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통상임금 판단 기준을 대폭 변경하면서 노사관계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일 선고한 판결(2020다247190 및 2023다302838)에서 그동안 통상임금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여겨졌던 ‘고정성’ 요건을 폐지하고, ‘소정근로 대가성’, ‘정기성’, ‘일률성’을 새로운 판단 기준으로 제시했다.
이번 판결의 가장 큰 변화는 특정 시점 재직자에게만 지급되는 ‘재직 조건’이나 일정 근무일수를 충족해야만 지급되는 ‘근무일수 조건’이 부가된 임금도 통상임금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근로자가 소정근로를 제공한 이상, 조건의 존재만으로 통상임금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대법원이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로 삼을 근거가 없다’고 명확히 하며, 근로자가 정해진 근로시간을 모두 제공했다면 조건의 유무와 관계없이 해당 임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성과에 따라 변동되는 실적급은 근로 대가성이 없다고 보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지만, 성과와 무관하게 지급되는 최소 보장 금액은 통상임금으로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이 이처럼 획기적인 판례 변경을 결정한 배경에는 몇 가지 중요한 법리적 판단이 자리잡고 있다. 우선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고정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고려됐다. 또한 통상임금의 본질적 의미가 소정근로에 대한 가치 평가라는 점에서, 실제 근로 수행 여부와 무관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논리가 받아들여졌다.
이번 판결로 인한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영계에 따르면 통상임금 범위 확대로 인한 추가 비용 부담이 연간 최소 6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기업들은 통상임금 인정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임금 체계의 전면적인 재정비가 불가피해졌다. 기존 임금 체계가 새로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소송 리스크가 커질 수 있어, 기업은 기존 임금 지급 방식을 검토하고 통상임금 산정 기준을 재설정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근로자 측면에서는 미지급 임금이나 퇴직금을 청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대되었다. 특히 법적 소송을 통해 과거 받지 못한 금액을 회복할 기회가 생겼으며, 노동조합과 개별 근로자들이 통상임금 청구 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퇴직한 근로자들도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대법원은 법적 안정성을 고려해 새로운 판례의 적용 시점을 선고일 이후로 한정했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에 대해서는 최대 3년까지 소급 적용이 가능하지만, 그 이전의 사건들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는 기업들의 급격한 부담 증가를 완화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노동계는 이번 판결을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를 인정한 진일보한 결정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동안 통상임금에서 제외됐던 각종 수당과 상여금이 포함됨으로써 근로자들의 실질적인 임금 상승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특히 연장근로수당, 야간근로수당 등의 산정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의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초과근무에 대한 보상이 강화될 전망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노동법 해석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근로자의 권리 보호와 기업의 경영 현실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조화롭게 균형잡는 것이 향후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임금체계의 합리적 개선과 노사 간 대화를 통한 상생 방안 모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이다.
정부는 이번 판결의 후속 조치로 통상임금 관련 지침을 개정하고, 기업들의 임금체계 개편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노사정 협의를 통해 새로운 기준의 연착륙을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이번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례 변경은 우리나라 노동환경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근로자의 권리 보호와 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영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어떻게 조화롭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