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민오의 BIO 기술과 특허 브리프] #3. 우선권 주장 출원 시 유의점 – ‘크리스퍼’ 분쟁 사례를 통해
2020년 두 명의 여성 과학자가 유전기술의 유의미한 도구 중 하나인 CRISPR-Cas9(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하였습니다. 생명체의 DNA를 정교하게 바꿀 수 있는 이 기술은 현재 암과 유전질환 치료제 개발, 농업 및 축산업의 품종 개량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어, CRISPR-Cas9 유전자 가위 세계 시장 규모는 2028년 74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CRISPR-Cas9 유전자 가위 기술이 가진 발명의 가치만큼이나 기술에 대한 특허 분쟁도 수년째 치열하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구특허법 선발명주의 하에서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엠마누엘 샤르팡티에(Emmanuelle Charpentier)와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UC Berkeley)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A. Doudna) 노벨 화학상 수상 팀, MIT의 펭 장(Feng Zhang)과 하버드 대학의 조지 처치(George Church)의 브로드연구소(The Broad Institute, 이하 ‘브로드연구소’), 그리고 우리나라의 툴젠 중 누가 먼저 CRISPR-Cas9을 이용한 진핵세포의 유전자 편집 방법을 발명했는가에 대해서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오가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 특허청 항소심판원은 브로드연구소가 먼저 인간을 포함한 진핵세포 편집 기술을 실제 구현했다고 판결 내렸습니다. 즉, 미국 특허청이 약물 개발에 필수적인 진핵세포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하는 기술을 UC버클리 팀 보다 브로드연구소가 먼저 개발했다고 판단 내린 것입니다.
한편, 유럽에서는 브로드 연구소가 CRISPR-Cas9 유전자 가위 기술의 핵심적 부분과 관계된 특허를 취득하였으나, 이후 CRISPR Therapeutics社, Novozymes社 등이 브로드 연구소가 주장한 우선권에 대한 일부 근거가 부적법함을 주장하며 해당 특허의 취소를 요구하는 이의신청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유럽 특허청은 해당 특허에 대해 주장된 우선권의 성립요건에 흠결이 있다고 판단하고, 이의신청인의 주장을 인용하여 해당 특허를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발명의 실체적인 사항이 아닌 절차적인 사항으로 인해 특허가 취소된 것인바, 이번 연구 자료에서는 우선권 제도 및 우선권 주장 시 유의점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선권 주장의 요건
특허의 속지주의 원칙상 동일한 발명이라도 그에 대해 특허권은 각 국가 별로 획득해야 합니다. 여러 국가에 한꺼번에 출원을 하는 것은 출원인에게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파리조약에서는 출원인이 자국에 선출원한 후 1년의 기한 내에 다른 국가에 출원하거나 PCT 출원하면서 우선권 주장을 하는 경우, 가장 중요한 특허 등록요건인 신규성/진보성 판단에 있어서 자국 출원 일자와 동일한 날짜에 출원한 것으로 인정하여 판단하는 우선권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즉, 후출원은 선출원과 후출원 사이에 공개된 발명으로 인해 신규성 또는 진보성의 항변을 받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우선권 주장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선출원과 우선권 주장 출원 간에 출원인이 동일하여야 하고, 출원인이 동일하지 않은 경우에는 출원인이 특허받을 수 있는 권리를 정당하게 승계 받았어야 합니다.
브로드연구소 팀의 유럽 특허(EP 2 771 468 B1) 살펴보기
브로드연구소 팀의 유럽 특허(EP 2 771 468 B1)는 2012년 12월 12일에서 2013년 6월 17일까지 총 12건의 미국 출원에 우선권 주장을 하면서 국제출원(PCT/US2013/074819) 하고, 이를 통해 유럽의 심사를 거쳐 등록되었습니다. 국제출원의 출원인은 브로드 연구소, MIT 및 하버드 대학의 세 개 기관이었습니다.
해당 특허는 우선권 주장 요건 흠결을 이유로 등록이 취소되어야 한다는 이의신청이 제기되었는데, 12건의 미국 출원 중 일부 출원의 발명자이자 출원인인 Luciano Marraffini(Rockefeller University of New York 소속)가 국제출원 및 유럽출원에 출원인으로 포함되어 있지 않아 해당 미국 출원에 대한 우선권 주장이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출원할 수 있는 권리는 발명자에게 원시적으로 귀속되기 때문에, 우선권 주장의 기초 출원인 미국 출원의 모든 발명자들로부터 출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정당하게 승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위 특허의 경우 권리의 승계 없이 무단으로 Luciano Marraffini를 빼고 브로드 연구소, MIT, 하버드 대학 세 개의 기관만 출원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심판원에서 위와 같은 사실이 인정되어 Luciano Marraffini가 발명자이자 출원인으로 포함된 가장 빠른 미국 출원 2건에 기초한 우선권 주장은 무효로 되었고, 이에 따라 세 번째 빠른 미국 출원의 출원일로 우선일이 인정되면서 그 사이에 발표된 본인들의 논문들에 의해 신규성 결여로 취소되었습니다.
출원인 동일 요건의 중요성
위 사건에서 우선권 주장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Luciano Marraffini의 소속 기관인 록펠러 대학으로부터 해당 미국 출원에 대한 지분을 양도받는 절차를 거쳤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훌륭한 발명이라 할지라도 발명자∙출원인 간의 권리관계 및 출원 절차상의 흠결이 특허를 취소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공동 발명의 경우 이 부분을 더욱 세심하게 신경 써서 출원하여, 소중한 권리가 훼손되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글: 특허법인 세움 류민오 변리사
–원문: [류민오의 BIO 기술과 특허 브리프] #3. 우선권 주장 출원 시 유의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