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상을 파고든 스타트업들이 있다. 이들이 뛰어든 시장의 공통점은 그간 혁신이 어렵다고 여겨지던 분야라는 점이다. 이들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시장을 점령했을까? 디테일의 차이는 솔루션이 아닌 문제 진단에 있었다. 개척자들은 사용자 경험을 새롭게 재정의해 각자의 분야에서 전례 없는 혁신을 완성해 낸다.
SBS의 지식 구독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이 뉴미디어 북저널리즘과 함께 콘텐츠 3종을 종이책으로 엮어 출간했다. 《리디파이닝 REDEFINING》과 함께 《욕망으로 쓰는 트렌드 보고서》, 《설명하기 지친 사람을 위한 데이터》다.
《이타적 유전자》로 유명한 매트 리들리(Matt Ridley)는 2020년작 《혁신에 대한 모든 것》에서 인류가 이룬 혁신은 특정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류 사회 전체의 고민, 그리고 개선을 향한 시행착오의 결과물이라 설명한다. 리들리는 혁신을 총량의 관점에서 접근했고 그 ‘필연성’을 강조했다. 즉, 구글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이 없었어도 인터넷 시대는 도래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말하면 페이지와 브린이 필연적으로 혁신했어야 할 분야를 혁신했다는 뜻이 된다. 그들이 인터넷 시대의 ‘개척자’가 될 수밖에 없던 이유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섯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리디파이닝 REDEFINING》은 플랫폼 이코노미의 승자가 된 토스, 당근마켓, 리멤버, 오늘의집, 런드리고를 조명한 책이다.
“그동안 고객은 드라이와 빨래, 이 두 가지 중요한 주제를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했는데, 우리는 이걸 동시에 해소할 수 있어야 진짜 세탁 문제의 해결이라고 봤다.”
-의식주컴퍼니(런드리고) 조성우 대표 (173쪽)
“PG(결제 대행사) 시장에서 수십 년 동안 아무런 혁신의 의지 없이 불편하게 존재하던 결제들이야말로 우리가 들어가 바꿔야 할 대상이었다.”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서현우 CSO (43쪽)
“오늘의집의 성공이 흥미로운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에서 가치를 창출해 종국에는 기존 서비스보다 높은 혁신을 이루어 냈다는 데 있다. 미국의 경영학자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Clayton M. Christensen)은 전자를 ‘존속적 혁신’ 후자를 ‘파괴적 혁신’이라고 지칭했다.” (112쪽)
이들의 솔루션은 의외로 간단하다. 토스는 송금을 포함한 각종 금융 행위의 절차를 간소화했다. 당근마켓은 동네 사람들이 모바일에서 교류할 장을 만들었다. 리멤버는 명함 정보를 받아 구인할 기업에 연결했다. 오늘의집은 사람들이 집 사진을 공유할 곳을 만들고 사진 속 인테리어 소품을 바로 살 수 있게 했다. 런드리고는 밤에 문 앞에 빨래를 걸어두면 다음 날 세탁해서 다시 갖다 준다. 이미 우리 일상에 파고들어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 솔루션들의 공통점은 뭘까? 혁신이 필연적이었음에도 그간 혁신이 이뤄지지 않던 분야라는 점이다. 그리고 대게 이런 영역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시장 마찰력을 가지고 있다.
“그 과정에 왕도는 없었다. 처음엔 무작정 발로 뛰면서 한두 개 은행들을 설득시켰고, 그 은행들을 가지고 최대한 성장하면서 우리가 문제없다는 걸 증명해 냈고, 그 증명해 낸 결과들로 다시 또 설득하면서 은행을 다 우리 서비스에 붙인 것이다. 간편 송금을 전체 시중 은행에 연결하는 데 3년 걸렸다.”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서현우 CSO (31~32쪽)
“아예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는 이미 시도해 봤다. 그랬더니 갑자기 생긴 이 새로운 공간에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와 사용하는 그림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미 오프라인에서 익숙하게 쓰던 무언가의 매개체를 잡고 그것을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게 더 현실성 있는 시도가 아니겠냐는 생각에 도달했다.”
-드라마앤컴퍼니(리멤버) 최재호 대표 (80쪽)
많은 스타트업이 개척자를 꿈꾸지만 뾰족한 솔루션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스타트업의 대부분은 강한 시장 마찰과 함께 쓴맛을 본다. 고객과 호흡하며 성장한 소수만이 시장에 안착한다. 디테일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새 분야를 개척하고 시장을 점령한 다섯 스타트업은 문제를 진단하는 방법부터 달랐다. 이들은 사용자 경험 자체를 재정의했다.
이들이 시장에 진입해 눈치챈 것은 기존 시장이 지나치게 공급자 중심적이라는 사실이다. 해외 기업이 출시한 대체재도 있었지만 한국의 실정과는 맞지 않았다. 비단 고객 불편 몇 가지를 해소하는 방식이 아니라 과정 전체를 혁신해 새로운 가치와 경험을 제공할 필요가 있었다.
“즉, 이 모든 고객 경험이 너무나 공급자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고객의 경험에는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이 고객 경험을 맨 앞단인 ‘세탁물 맡기기’부터 끝단인 ‘찾는 것’까지 펼쳐보니 자연스럽게 이 세탁 과정 자체를 바꾸지 않고는 고객 경험을 혁신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의식주컴퍼니(런드리고) 조성우 대표 (157쪽)
“결국 우리가 확인했던 건, 맨 처음 ‘나는 어떤 공간에서 살고 싶지?’, ‘내가 집을 어떻게 바꿔야 하지?’라고 생각했을 때, 그걸 미리 생각해 놓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시작부터 막힐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봤을 때 이 영역의 가장 첫 순서이기도 하고, 또 가장 많은 사람이 고민하는 영역이었다.”
-버킷플레이스(오늘의집) 이승재 대표 (125쪽)
“일본이나 우리나라는 경제 인구의 단 3퍼센트 정도만 링크드인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문화적 차이에 기인한다. 링크드인을 통해 이직할 의향이 있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것 자체를 한국 사회에서는 서로 불편해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최재호 대표는 (…) 서로 명함을 주고받는 한국의 비즈니스 문화에 주목하게 됐다.” (85쪽)
개척자들은 사용자 경험을 재정의하며 시장에 파고들었다. 토스는 8전 9기를 거쳐 고객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집중한 끝에 모든 금융을 원 앱(one app)으로 통합하기 위한 여정에 오른다. 당근마켓은 그간 C2C에서 사기 방지를 위해 동원되던 시스템, 수익 확보를 위해 결제 수수료를 받던 관행을 뛰어넘어 이용자가 정말로 원하는 따뜻한 동네 플랫폼으로 남고자 한다. 리멤버는 초기 시장 진입을 위해 무모한 수기 입력을 도입하고 한국 고객의 심리에 집중해 경력직 스카우트라는 시장을 대중화한다. 오늘의집은 대표 스스로가 첫 번째 유저라 자평할 만큼 프로덕트 내 사소한 불편을 모두 제거하며 복잡한 고객 여정을 심리스(seamless)하게 만든다. 런드리고는 그간 드라이클리닝 등 고객 수요가 일어나던 부분을 넘어 진짜 일상의 숙제인 생활 빨래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세계 최대 규모의 스마트 팩토리를 세운다.
“동네 범위 설정에 있어 시행착오도 있고 실패도 있었다. 처음엔 우리도 구 단위처럼 조금 큰 규모로 연결을 하려 했지만 사실 잘 활성화되지도 않았고 구의 경계에 거주하는 이용자는 구가 달라도 바로 길 하나 건너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연결도 있다 보니 좀 더 가까운 동 단위를 설정하고 그 동을 벌집처럼 연결해서 정말 가까운 주민들끼리만 연결될 수 있게끔 기술적으로 구현했다. 그러니 확실히 활성화가 잘 됐다.”
-당근마켓 김재현 공동 대표 (53~54쪽)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하는 것의 장점은 실제로 내가 그 문제에 대해서 어려움을 느끼고 그걸 이용자로서 굉장히 잘 알고 있기에 문제를 어떻게 풀면 좋을지에 대해서 고민만 잘하면 된다는 점이다.”
-버킷플레이스 이승재 대표 (119쪽)
“토스는 송금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의 가치 활동을 분석했다. 그 결과, “비즈니스의 목적은 고객을 창출하는 것이다”라는 미국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의 격언처럼, 새로울 것이 없어 보였던 송금 서비스 분야에서 새로운 고객을 창출했다. 서비스 플로우를 파악하기 위한 고객 여정 지도(customer journey map)를 그려 보면 토스가 고객의 ‘가치 잠식’되는 부문을 얼마나 줄였는지 더욱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17쪽)
‘프로덕트 마켓 핏(PMF·Product Market Fit)’은 스타트업의 공통 과제다. 시장이 과열되며 어느 순간 혁신은 제안에서 해결로, 침투에서 파괴로 그 의미가 이동하고 있다. 《리디파이닝 REDEFINING》은 기존 산업의 약한 고리를 끊어 내고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는 수준을 넘어, 사용자가 종국에 어떤 경험을 하게 만들 것인가를 사명감으로 고민한 다섯 스타트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출판사 스리체어스는 “이들이 문제를 진단하고 시행착오를 거쳐 시장에 진입하고 성장통을 견디며 시장을 점령해 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고객 가치에 대한 남다른 관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리디파이닝 REDEFINING》을 쓴 남대일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워싱턴주립대학교에서 경영 전략과 기업가 정신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잔뼈 굵은 연구자다. 《101가지 비즈니스 모델 이야기》라는 베스트셀러의 저자이기도 하다. 같은 연구팀으로 참여한 김주희 동덕여대 문화지식융합대학 교수는 포스텍 영재기업인 교육원에서 기업가 정신 함양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 교육 과정을 설계하기도 했다. 필자로 참여한 정지혜 대덕벤처파트너스 수석 팀장 역시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 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석사 과정을 마친 전문가다.
이들의 기업 분석 보고서를 토대로 심층 취재를 진행한 정명원 SBS 디지털뉴스 기획부장은 25년 차 기자로 현재 구독 모델 TF 총괄을 맡고 있다. 한국방송대상 대상, 한국기자상, 한국방송기자상 2회를 포함해 23차례나 외부 기자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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