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물가 최악 쇼크, 이유는 ‘이것’?
“美 물가 최악 쇼크, 이유는 ‘이것’?”
어제 글로벌 자산 시장은 일제히 패닉에 빠졌습니다. 미국 3대 증시가 모두 2020년 코로나 사태 초기 이래 최대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나스닥 지수만 5% 넘게 폭락했습니다. 미국뿐 아닙니다. 코스피는 장 중 한 때 2400선이 붕괴했고, 중국·일본·홍콩·대만 전부 증시가 크게 하락했습니다. 최근 상승세였던 비트코인도 하루 만에 7% 넘게 주저앉았고, 원·달러 환율은 1390원을 돌파했습니다(🔗관련 기사).
쇼크의 신호탄은 전날 발표된 ‘미국의 8월 물가 상승률’이었습니다. 당초 시장에선 연준의 거듭된 긴축 등에 힘 입어 인플레 정점은 지났을 거란 기대감이 컸습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8.3%로 시장 전망치(8.1%)를 넘어섰습니다. 2달 연속 상승세가 약해지긴 했지만 시장 기대엔 한참 못 미친 겁니다.
여전히 강한 인플레 기세에 연준의 긴축 기조가 더욱 강력해질 거란 전망이 나옵니다. 기준금리를 한 번에 1%p나 올리는 ‘울트라 스텝’을 단행할 거란 예측도 나오는데요(🔗관련 기사). 돈줄을 더욱 조일 거란 예상에 경기 침체 우려도 확산하며 글로벌 시장이 얼어붙고 있단 분석이 나옵니다.
📌 CPI : 소비자가 구매하는 상품, 서비스 가격 변동을 나타내는 지수. 물가 변동을 추적하는 대표적 경제 지표
착시와 공포가 빚어낸 쇼크
인플레 주범으로 꼽히던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물가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한 듯합니다. 그러나 그건 일종의 ‘착시’였죠. 인플레가 원자재를 벗어나 식료품, 의료 등 생활 전반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된 걸 보지 못 한 판단인 거죠. 원자재 가격이 하향 안정되더라도 인플레가 높은 수준을 지속할 동력이 생겼단 뜻입니다.
더구나 이제 미국에선 인플레 기대심리가 어느 정도 형성돼 버렸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대중적인 인플레 기대심리가 형성되면, 다른 요인들이 해소돼도 물가는 유독 더 하방 경직성을 띠게 됩니다. 이를 “로켓처럼 급등했다가 깃털처럼 완만히 하락한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인플레 상승세는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향후 점차 하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과거보다 높은 수준에서 유지될 게 유력합니다. 연준 기준금리도 내년 초까지 4~5%로 인상된 후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인플레 단기 안정은 어려운 2가지 이유
인플레가 시장 기대만큼 단기간 내 안정되긴 어려워 보입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낮은 실업률 : 과거 미국은 인플레에 대응해 금리를 올렸다가 일정 시점에 다시 내렸습니다. 금리 인하 몇 개월 전엔 실업률이 상승하곤 했죠. 그러나 지금은 아직도 실업률이 낮은 상태입니다. 노동 공급이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돌아오지 못 한 거죠. 때문에 임금은 빠르게 오르는데도 실업률은 낮은 겁니다. 코로나 종식이 아직이기 때문에 실업률은 상당 기간 계속 낮게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요. (미국은 기준금리 결정 때 물가뿐 아니라 실업률도 중시합니다. 실업률 상승 자체가 기준금리 인하 요인입니다. 수요 둔화를 초래해 물가를 떨어뜨리기 때문이죠.)
2️⃣ 낮은 실질 기준금리 : 미국은 과거 강한 인플레 때, 실질 기준금리(=기준금리-물가 상승률)가 양(+)이 될 때까지 올렸습니다. 물가 상승률보단 기준금리가 더 높게끔 만들었단 거죠. 하지만 현재로선 물가 상승률이 더 높습니다.
한편 일각에선 미국 민간 부채 수준이 높아, 기준금리를 예전보다 높이 못 올릴 거란 주장도 있는데요. GDP와 비교하면 그 수준이 엄청 크게 상승한 건 아닙니다. 또 미국은 고정금리 대출이 많아서 기준금리가 오른다고 이자 부담이 크게 오를 가능성도 제한적입니다.
기대에 사고 뉴스에 파는 안타까운 형세
2주 전, 잭슨홀 연설에서 파월은 “시장에 고통이 있더라도 인플레를 잡겠다”고 했죠. 그 말 때문에 세계 주식 시장이 크게 흔들렸어요. 헌데 그도 잠시뿐, 시장의 과한 매도 물량과 인플레 완화 기대감에 다시 증시에 돈이 몰렸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예상을 뛰어넘는 발표가 터지자, 시장이 재차 흔들리고 있어요. ‘기대에 사고 뉴스에 파는’ 형세가 벌어지고 있는 건데요. 전형적인 약세장 매도로 보입니다. 현재로선 인플레 수치가 연준 목표인 2% 수준까지 낮아질 때까지 최소 2년이 걸릴 듯합니다. 다만 상승 폭은 지금처럼 점점 줄겠죠. 그 속도에 맞춰 세계 증시도 안정화될 것 같습니다.
기록적 인플레로 역사에 남을 것
“물가 상승폭은 줄었다”고 돼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합니다.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뺀 근원 CPI는 오히려 0.6%p 올랐습니다. 에너지가 뿌린 씨앗이 다른 영역으로 퍼진 겁니다. 정 교수님 말대로 최소 2년간은 인플레와 긴축이 이어질 전망이 우세한데, 그로 인해 원·달러 환율은 더 오를 가능성이 큽니다. 여러모로 현 상황은 경제사에 기록적 인플레의 한 사례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
“왜 세종시 집값만 큰 폭으로 하락할까?”
부동산 시장 침체로 전국 집값이 하락 중인데 유독 세종시의 하락 폭이 크다는 소식입니다. 세종시는 교통망 확충이나 국회 이전 등 개발 호재에 힘입어 지난 2년간 집값이 크게 올랐던 지역입니다. 헌데 작년만 해도 10억원이 넘던 아파트 단지들이 현재는 반토막이 난 경우도 나오고 있다네요(🔗관련 기사). 왜 유독 세종시의 하락세가 큰 걸까요?
억지 도시 만들기의 희생양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한 시장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도시의 기능과 성격이 분명한데도, 공급을 멈추지 않는 공급자가 일단 문제지만, 도시 자체의 문제도 큽니다. 세종시는 중앙 부처의 행정 서비스 기능만을 모아 계획된 도시입니다. 다른 서비스와 달리 행정은 인구 등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매우 제한적입니다. 인구 늘리자고 공무원을 왕창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이번 세종시 집값 폭락 현상은 아직 공급이 멈추지 않아 다른 지역에 비해 침체가 오래 갈 것 같습니다. 전국적인 집값 상승세에 편승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이네요. 주택 시장이 도시를 키우는 데 급급했던 시정의 희생양이 된 듯합니다.
👻 유령도시의 자연스러운 운명
최근에야 수면 위로 올라온 거지 부동산 상승론자들조차 2020년 하반기부터 세종시 집값을 우려했습니다. 세종시는 초기부터 특별 공급으로 공무원들에게 집을 싸게 분양했습니다. 인구 유인책이었지만 동상이몽이었죠. 공무원들은 작년 일제히 집값이 오르자 매각해 차익을 얻었습니다. 이른바 ‘특공 재테크’였죠.
더 큰 문제는 이들뿐 아니라 대부분이 의무 보유 기간 후 매도를 꿈꾸며, 차라리 서울에 투자하고 세종엔 전월세로 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잠재적인 매도자들이 시장의 주류가 되니 집값 하락 압박은 강해진 거죠. 여기에 전국적 부동산 침체기가 맞물리니 가속도가 붙은 겁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KTX 역사 부재의 영향도 있을 겁니다. 지역 이기주의로 정작 세종시에는 KTX 역사를 설치하지 못했는데요. 생활 인프라는 교통 체계에 따라 구축됩니다. 그러니 세종에는 인프라가 부족할 수밖에 없겠죠. 이런 점도 세종시 거주자들이 장기 거주를 꺼리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겁니다.
더 눈여겨 볼 것은 세종시의 낮은 전세가율*입니다.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는 시기에도 대체로 전세가는 버티거나 상승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세종시는 매매가와 전세가가 동시에 약세입니다. 전세가라도 상승한다면 임차 수요가 매수 수요로 전환되기를 기대해볼 만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찮은 상황인 겁니다. 때문에 단기적으로 반등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전세가율 : 주택 매매가 대비 전세가의 비율
행정 수도로서의 역할은 분명 더 커질 것
세종시가 하나의 도시로서 기능한 지 이제 막 10년가량 지났습니다. 세종시가 실패냐, 성공이냐를 논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앞으로도 정부 부처나 공공 기관의 세종시 이전 논의도 계속될 건데요. 그럼 세종시는 적어도 행정 수도로서의 역할은 분명 계속 커질 수 있단 얘기가 됩니다. 그 과정에서 주택 가격이 단기적으로는 상승과 하락을 반복할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역할 확대와 더불어 우상향을 그릴 겁니다. (현재 집값 하락도 세종시의 전면적 가치 부정은 아닐 겁니다. 지난 2년간 집값 급등의 반향으로 해석됩니다.)
봉우리가 높으면 골이 깊은 법이죠
세종시 집값은 최근 2년 사이 유난히 급등했습니다. 세종시가 어느 정도 도시의 면모를 갖추면서 그간 주변 도시의 신축 주택 수요를 블랙홀처럼 흡수한 탓입니다. 그런데 추가 공급이 연이어 진행되면서 가수요 투기 수요가 가세한 듯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처럼 투매가 동반되는 가격 하락은 있을 수 없으니까요.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가 맞물리는 와중에 예년 수준을 넘는 공급 물량이 대기 중이라고 하니… 가격 하락의 골은 다소 깊을 것 같습니다.
“투자 혹한기, 거대 기업엔 사냥 기회?”
올해만 벌써 4차례 인수합병(M&A)을 한 기업이 있습니다. 세계 최대 전자 상거래 기업 아마존인데요. 아마존은 지난주 벨기에의 한 물류 자동화 업체 인수했습니다(🔗관련 기사). 의료 기관 운영 업체, 로봇 청소기 제조 기업, 음식 배달 플랫폼에 이어 4번째입니다. 경기 침체 우려에 ‘투자 혹한기’란 말이 나오지만, 아마존 같은 빅테크는 오히려 좋은 기업을 저렴하게 인수하는 기회로 활용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 미래를 위한 아마존의 쇼핑
아마존은 미래를 위한 쇼핑에 나서고 있습니다. 올 들어 발표한 인수 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마존의 전략을 알 수 있는데요. 먼저 생필품 중 하나인 의약품, 특히 반복 구매가 잦은 약들의 유통을 아마존 생태계로 가져오려고 하고 있습니다. 2018년 전자 처방 업체인 필팩에 이어 원메디컬을 인수했는데요. 원격 진료부터 의약품 처방·배달까지 밸류체인을 완성하려는 모습입니다.
스마트홈 생태계 구축에도 적극적입니다. 스마트 스피커 에코-에코닷을 자체 개발한 데 이어 원격 방범 도어벨 업체 Ring, 집안 곳곳을 스캔하는 로봇 청소기 업체까지 인수했습니다. 가정용 로봇 아스트로를 자체 개발하기도 했죠. 우스갯소리로 ‘고객 집에 있는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필요한 퍼즐 조각을 맞춰가고 있습니다.
음식 배달 플랫폼 그립허브 지분 투자는 우선 아마존 멤버십 혜택을 강화하는 데 쓰였습니다. 1년간 배달비 무료 혜택을 제공한 거죠. 하지만 길게 보면, 자사가 보유한 홀푸드마켓 같은 오프라인 마트를 거점으로 활용해 퀵커머스를 키울 가능성도 있습니다.
위기가 곧 기회!
투자 가뭄에 달러 강세까지 겹치면서 미 빅테크 기업들엔 전 세계 좋은 스타트업을 싸게 인수할 기회가 열린 것 같습니다. 한국 유망 스타트업들도 적극적으로 세계 진출에 나서다 보면 글로벌 빅테크들과 협업이나 투자 유치 기회가 더 많이 열릴 수 있을 텐데요. 위기가 기회라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반도체로 더 굳건해지는 미국과 멕시코”
지난달 초 미국은 중국을 겨냥한 ‘반도체 지원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엔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기업들은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시설 투자를 사실상 금지한다는 조항이 들어있었는데요. 중국에 반도체 생산 공장을 두고 있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들에도 비상이 걸렸었죠.
이처럼 중국에 전방위적 반도체 압박에 나섰던 미국이 이제 미 대륙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관련 기사). 당장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이번주 멕시코에 급파돼 반도체 실험·생산 협력을 약속한 건데요. 자국에서 반도체를 전량 생산하는 건 인건비 등 여러 측면에서 어렵기 때문에 이웃한 멕시코를 참여시켜 부담을 완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되는데요. 멕시코 역시 대규모 투자 유치 기회로 간주해 적극 동참할 방침이랍니다.
美 대륙 반도체 공급망 구축이 목적
지난달 통과시킨 반도체 지원법이 중국 투자를 가로막는 ‘공격’ 측면의 카드였다면, 이번 멕시코와의 협력은 미 대륙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수비’ 강화 카드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로써 아시아에 쏠린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의도가 깔린 셈입니다. 두 카드를 조합해보자면 삼성, TSMC 등 주요 기업들이 중국 대신 미국에 투자하게 하면서, 인근 국가들을 규합해 탄탄한 지역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것이죠. 현재 반도체 산업은 설계(미국)-소재·장비(미국, 일본)-위탁 생산(대만)-메모리(한국)로 역할 분담 구도가 이뤄져 있습니다. 키를 쥔 미국의 속내를 읽고 재편에 동참해 한국의 역할을 확대해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