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면접을 볼 때 교수님들 앞에서 그랬어요, 공부만 하는 건 의미 없다고요.”
김윤의 이사장이 ‘공부만 하신 분들’ 앞에서 꺼낸 다소 당돌한 말이었다. 그녀에게 동아시아 시민사회와 인권에 관한 공부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실천’을 위해 가는 여정일 뿐이었다. 그러나 인권이란 화두를 도대체 어떻게 ‘실천’해야 한다는 것일까? 그 방법을 몰라 헤매던 2012년 여름, 김윤의 이사장은 2주간 아산나눔재단 청년 프론티어즈 자격으로 미국의 사회적기업을 탐방하면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나눔의 실천을 통해 사회의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김윤의 이사장을 고려대학교의 한 강의실에서 만났다.
스토리온파운데이션(Story On Foundation) 김윤의 이사장
나눔의 실천 방법을 찾은 계기
미국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만나던 중 어썸파운데이션(The Awesome Foundation)에 크리스티나 쉬(Christina Xu) 이사장을 만났다. 자신의 본업이 있지만, 재단을 만들어 별도의 나눔 활동을 하는 친구였는데 그 나눔의 방식이 독특했다. 10명이 100달러씩 내서 모은 1,000달러를 갖고선, 세상을 변화시키는 과학 및 예술 분야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들을 매달 선정해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보스턴에서 시작한 이 프로젝트가 미국의 전 지역에 퍼져나간 이야기가 상당히 흥미로웠다.
일본에 머물렀던 덕분에 실천의 첫걸음을 뗄 수 있었다고.
공동체의 평화 번영을 추구하는 ‘한ㆍ중ㆍ일 캠퍼스 아시아’ 교육 사업을 통해 와세다대학교에 다닐 때였다. 그때 재단의 공동설립자인 정다훈 씨를 만나게 되었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거니와 추진력이 엄청 강한 친구이다. 미국의 어썸파운데이션 등 많은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같이 꿈꾸는 미래를 그려나갔다.
한편으로 내가 만약 한국에 있었다면, 나도 ‘나눔과 평화’라는 미션을 남들과 같이 그저 머나먼 이야기로 느껴졌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와세다대학교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일본 사회를 들여다보게 되었고, 와세다대학교 근처 코리아타운에서 벌어지고 있는 혐한 시위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눔과 평화에 관해 깊게 생각할 기회가 되었다. 한국인들은 반일 감정만 심한 걸로 알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혐한 감정 또한 심하다. 단순히 극소수가 표출하는 감정이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의 배경에는 역사에 대한 무지와 재일교포에 대한 반감 등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일본 교과서에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다.”라는 한 줄의 문장만 있다 보니 독도 문제, 축구 한일전 등에서 나타나는 한국인의 ‘감정적 대응’이 일본인들에겐 이해할 수 없는 비이성적 언행으로 받아들여졌다. “한국 사람이 우리를 싫어한다고 하는데 우리도 한국이 ‘그냥’ 싫다”고 했다.
반면에 한국과 일본의 평화를 소망하며 프리허그를 하는 일본 청년, 자신의 사재를 털어 위안부박물관을 설립한 일본 저널리스트를 보면서 큰 자극을 받았다. 정다훈 친구와 재단 설립을 추진하면서 ‘나눔과 평화’라고 하면 너무 거리감이 느껴지니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단명에 ‘Story’가 들어간 건가.
논문은 아무도 안 읽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는 찾아서 읽지 않나. 그래서 이야기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매달 진행하는 ‘공감 프로젝트’ 안에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기고, 프로젝트의 결과와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 또한 이야깃거리가 된다. ‘Story On’이라고 하는 것은 이야기가 꺼지지 않게 한다는 것, 즉 켜진 상태로 계속 갈 수 있게 돕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스토리온파운데이션을 소개해달라.
스토리온파운데이션(Story On Foundation)은 당신의 이야기를 지원하는 재단이다. 공감과 나눔을 통해 아시아 평화에 기여하고자 2013년 8월 작은 모임으로 출발하였다. 이를 위해 갈등의 벽을 넘고 소통을 시도하는 프로젝트를 매달 한 건씩 선정하여 100만 원을 지원하고, 기부자와 지원자, 동아시아 시민들이 나눔과 평화의 가치를 공유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우리는 공감과 나눔의 아이디어를 가진 이들이 우리 재단을 통해 그 이야기를 실현하여, 평화를 만드는 시민(Citizen Peacemaker)이 될 것을 기대한다.
아무런 자산 없이 시작했기에 스토리온파운데이션은 사람이 자산이 되어야 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재단 설명회에 사용될 로고와 동영상을 준비했고 우선 10만 원을 후원할 수 있는 핵심이사 10명을 모으는 것이 관건이었다. 신기하게도 우리가 제시하는 방향에 대해 공감해주는 주변 분들의 동참으로 딱 10명이서 시작할 수 있었다.
현재 핵심이사 10명과 소액 후원자인 재정이사 10여 명, 재단 운영 프로세스를 한 번 경험해볼 수 있는 손님이사 2명이 있다.
공감프로젝트 진행 절차에 관해.
현재까지 11번의 공감 프로젝트를 진행하였고, 제12호 공감프로젝트를 모집 중이다. 공감을 만들고 나눔을 실천하기 위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응모할 수 있으며, 파트너사인 동그라미재단의 ‘임팩트 스푼(IMPACT SPOON)‘이라는 소셜공모 플랫폼과 재단 홈페이지에서 신청받고 있다.
스토리온파운데이션은 굉장히 간단하고 공정한 심사 절차를 통해 프로젝트를 선발한다. 자기소개와 프로젝트 소개, 그리고 사진으로 보여줄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지원서로 제출하면 된다. 각각의 지원서를 핵심이사진들이 읽고 서로 토론하는 과정을 거쳐 가장 점수가 높은 3팀을 선발한 후 최종투표로 이번 달의 프로젝트를 결정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바와 맞는 프로젝트인지, 재미가 있고 참신한지, 실행 가능한지에 대해 검토하는 편이다. 그렇게 해서 최종 1팀을 선정하면 나머지 2팀은 다음 달에 재심사를 받을 수 있는 대기 리스트에 자동으로 올라간다.
공감프로젝트가 자유로운 토론과 핵심이사 10명의 1인1표제를 거쳐 선정되는 의사결정 구조를 갖다 보니, 한 번은 공감프로젝트에 지원해보라고 내가 직접 권유했던 선배가 탈락해 미안한 마음에 밥을 산 적도 있다. 지인이 지원한다고 해도 공정한 심사과정을 피해갈 수 없다. 우리 나름대로는 작은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다른 재단과의 차별점은.
우선 기부자(핵심이사) 입장에서는 자신이 낸 기부금을 누구한테 줄 것인지 결정하고 모니터링까지 가능하다는 게 차별점이다. 일반적으로 기부의 경우, 편지 정도의 피드백을 받을 뿐 사람과 가치를 공유 받지 못한다. 더군다나 자신의 바람과 달리 기부금이 모금 단체의 운영비로 쓰이는 경우도 있지 않나.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간단한 절차만으로 신속하게 기부금을 전달받을 수 있다는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프로젝트 진행 시에 재단의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는 조건이나 영수증을 첨부하라는 요구를 과감히 없앴다.
또한, 스토리온파운데이션은 매년 2회씩 네트워킹 파티를 주최하여 프로젝트를 지원하거나 추진한 사람 모두가 네트워킹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이를 통해 그들의 또 다른 프로젝트를 고민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단기적으로는 명동에 위치한 ‘비꼴로’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한 달에 한 번씩 공익 행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데, 그곳과 협력할 방안을 모색 중이다. 내년에는 인디밴드와 함께 싱글 앨범을 발매하여 그 안에 재단이 추구하는 메시지를 담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보스턴에서 시작해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간 어썸파운데이션처럼 서울에서 시작한 스토리온파운데이션이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재단명이 달라도 우리와 같은 일을 하는 재단이라면 환영이다. 지난번 네트워킹 파티 때에 “다음 파티 때에는 일본과 중국에서도 참석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이번 파티 때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1년 넘게 각자의 본업과 병행하면서 조직을 지속해서 운영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 같은데, 원동력이 무엇인가?
‘내가 말하는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핵심이사 10명을 모으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라는 걱정을 한 때가 작년이었다. 서로 다른 배경과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모여서 어떤 친구는 디자인을, 어떤 친구는 기록을 담당하며 재단을 함께 만들어감에 있어 진심으로 감사하다. 쳇바퀴 굴러가듯 사는 일상에 매몰되지 않고 서로의 열정에 힘을 얻고, 서로가 모여 시너지가 나고 있다. 그러면서 이번 달에는 어떤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지원할지 기대도 되고 말이다.
본업과 재단 일을 병행하기가 물론 쉽지는 않지만, 이 조직을 통해 힘을 얻어서 학업도 더 잘하게 되었다. 학교는 현실적인 공간이고 논문 등의 결과물을 내야 하지만, 재단은 이상적인 공간이고 참신한 사람들을 수없이 접하며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100만 원은 적은 돈일 수도 있겠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데에서는 큰돈이 된다는 걸 경험하는 기쁨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끝으로 이건 재단의 공식 질문이기도 한데, “당신에게 ‘나눔과 평화’란?”
누구나 실천할 수 있고, 누구나 실천할 때 그 힘이 더 커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출처원문 : [우리지금만나 1] 이야기 만드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김윤의 이사장
안경은 앱센터 외부필진 /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즐깁니다. 글로 정리해 사람들과 공유할 때 신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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