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악역’이 관객과 독자를 매혹하는 법…우리가 ‘나쁜 놈들’에게 끌리는 이유
요즘 ‘악역’이 관객과 독자를 매혹하는 법…우리가 ‘나쁜 놈들’에게 끌리는 이유
영화·드라마 속 악역의 비중이 커지고 있습니다. 드라마 ‘더 글로리’, ‘7인의 탈출’ 등 악인의 파렴치함을 드러내고 징벌하는 이야기부터, 드라마 ‘악귀’나 영화 ‘조커’처럼 악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야기까지 다양한데요. 미워할 수 없는 매력으로 팬을 끌어모으는 악역도 점점 더 많아집니다. 악행을 저지르지만 어딘가 모르게 우리 자신과 닮아 있고, 때로 연민을 건드리는 그런 악역 말이죠.
세상에 사연 없는 인물이 존재할까요? 보편적 관점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악행 앞에서 우리는 그 경위나 의도를 알고자 합니다. 악역이 어째서 그 지경에 다다르게 되었는지 납득하고 싶어 하죠. 그런 상상에서 출발해 악인의 삶을 새롭게 해석하고 조명하는 이야기가 대중적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선하고 정의로운 주인공만 비추는 스포트라이트는 언젠가 따분해지기 마련이니까요.
새로운 시대를 만난 ‘빌런’
과거의 악역은 그저 무찌르고 처단해야 할 대상에 불과했습니다. 주인공의 선하고 영웅적인 면모를 부각하는 역할에 그쳤으니까요. 이유가 무엇이든 주인공의 여정이 더욱더 험난해지도록 방해하거나 위협하는 것이 악역의 본분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입체적인 인물로서 탐구되기보다는 도구적이고 평면적인 캐릭터에 그치는 악역이 많았어요.
그런데 최근 몇 년 간 고전적 악역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2021년 개봉한 디즈니 실사 영화 ‘크루엘라’는 원작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에 등장하는 빌런 캐릭터를 재창조하여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원작과의 싱크로율에 공들이기 보다 시대에 맞는 캐릭터 해석에 집중했는데요. 영화를 제작한 앤드류 건은 빌런 ‘크루엘라’에 관해 “화려하고 패셔너블하며 약간 미친 것 같은 강렬한 모습 뒤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파헤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원작의 ‘크루엘라’는 돈에 혈안이 되어 남을 이용해먹는 빌런에 불과했지만, 영화 속에서 197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펼치는 천재 주인공으로 탈바꿈했어요. 평면적인 이미지로 머물러있던 악역을 지금의 상상력으로 소환할 때, 스토리는 가장 창의적인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걸 상기하게 됩니다.
‘악역의 운명’을거부하는 악역
웹툰·웹소설은 특유의 ‘빙의’ 설정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악역을 보여줍니다. 이른바 ‘악역 빙의물’은 현실의 주인공이 소설 속 악역으로 빙의해 살게 된다는 점에서 단순한 캐릭터 재해석과는 다릅니다. 특히 로맨스판타지 장르에서 ‘악역’ 또는 ‘악녀’는 꾸준한 인기 키워드로 자리 잡았어요. 납작하게만 다뤄지다 비극적 죽음을 맞는 악역의 삶에 개입하여 운명을 개척하는 이야기가 돋보입니다.
일례로 웹툰 ‘가짜 성녀는 퇴장을 기다린다’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읽던 소설 속 ‘가짜 성녀’로 빙의하는데요. 막상 빙의를 하고 보니 이 성녀가 정말 가짜인지, 살아생전 왜 그리 못된 짓을 했는지 등 독자로서 알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둘 깨닫게 됩니다. 원작 소설에 서술되지 않은 내용을 스스로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결국 화형으로 죽음을 맞게 될 악역의 최후를 바꾸기로 결심하죠.
원작에 빙의한 주인공은 ‘악역답게’ 행동하는 대신 인간적이고 복합적인 인물로 거듭나기를 택하는데요. 주어진 서사에 안주하거나 순응하지 않는 주체적 인물로부터 ‘악역’과 ‘영웅’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캐릭터가 탄생할 수 있다는 점이 고무적입니다.
현실을 비추는악인의 서사
‘악역에게 함부로 서사를 주지 말라’는 문제 제기도 분명 유효합니다. 무자비한 살육을 일삼는 악인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이야기는 자칫 악행을 정당화하거나 낭만화할 수 있다는 비판인데요.
그렇지만 악한 인물의 이야기가 곧 악행을 긍정하는 건 아닐 겁니다. 다양하고 참신한 악역은 극적인 재미를 주는 동시에 우리 자신을 입체적으로 돌아보게 하니까요. 영화평론가 강덕구는 저서 『악인의 서사』에서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우리는 악을 통해, 혹은 악이 일어난 이유를 살펴보면서, 혹은 악의 의미를 고찰하면서 그 반대편에 있는 인간성을 확인할 수 있다. (···) 바로 우리 인간이 허구를 통해 자신을 비춰보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 악인의 서사(2023), 돌고래
원문 : 우리가 ‘나쁜 놈들’에게 끌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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