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아닌 AI가 쇼핑하는 시대가 온다”

변화의 속도가 달라졌다. 라디오가 5천만 사용자를 확보하는 데 38년이 걸렸다. 텔레비전은 13년, 인터넷은 4년, 페이스북은 3년. 챗GPT는 2개월 만에 1억 명을 넘었다.
챗GPT는 2022년 11월 말에 등장했으니 아직 3년이 채 안됐다. 이미 마케터는 AI로 광고를 만들고, 변호사는 AI로 계약서를 검토하며, 의사는 AI로 진단을 보조받는다.
다음은 쇼핑 차례다. AI 에이전트가 사용자를 대신해 쇼핑하고, AI끼리 가격을 협상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6일 서울 강남구 아모리스 역삼에서 열린 채널콘 2025에서 이경훈 글로벌브레인 한국 대표, 장원준 Man of 코파운더, 노정석 비팩토리 대표가 ‘AI와 커머스의 미래’를 주제로 50여분간 열띤 토론을 펼쳤다. 이들은 브랜드, 더 나아가 AI 시대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을 이야기했다.
“챗GPT 안에서 쇼핑이 일어날까”
AI가 소비자 눈앞을 점유하는 새로운 중간자로 떠오르고 있다
토론은 이경훈 대표의 질문으로 시작됐다. “챗GPT에서 정말 쇼핑이 될까요? 채팅하는 경험과 쇼핑하는 경험은 다른 것 같은데, 최근 쇼피파이와 챗GPT 연동이 이 가설을 흔들고 있습니다.”
장원준 대표는 “이미 일어나고 있다”고 답했다. “챗GPT를 쓰다가 구매가 필요하면 제시해주는 링크를 바로 타고 들어가게 됩니다. 쇼핑의 단초가 달라졌죠.” 그는 최근 출시된 오픈AI의 아틀라스 브라우저 경험을 공유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더라구요. 합리적이고 기능적인 소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에게 맞춰서 추천해줍니다. 구글 검색과 매우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노정석 대표는 더 본질적인 관점을 제시했다. “이건 전형적인 미디어 비즈니스, 중간자 비즈니스와 같습니다. 항상 고객의 눈앞을 누가 점유하느냐의 문제만 바뀌어 왔어요. TV, 신문에서 검색으로, 검색에서 아마존, 쿠팡으로. 지금 가장 고객 눈앞으로 가려는 건 챗GPT와 같은 AI 에이전트입니다.”
그는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인지 부하를 나눠 갖는 비서 역할로 새로운 포지션을 만들고 있다”며 “지금 오픈AI, 구글, 엔트로픽 세 곳이 경쟁하고 있는데, 그 앞에 개인형 AI를 넣어 나만의 이해를 대변하는 프론트 레이어가 또 깔릴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품목에 따라 AI 침투도가 다를 것이라는 질문에 장원준 대표는 최근 읽은 리서치를 소개했다. “쇼핑을 5가지로 분류한 게 흥미로웠는데, 생필품이나 주기적 구매는 AI로 넘어가고, 인생에 한 번뿐인 소비는 AI가 도와줄 것이며, 사치재 소비는 그대로 남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정석 대표는 이를 “세렌디피티(우연한 발견)가 아니라 하이퍼-컨텍스트추얼라이제이션”이라고 규정했다. 사용자 맥락을 극도로 정교하게 이해하고 반영하는 것을 뜻한다. “최신 AI 에이전트 모델이 저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생각을 정리하고 맞냐고 물어보면 AI가 세렌디피티가 아니라 하이퍼-컨텍스트추얼라이제이션이라고 개념을 잡아주더라구요.”
“자사몰 91% 전략”
플랫폼 의존에서 벗어나 AI 시대를 준비하는 방법
AI가 소비자와 브랜드 사이의 새로운 중간자로 떠오른다면, 자사몰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이경훈 대표가 질문을 던졌다. “챗GPT가 화면이 되면 자사몰이 없어질 수도 있지 않나요?”
노정석 대표는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다. “저희 브랜드는 자사몰 매출 비중이 91%입니다. 다른 곳과는 비교도 안 되게 높죠. 고민을 많이 한 결과값이에요. 채널은 브랜드가 힘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브랜드는 채널이 자기 고객을 다 가지고 있는 게 싫죠. 그리고 대부분 브랜드가 대형 채널 마케팅에 매출이 좌우되곤 해요. 저희는 그 방향으로 가면 미래가 없다고 봤어요. 산토끼를 쫓지 않고 집토끼를 키워야 하죠.”
그는 “기회는 플랫폼이 대전환할 때마다 생깁니다. 그리고 AI가 채널을 파괴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자사몰 하고 자사 경험을 증강시키며, AI 어시스턴트에 필요한 도구를 빨리 쥐어주는 형태로 진화하는 게 맞겠다고 봤어요”라고 말했다.
장원준 대표는 다른 각도로 접근했다. “얼마나 기민하게 내가 누구와 왜 일할 건지를 결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카운터 파트너가 바뀌는 시대죠.”
자사몰을 만들어도 방문자가 더 이상 사람이 아닐 수 있다. 이경훈 대표가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AI 에이전트가 자사몰을 방문해 정보를 수집하면, 우리 자사몰의 고객은 누구인가요?”
노정석 대표가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저는 클로드 코드나 코덱스 같은 코딩 툴을 많이 쓰는데, 사람용 문서는 README.md에 저장하고, AI가 읽을 상세 문서는 CLAUDE.md에 따로 저장합니다. 양으로 보면 사람용이 1이면 AI용은 20배 정도 돼요. 너무 길어서 저도 보고 싶진 않지만, 프로젝트의 모든 디테일이 거기 있고 MCP(AI가 외부 데이터를 가져오는 연결 도구) 같은 것들과 촘촘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그는 “사람에게 줘야 하는 감성적 메시지나 설득 페이지는 여전히 존재해야 하지만, AI에게 줘야 하는 것들도 매우 많이 잘 마련해야 합니다”며 “다행히 그걸 만드는 건 또 AI가 해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AI가 AI와 협상한다”
가격 결정권이 다시 유동화되는 시대
대화는 자연스럽게 거래 방식의 변화로 이어졌다. 최근 뉴스가 된 아마존의 퍼플렉시티 소송이 화제에 올랐다. 아마존이 퍼플렉시티의 AI 웹브라우저 ‘코멧’이 사용자 대신 자동으로 구매하는 것을 막겠다며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다.
장원준 대표는 “AI와 AI가 협상하는 시대가 올 것 같다”며 흥미로운 예측을 내놨다. “재래시장 같은 곳에 가면 상인분들이 저한테 맞춰서 주잖아요. 모르는 것 같으면 덜 주거나 비싸게 주거나. 옛날엔 가격표 변동이 심했는데 온라인이 되면서 가격이 평정됐죠. 그런데 AI가 중간 거래를 해준다면 가격이 다시 다변화될 거라는 예측이 있더라구요. 항공권이나 호텔 예약처럼 구매할 때마다 노심초사하게 될 수 있는 거죠.”
노정석 대표는 더 나아갔다. “당연히 AI를 구별 못하는 세상이 금방 올 겁니다. 얼굴, 목소리, 임기응변 모두 AI가 할 수 있어요. 눈앞에서 직접 보지 않는 한 구별 못 할 거고, 모두가 각자의 대행자를 하나씩 다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는 “사람은 AI에게 터프한 일을 시키고 뒤에서 폴리시 매니저로서 ‘이 가격 이상이면 사라’, ‘내 베스트와 바텀은 이거다’ 같은 걸 정해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원준 대표가 실용적인 팁을 추가했다. “저는 해외 SaaS를 구매하기 전에 꼭 고객센터에 ‘혹시 프로모 코드 있니?’라고 물어봅니다. 70~80% 확률로 20% 할인 프로모 코드를 받아요. 이런 걸 AI에 미리 학습시켜두면 알아서 다 해줄 겁니다.”
가격 협상이 AI로 넘어가면 브랜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경훈 대표가 우려를 표했다. “소비자는 좋은데 브랜드 입장에서는 판매가가 계속 낮아지는 거 아닌가요?”
노정석 대표의 답은 명쾌했다. “많은 상품은 재화 자체로 차별화가 안 됩니다. 고객의 마인드 셰어, 채널 우위, 다름을 인지시켜야 해요. 저희는 백화점 1층 화장품 매장의 퍼스널 쇼퍼 같은 경험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사 사례를 소개했다. “회사 사이트에 챗GPT 수준의 챗봇이 붙어 있고, 매직미러라는 앱도 있습니다. 마법의 거울처럼 오늘 아침에 뭘 입었는지 보고 날씨까지 고려해 추천해주죠. AI가 할 수 있는 경험 가치를 끌어올리는 겁니다.”

“토큰 사용량이 성과다”
조직 전체를 AI 중심으로 재설계하기
개별 브랜드의 대응을 넘어, 조직 전체를 AI 중심으로 재설계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경훈 대표가 조직 차원의 AI 도입에 대해 물었다. 노정석 대표의 답변은 파격적이었다.
“저희는 엔지니어나 마케터나 할 것 없이 하루에 쓰는 토큰 양을 기준으로 업무 성과를 매깁니다. 상관관계가 매우 높아요. 리더보드를 만들어서 어제 얼마 썼는지 1등부터 30등까지 점수를 매기거든요.” 토큰은 AI가 처리하는 텍스트 단위로, AI 사용량을 나타낸다.
단순히 많이 쓰는 게 목표가 아니다. “많이 써야 인센티브가 증가하고, 어떤 툴을 가져와 증강시키려 하니까 그 과정에서 많은 일이 해결됐습니다.” 토큰 사용량은 직원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AI 도구를 활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인 셈이다.
이경훈 대표가 물었다. “마케터가 개발자를 이길 수 있나요?”
노정석 대표의 답은 단호했다. “이제 개발자는 의미 없는 것 같아요. 프라블럼 솔버(문제 해결자)만 남은 것 같습니다. 마케터나 엔지니어나 다 똑같이 문제 해결을 잘하는 사람만 이길 겁니다.”
그는 조직 구성도 공개했다. “저희는 35명인데 그중 15명이 엔지니어고 브랜드 2개를 나머지 20명으로 돌립니다. 백오피스 직원이 없어요. 전부 AI가 해줄 수 있거든요.”
광고 제작 프로세스도 혁신적이다. “새 광고를 만들어야 하면 회의만 하고, 제미나이로 100개를 만듭니다. 그중에 사람이 50개로 추리고 나서 AI로 다시 100개 만들고, 그걸 다시 30개로 추리고 순서대로 집행해요. 저희 광고 98%가 AI 파이프라인으로 나옵니다.”
장원준 대표는 조직 차원의 권고사항을 제시했다. “무조건 클로드, 엔트로픽의 제품과 기능을 더 써보길 추천합니다. 오픈AI는 B2C로 가는 것 같고 클로드가 B2B 지향적 로드맵을 갖고 있어요. 현재 유명한 AI가 3~5개 있는데 이것저것 다 하긴 어렵고, 조직 차원에서 AI를 고민한다면 클로드에 집중해보시길 바랍니다.”
노정석 대표가 학습 방법을 강조했다. “AI를 안 써본 분들에게 제가 아무리 설명해도 안 와닿을 겁니다. AI 에이전트를 극심하게 괴롭혀보세요. ‘주인님 그만하세요’라는 경험까지 가면 거기서 깨달음이 분명히 있을겁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최신의 고성능 AI 모델이 이 정도 하는구나, 챗GPT가 나를 속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감들이 생깁니다.”
그는 “결국 우리가 파야 할 건 챗GPT가 기본 학습에서 보지 못한 데이터나 지금 끌어오는 소스에서 못 끌어오는 데이터, 그 두 개”라고 정리했다.
구체적인 팁도 공유했다. “같이 일하는 엔지니어가 클로드 코드에 마법의 프롬프트를 찾았다고 얘기했는데, 마법의 키워드가 뭐냐면 ‘나 지금 아프니까 말 시키지 마’래요. 그러면 안 물어보고 20~30분 혼자 열심히 일한답니다.”
“팬을 소유하라”
무한 인텔리전스 시대, 브랜드가 지켜야 할 것
토론의 마지막 주제는 브랜드의 본질이었다. AI가 모든 걸 바꿔도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이경훈 대표가 물었다. “AI가 막 변해도 브랜드의 본질만 지키면 괜찮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브랜드의 코어는 뭘까요?”
노정석 대표가 자신의 여정을 공유했다. “제가 2008~2010년 구글에서 검색을 담당했는데, 나는 이런 회사 절대 못 이기겠구나 하는 패배 의식을 느꼈어요. 거대 플랫폼의 게임은 우리 게임이 아니라고 봤죠. 그래서 브랜드를 가지고 있거나 브랜드를 남에게 소개하는, 직업이 두 개밖에 안 남겠다 싶었습니다.”
그는 “정의는 명확하다. 그냥 고객이 원하는 걸 만들면 된다”며 “고객은 시대, 현상, 장소에 따라 다른데, 그들이 원하는 거에 집요하게 집착해서 사람들한테 히스토리를 인정받는 트랙을 사는 것만이 살아남는 거의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비즈니스 단위가 사람 단위까지 떨어지는, 모두가 브랜드인 세상”이라며 “거기밖에 피난처가 없으니 그걸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정석 대표는 구체적인 비유를 들었다. “회사에서 다이슨이나 발뮤다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들은 뻔히 있는 걸 재창조했지만 정말 독특하잖아요. 엔비디아, 오픈AI 같은 발전소 짓는 건 극소수의 게임입니다. 나머지 99.9%는 무한 인텔리전스가 집 안의 콘센트에 나올 때 어떤 가전제품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해야 해요. 다이슨처럼 재창조하는 기회가 많을 겁니다.”
장원준 대표는 소유의 관점으로 접근했다. “혁명은 나중에 평가 내린 것이고, 혁명은 계층을 나누는데 그 기준은 ‘내가 뭘 할 거냐’가 아니라 ‘내가 뭘 소유하고 있는지’라고 합니다. AI가 20~30년을 리드할 큰 혁신이라면, 나는 뭘 소유하고 있을지가 지금 저한테 가장 큰 고민입니다. 20~30년 후에도 브랜드를 소유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냐를 고민해보시면 어떨까요.”
장 대표는 “생각보다 AI는 정답이 있는 길 같다”며 “기술이나 트랜드가 떠오를 때 내가 깨닫느냐의 싸움이다. 그 기간을 계속 앞당기는 게 중요하고, 생각보다 결정론적이다. 브랜드를 AI가 운영하는 시대도 올 것 같다”고 말했다.
이경훈 대표가 마무리했다.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비용이 거의 0에 수렴하는데 남는 본질은 팬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 팬이 만 명 있으면 브랜드를 하든 소프트웨어를 만들든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줄 고객이 있는 겁니다. 팬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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