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의 MIT 글로벌 스타트업 부트캠프에서 내가 배운 6가지
지난 3월 말 서울 디캠프(D.CAMP)와 판교 K-ICT 본투글로벌센터에서 “MIT Global Entrepreneurship Bootcamp”가 열렸다. MIT Global Entrepreneurship Bootcamp는 수 달 수 년이 걸릴 수도 있는 창업의 과정을 6일로 압축해 경험하며 사업계획을 갈고 닦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2년간 미국 보스톤 MIT 캠퍼스에서 진행된 프로그램으로, 보스톤을 벗어나 해외에서 열리기는 이번 서울 개최가 처음이다.
프로그램은 부트캠프(신병훈련소)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한 주 동안 이어지는 프로그램의 강도는 그야말로 무자비하다. 아침 7시부터 매일같이 MIT 교수진의 강의, 국내외 유명 창업자들과의 대화,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투어와 팀단위 멘토링 세션등이 이어지다가, 저녁부터는 본격적으로 팀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새벽 2~3시가 되어서야 하루가 마감된다. 이렇게 되면 요일과 날짜에 대한 감이 사라지고 하루가 이틀 같다가, 나중에는 일주일이 아주 긴 하루처럼 느껴진다. 한 주 동안 이어지는 그 긴 하루의 대미는 VC 앞에서의 데모데이, 그리고 파티와 춤, 먹방과 웃음으로 장식된다.
필자는 운좋게도 총 35개국 74명의 참가자 중 한 명으로 선발되어 일주일을 꼬박 뜬눈으로 지새우며, 팀빌딩에서부터 아이디어 구체화, 피칭에 이르는 과정을 농도깊게 겪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볼 수 있었다. 시간을 접을 수 있다면, 회사를 시작하는 첫 6개월을 꼬깃꼬깃 접어 이 일주일 안에 눌러담은 것과 비슷하달까?
필자는 폴란드, 싱가포르, 인도, 콜럼비아, 시리아로부터 온 다섯 명의 사람들과 함께 팀을 이루어 드림고(DreamGo)라는 커리어 개발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비록 우리가 만든 것은 가상의 회사지만,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내내 교수진과 멘토들의 경험, 인사이트, 노하우가 끊임없이 흘러와 녹아들어와 수많은 갈래길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추측을 현실이라고 비약하는 가운데에서도 방향을 잃는 일 없이 좋은 운까지 만나 3등 수상이라는 좋은 결과를 얻었다. 초기 창업자가 겪는 현실의 압축판과도 같았던 부트캠프에서 경험하고 배운 점들을 몇 가지로 정리해 봤다.
- 함께 일하면 기분 좋은 사람을 팀으로 만나라
어떤 사람과 팀을 만들 것인가? 어떤 사람과 회사를 만들 것인가? 74명의 사람, 74개의 아이디어가 눈을 굴리고 매력을 뿜기 시작한다. 몇 시간 만에 짝이 될 퍼즐을 알아보기 위해 나름의 전략을 총 동원 하기도, 가볍게 움직이며 우연과 직관에 내 맡기기도 한다. 하루도 지나지 않은 짧은 시간에 낯선 이들이 팀이 되는 과정에서 실제 내가 사회적 관계를 맺는 모습이 거울처럼 보이기도 한다.
좋은 멤버를 알아 볼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조언은 ‘함께 일하면 기분 좋은 사람을 만나라’ 이다. 두리뭉실한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스타트업처럼 빠르고 스트레스 강도가 높은 상황에서는 긍정적인 팀 인터랙션이 모두 지치지 않고 일을 진전시킬 수 있는 동력이 되어준다. 팀이 될 사람의 능력과 더불어 타인에 대한 배려나 소통 방식 등 문화적 요소를 감지해보자. 또 나는 과연 함께 일하면 기분 좋은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는 것도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될 것 같다.
- 팀원 각자가 무엇을 잘하고, 어떠한 성향을 갖고 있는지 파악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 팀 내 에너지와 사고의 균형을 잡을 때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어, 과묵하지만 통찰있는 팀원에게 일부러 의견을 묻는다든지, 팀 내 유일하게 관계 중심으로 사고를 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의 의견은 좀 더 비중있게 듣거나 하면, 한쪽으로만 치우치거나 중요한 소수 의견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 잘 알려진 마시멜로우 챌린지와 같은 간단한 활동으로 팀 케미스트리를 느껴볼 수 있다. 활동 후 반드시 회고 질문에 답하며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해야 얻는 것이 크다. 전체 프로세스는 여기를 참고할 수 있고, 검색해도 관련 자료를 많이 찾을 수 있다.
- 팀 에너지 관리는 누구 한사람의 일이 아니다
하루하루가 지나가며 ‘우리 팀은 완벽해요!’ 라고 외치던 얼굴들에 스트레스가 역력해지기 시작했다. 충돌과 논쟁, 좌절이 자정이 넘은 밤 공기를 가득 메우고, 멘토들은 ‘금요일까지는 서로 죽이지 말라’고 조언하기 시작했다. 달로 출발한 로켓들 중 그 누구도 깨끗한 포물선을 그리지 않았다. 우회하고, 정지하고, 필요 없는 부속품을 덜어내고, 로켓을 바꿔 타기도 여러번이다. 그리고 그럴 때 마다 누군가의 마음이 너덜너덜해지고, 에너지가 급격히 떨어진다. 팀의 모두가 스스로와 팀의 에너지 상태를 의식하고, 좋지 않은 에너지에 매몰되지 않도록 정말로 애써야 했다. 누군가가 불편한 관계, 낙담한 마음을 가진다면 그가 회복할 수 있도록 용기내어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가자. 그 용기가 많은 차이를 만든다.
- 아이디어를 완벽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해서 서로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도록 주의한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의 언어와 표현을 사용한다.
- 의견이 대치되거나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는, 잠시 프로젝트에서 떨어진다. 나가서 산책을 하거나 카페에서 가볍고 인간적인 대화를 나눴던 것이 좋았다. 절대 일 얘기를 하지 말자. 인간적 이해와 감정적 본딩(emotional bonding)이 생기면 충돌이나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훨씬 유연하게 겪어나갈 수 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다 사람이니까.
- 아이디어는 내가 아니다. 아이디어에서 ‘나(ego)’를 분리시키자. 건설적 비판을 하고, 동시에 비판을 개인적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연습을 하자.
- 렛잇고(let it go). 너무 집착하지 않을 때 문제가 풀리기도 한다.
- 답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발에서 나온다
질문을 던진다. 나의 첫번째 고객은 누구인가? 그리고 다시 질문을 던져 본다. 그 사람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어디에 존재하고, 어떻게 닿을 수 있나? 내 머리속에서 그려낸 그럴싸한 논리적 환상은 아닌가?
또, 콜드콜(cold call)을 걸 때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하는가? 응답받을 확률이 높은 콜드 이메일은 어떻게 쓰는가? 나의 전화나 이메일이, 첫 운을 떼는 순간 스팸으로 분류되지 않게 하는 바로 그 문장, 바로 그 단어는 무엇인가?
엘리베이터 핏치는 정말로 어떻게 하는가? 프로덕트는 어떠한 맥락에서 사용자와 소통해야 하는가?
- 우리의 생각은 굉장히 자기중심적이고, 일견 그럴싸해 보이는 논리적 환상에 빠지기 쉽다. 행동주의 경제학자들이 말하듯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대개의 경우 비합리적인 동기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비이성적 행동과 선택이 현실이고, 전략적 디테일은 실제로는 오감을 넘어 육감과 맞닿아 있었다. 관련해서는 TED Talk 플레이리스트(Our brains: predictably irrational)를 추천한다.
- 답은 사용자에게 있다. 내가 추측하는 것은 다 오답이라고 가정해도 좋을 정도다. 실제로 프로젝트에 진전을 만들어 낸 순간은 팀이 만들어 낸 추측을 기반으로 실제 사용자와 인터뷰하는 과정에 있었다. 이 생각이 맞는지 갑론을박 하며 시간과 감정 소모를 많이 했는데, 더 자주 거리로 나가서 사용자와 얘기 했어야 했다. ‘Talking to Humans(영문 PDF)’에는 어떻게 좋은 사용자 인터뷰를 할 수 있는지 알려주니 참고해보자.
- 부트캠프의 기본이 되는 책은 Bill Aulet의 ‘MIT 스타트업 바이블(원제: Disciplined Entrepreneurship)’이다.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 플랫폼인 edX 에 MIT에서 운영하는 관련 수업이 있으니 수강해 봐도 좋겠다. 부트캠프 참가자들은 사전에 이 수업을 반드시 수료해야 한다.
Entrepreneurship101: Who is your customer?
Entrepreneurship102: What can you do for your customer?
- 같은 길을 앞서 걸었던 멘토들의 열린 조언
마크 주커버그가 이웃동네 친구같거나, 혹은 너무 먼 얘기처럼 느껴지거나, 어느 쪽이 됐던 건널 수 없는 강이 느껴지기는 마찬가지다.
부트캠프에는 MIT 슬론 경영대학원 출신, 이전 부트캠퍼들 등으로 전문가들이거나 실제 창업 후 3-5년을 견디며 성공적으로 비즈니스를 이끌고 있는 경험자들이 각 팀을 전담 마크하며 경험을 더해준다. 우리 팀은 Ministry of Supply의 CEO Aman Advani, ‘브래들리 타임피스(Bradley Timepiece)로 유명한 Eone Timepiece의 김형수 대표, comiXology의 Director of Product인 Douglas Hwang, OnDemendKorea의 CEO Young J. Cha 가 팀 문제에서부터 사용자, 마켓, 설득의 논리, 제품 개발에서의 고민까지, 피부에 닿는 통찰을 주었다. ThriveHive의 COO Adam Blake는 마침 부트캠프 기간동안 회사가 Propel Business Solutions에 인수되어 관련된 이야기를 한참 함께 나누기도 했다.
- 아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이 어려운 과정을 이미 거쳤던 사람들의 겸손한 조언과 코칭은 비행도 하기 전에 발을 헛디뎌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는 둥지와 같다. 받은 도움을 다시 다음 사람에게 돌려주는 창업가 커뮤니티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도 깨닫는다. 창업팀이 좋은 멘토나 코치를 만나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 어떤 상황에도 정답은 없고,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하는 것도 없다. 여러 사람의 조언에 휘둘리지 않는 것도 지혜이다.
- 자아(ego)를 버리는 방법을 배운다
‘헤이 여러분, 부트캠프를 잘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줄 알아?’
‘한가지만 하면 돼. 에고(ego)를 버리는 거야.’
전 캠프를 통틀어 가장 기대치 않았던 말이 부트캠프 오프닝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말이 가져다준 마음가짐이 6일동안 우리 모두를 감쌌다. 6명의 사람이 ‘팀’이 되려면, 사용자에게서 진짜 인사이트를 얻으려면, 데모데이 결과보다 더 큰 결과를 얻으려면,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안에 있는 아집과 자만심을 인식하고 이를 버리거나 조절할 수 있어야 했다. 74명 모두가 하루에도 수없이 자신의 에고와 마주했을 것이다. 이는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전 부트캠프 기간동안 모두에게 깊이 각인되고, 앞으로의 창업 여정에서도 우리를 계속해서 도와줄 중요한 경험이었다.
- 세계에서 선발된 최고의 사람들, 전세계 MIT 창업가 패밀리가 결성되다
일주일간 창업가들로 주변이 완전히 둘러싸이는 경험은 흔치 않다. 이들이 발산하는 에너지 때문인지, 일주일 동안 피곤함이 당연한데도 힘이 솟구치는 기현상을 만나게 된다. 일주일간 마주쳤던 얼굴들과 나눈 눈빛은 무언의 대화로 남아 표현하기 어려운 유대감을 남겨줬다.
수료식을 마치며 우리는 모두 ‘패밀리’가되었고, 이전 부트캠퍼들과도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대화가 시작되었다. 지금도 메신저 창 5개에서 24시간 끊임없이 정보를 공유하고 수다를 떨며 서로의 일을 돕기 시작하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넓은 바다가 등 뒤를 받쳐주는 것 같은 소속감을 준다. 세계 어느 곳에 가던, 만날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최고를 추구하고, 커뮤니티와 사회에 공헌하려는 창업가들이라는 것은 자극적이고 고무적인 일이다.
그리고 그 후에도 지속되는 일들..
3위를 수상한 우리 팀 드림고(DreamGo)는 바로 MassChallenge에 지원서를 넣었다. 누구도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가능한 도전을 계속하면서 팀워크가 지속되고 있다. 팀 단위로 진행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부트캠퍼 개개인은 3개월동안 계속 MIT와 소통하며 각자의 여정을 계속하고 필요한 도움을 받게 된다. 내가 서있는 자리와 안고 있는 문제가 좀 더 명확해지고, 다음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음 부트캠프는 8월 7일-12일까지 MIT에서 열리고, 지원서 접수는 6월 1일까지이다. 이번에는 선생님들을 위해 Teachers Bootcamp도 함께 열리는데, entrepreneurship 교육에 관심이 있는 인큐베이터들, 액셀러레이터들 혹은 부트캠프를 만들고 진행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유용할 것 같다.
글 : 김자은, Wisdom Peak 공동창업자 / 교육, 건강, 관광을 융합하는 Wisdom Peak의 Co-founder로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사업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개인과 사회의 혁신, 기술과 인간의 조화, 글로벌과 로컬 단위에서 의식적이고 지속 가능한 삶을 디자인 하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