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업이라는 것은 결국 생존의 문제다. 그것도 치열한. 하지만 누구도 제대로 된 투구를 준비시켜주지 않는다. 그저 맨몸으로 전쟁터로 나가라고 등을 떠민다.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이 무료장사학교를 열었을 때,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기업이 돈을 벌지 않는 일에 투자하는가. 그런데 그 학교는 11년 동안 30만 명이라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우리는 이 숫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난 2014년, 한 온라인 배달 플랫폼이 무료장사학교를 열었다. 우아한형제들이 운영하는 배민아카데미의 이야기다. 그로부터 11년이 흘렀고, 배민은 누적 수강생이 30만 명을 돌파했다. 숫자만 들으면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30만 명이면 강원도 춘천시 인구보다 많은 규모다.
이 기간 동안 배민아카데미는 온·오프라인을 합쳐 총 3,884회의 교육을 진행했다. 하루에 한 번꼴로 누군가에게 장사의 기술을 가르쳤다는 얘기다. 그것도 무료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짜라는 것은 뭔가 함정이 있거나, 아니면 숭고한 이상이 있거나 둘 중 하나다. 배민아카데미는 후자에 가깝다. 외식업 종사자들의 성장이 곧 자신들의 성장이라는 생태계적 사고방식을 택한 것이다.
배민아카데미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다. 장사에 필요한 기본 지식부터 외식 경영 이론, 실습 교육, 컨설팅까지 모든 과정을 무료로 제공한다. 마치 전투에 나가기 전 필요한 모든 무기를 갖추게 해주는 무기고와 같다.
서울과 경기에 물리적 공간을 두고 오프라인 교육을 제공하는 한편, 지방 업주들을 위해 비대면 라이브 교육과 온라인 교육도 병행한다. 빠른 배달만큼이나 교육의 접근성도 높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지만, 여기서는 적어도 공짜 교육은 있는 셈이다.
30만 명 돌파를 기념해 배민은 5월 26일부터 나흘간 ’30만 위크-교육대전’이란 이름의 릴레이 특강을 마련했다. 이것은 단순한 축하행사가 아니다. 지식의 기념비를 세우는 의식과도 같다.
첫날, 순대실록의 육경희 대표가 연단에 선다. ‘연매출 100억, 순대에서 시작된 브랜드 실전 법칙’이란 제목의 강연은 한국인의 서민적 음식인 순대가 어떻게 억대 매출 브랜드로 성장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순대라는 평범한 음식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비범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다. 이것은 어쩌면 한국 자영업의 축소판이 아닐까.
둘째 날에는 마인드랩 이광민 원장이 “지치지 않는 장사를 위한 사장님의 회복탄력성”이라는 주제로 강연한다. 자영업자들의 정신 건강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흔히 장사의 기술만 이야기하지, 장사하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맞이하는 손님들 속에서, 사장님들의 정신은 어떻게 균열되고 또 회복되는가. 이 강연은 그 균열과 회복의 사이클을 다룰 것이다.
셋째 날에는 한국 중식계의 거장 여경래, 여경옥 셰프가 ‘중식 요리의 대가가 전하는 외식업의 길’을 주제로 강연한다. 중국 요리는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지 오래지만, 그 내밀한 세계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두 대가는 그들이 걸어온 길을 통해 외식업의 본질을 들려줄 것이다. 요리는 기술인가, 예술인가, 아니면 장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마지막 날에는 배민아카데미 출신 사장님들이 직접 강단에 선다. 육일돈 김준영 사장, 피자느반 이채언 사장, 데일리픽스 최종원 사장이 그들만의 성공 방정식을 공개한다. ‘동네 고객을 찐팬으로 만드는 작은 가게 운영전략’, ‘구매전환율 2배 높이는 판매 전략’, ‘매출 431% 높이는 고객 여정 세팅 노하우’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구체적인 숫자와 전략으로 무장했다. 이론이 아닌 현장의 목소리다. 가장 설득력 있는 강연이 될 것이다.
우아한형제들 권용규 사장님비즈니스센터장은 “지난 11년간 배민아카데미는 다양한 온/오프라인 교육을 운영하며 외식업주가 겪는 가게운영의 고민을 함께 해결하고자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배민아카데미를 통해 더 많은 가게가 실질적인 성장을 만들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말은 간결하지만 그 안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 30만 명이 배출됐다는 것은 30만 개의 스토리가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성공한 이야기도 있을 것이고, 여전히 고군분투 중인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맨몸으로 전장에 나가진 않았다. 최소한의 무기와 전술, 그리고 동료의식을 배민아카데미를 통해 얻었을 테니까.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30만 명 이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배민아카데미가 꿈꾸는 외식업의 미래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미래 속에서 우리는 어떤 음식을, 어떤 서비스를, 어떤 경험을 얻게 될 것인가. 배민이 키워낸 30만 명의 외식업주들이 그 답을 써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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