년에 시작된 이 유서 깊은 브랜드가 1990년대 초반, 아시아 시장으로의 확장을 내다보며 한 가지 중요한 조치를 먼저 취했다면, 이 기나긴 분쟁의 역사는 시작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바로 ‘해외 상표권 선점’이라는 놓쳐버린 기회다. 이 이야기는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해외로 나아가기 전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첫 단추’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사건의 재구성: 엇갈린 상표권, 파트너십의 발목을 잡다
이 사건의 본질은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데 있지 않다. 그보다는 브랜드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상표권’의 주인을 확인하는 단계를 건너뛴 채, 어떻게 사업적 협력이 시작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 1962년, ‘PORTER’ 브랜드의 시작: 일본에서 요시다앤코가 브랜드를 세상에 내놓는다. 일본 내에서 수십 년간 명성을 쌓아간다.
- 1994-1995년, 대만에서의 상표 등록: 대만의 가방 유통사 ‘尚立國際(Shang Li International)’이 대만 내에서 ‘PORTER’라는 이름의 상표권을 먼저 등록한다. 이 회사는 훗날 ‘포터 인터내셔널(PORTER INTERNATIONAL)’ 브랜드를 운영하게 된다.
- 1999년, 리스크를 안고 시작된 협업: 요시다앤코는 대만 시장 진출을 위해 바로 그 회사, Shang Li International과 파트너십을 맺는다. 이는 결과적으로 현지 상표권자가 유통 파트너가 된 상황으로, 잠재적인 분쟁의 씨앗을 안고 시작된 협업이었다.
- 2001년, ‘상표 전쟁’의 서막: Shang Li International은 자신들이 가진 상표권을 근거로 ‘포터 인터내셔널’ 브랜드를 앞세워 해외 시장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단순한 분쟁을 넘어, 브랜드의 명운을 건 7년간의 ‘상표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 2007년, 상처뿐인 화해: 길고 긴 싸움 끝에 양사는 화해한다. 하지만 요시다앤코는 ‘두 개의 포터’가 시장에 함께 존재하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아시아 시장에는 법적으로 두 개의 ‘포터’가 공존하게 되었다. 물론 패션 마니아들은 두 브랜드를 구분한다. 요시다 포터의 오렌지색 안감과 사각형 로고, 포터 인터내셔널의 사람 모양 로고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브랜드를 잘 모르는 일반 소비자에게는 충분히 헷갈릴 수 있다. 이처럼 브랜드 이미지가 흐려질 수 있는 가능성은, 요시다 포터가 분쟁을 통해 얻은 값비싼 교훈이자, 브랜드의 주도권을 완벽하게 지키지 못해 생긴 ‘타협의 결과물’이다.
사례 분석: 해외 진출 시 놓치기 쉬운 3가지 교훈
이 이야기는 해외로 진출하는 모든 브랜드에게 꼭 기억해야 할 세 가지를 알려준다.
1. 브랜드의 ‘운전대’를 빼앗길 수 있다
현지 파트너가 상표권을 갖는다는 것은, 내 브랜드의 운전대를 남에게 맡기는 것과 같다. 브랜드의 방향성, 디자인, 심지어 가격까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짝퉁을 못 막는 수준을 넘어, 브랜드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리는 심각한 문제다.
2. ‘계약서’는 브랜드의 ‘주인’을 바꿀 수 없다
‘계약서만 잘 쓰면 되겠지’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파트너가 이미 상표권의 주인이라면, 유통 계약서는 당신을 브랜드의 주인으로 만들어주는 문서가 아니다. 오히려 당신의 브랜드를 잠시 빌려 쓰는 ‘세입자’로 만드는 계약일 뿐이다. 집주인이 따로 있는 집에 전세 사는 것처럼, 계약이 끝나거나 관계가 틀어지면 언제든 브랜드를 빼앗기고 빈손으로 쫓겨날 수 있다.
3. 작은 불씨가 큰불로 번진다
대만이라는 한 국가에서 시작된 작은 불씨가 미국, 한국 등 전 세계로 번져나갔다. 한 나라에서 상표권 문제가 생기면, 이는 도미노처럼 다른 나라에서의 사업까지 위협한다. 글로벌 시대에는 어느 한 곳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내 브랜드를 지키는 3단계 체크리스트
그렇다면 이런 위험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외 파트너를 만나기 전후로, 아래 3단계는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STEP 1: 파트너를 만나기 전
- 현지 상표 현황부터 확인하기: 파트너 후보와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진출하려는 나라의 특허청 사이트부터 들어가 봐야 한다. 내 브랜드 이름이 이미 등록되어 있는지, 혹시 내가 만나려는 그 파트너 후보가 권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꼭 확인해야 한다.
- 내 이름으로 상표 등록하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면, 즉시 내 이름으로 상표를 등록 신청해야 한다. 핵심 시장은 물론, 앞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있는 주변 국가까지 한 번에 신청해두는 것이 현명하다.
STEP 2: 계약서를 쓸 때
- “상표 등록 금지” 조항 넣기: 계약서에 ‘파트너사는 우리 브랜드를 절대 자기 이름으로 등록할 수 없으며, 만약 어길 시 모든 권리를 즉시 넘겨줘야 한다’는 내용을 명확하게 적어야 한다.
- 브랜드 사용 규칙 정하기: 로고는 어떻게 쓰고, 포장은 어떻게 할지 등 브랜드 사용에 대한 규칙을 명확하게 정해서, 파트너가 마음대로 브랜드를 바꾸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STEP 3: 사업을 운영하면서
- 우리 브랜드를 따라 하는 곳이 없는지 살피기: 다른 누군가가 내 브랜드와 비슷한 상표를 등록하지는 않는지 꾸준히 지켜봐야 한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즉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 세관에 등록해 짝퉁 막기: 현지 세관에 내 상표를 등록해두면, 가짜 상품이 수입되는 것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결론: 좋은 파트너보다 중요한 것은 내 브랜드의 ‘권리증’
결국 ‘포터 가방이 두 개’인 이유는, 글로벌 비즈니스의 첫 단추인 ‘상표권 확보’를 놓친 채 시작한 파트너십이 낳은 값비싼 타협의 결과다. 성공적인 해외 사업의 시작은 좋은 파트너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내 브랜드의 주인이 나라는 것을 증명하는 ‘상표권’을 먼저 확보하는 것이다. 해외 시장의 문을 열기 전, 당신의 가장 소중한 브랜드가 법의 보호 아래 안전한지부터 확인하라. 그것이 모든 글로벌 전략의 가장 단단한 첫걸음이다.
원문 : 포터 가방은 두 개다? 당신이 몰랐던 7년간의 상표 전쟁 – ‘요시다 포터’ 상표 분쟁으로 배우는 글로벌 비즈니스의 첫 단추
글 : 정태균 변리사는 BLT 전략본부장으로 스타트업의 IP전략, BM전략, 시장진출(GTM) 전략 수립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여러 분야의 스타트업의 IP(특허, 상표, 디자인)업무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참여하여 성장 지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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