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 취임 30일째. 기자들 앞에 섰다. 부동산 투기를 시장 교란의 원인이라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시중 자금이 비생산적 영역에서 생산적 영역으로 유입되어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복원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
자본은 수익이 높은 곳으로 향한다. 정부가 부동산 투자를 막으면, 돈은 다른 곳을 찾는다. 그 다른 곳이 어디인지 이제 조금씩 보인다.
벤처와 스타트업
모두발언이 명확했다. “수도권 1극 체제를 극복할 국토 균형발전,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기성 기업과 벤처·스타트업이 협력·공생하는 ‘산업 균형발전’으로 ‘모두의 성장’을 이뤄내겠습니다.”
벤처와 스타트업.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 추측이 아니다. 명시적 언급이다. ‘산업 균형발전’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분명한 신호다.
구체적인 계획들이 나왔다. 벤처투자 시장을 연간 40조원 규모로 키우겠다는 공약. 지금이 12조원이니 3배가 넘는다. 100조원 국민펀드도 조성한다. AI 경쟁력을 위해서다.
글로벌 시장의 현실
글로벌 벤처투자 시장은 4,000억 달러다. 약 560조원 규모다. 한국이 목표하는 40조원은 그 7%에 해당한다. 미국이 절반을 차지한다. 중국은 380억 달러로 급감했다. 지정학적 리스크 때문이다.
AI가 글로벌 투자를 주도한다. 생성형 AI, 딥테크, 바이오테크가 트렌드다. 한국의 AI 중심 정책은 이 흐름에 부합한다. 방향은 맞다. 하지만 규모는 다르다.
메가라운드가 시장을 지배한다. 소수 대형 기업에 자금이 쏠린다. 미국 상위 11개 투자 중 9개가 미국 본사다. 그 중 6개가 AI 기업이다. 평균 딜 사이즈가 모든 단계에서 커졌다. 후기 투자는 평균 2억7천만 달러다. 시드 단계도 340만 달러를 넘는다. 한국의 작은 스타트업들에게는 더 어려운 환경이다.
금융시장
금융시장에는 여러 영역이 있다. 주식이 있고 채권이 있다. 펀드가 있고 파생상품이 있다. 벤처투자는 그 중 하나다. 하지만 정부가 이 영역으로 자금을 유도하고 있다.
모태펀드 출자금이 늘어난다. 퇴직연금의 벤처투자가 허용된다. 연기금 출자도 확대된다. 작년 정책자금 2조4천억원. 민간보다 5조7천억원 적었다. 이 격차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코스피 5000시대”를 말했다. 7월 3일 코스피가 3116.27로 마감했다. 연고점이다. 종가 기준 3년 9개월 만에 최고치다. 취임 한 달간 15% 상승했다. 같은 기간 S&P500은 5%, 신흥국 지수는 6.8% 올랐다. 한국이 더 뛰었다.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성과라고 하긴 좀 그렇긴 하지만 잘되어 가는 것은 주식시장이다.” 5000까지는 아직 멀다. 하지만 방향은 정해졌다.
국가의 선택
“AI, 반도체 등 첨단기술 산업, 에너지 고속도로를 비롯한 재생에너지 관련 산업, 그리고 문화 산업에 이르기까지 미래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
국가가 미래를 선택했다. AI와 반도체를 선택했다. 재생에너지와 문화산업도 포함했다. 연구개발비는 한정되어 있다. 어디에 쓸지 정해야 한다. 이제 이 분야들에 더 많이 갈 것이다.
글로벌 트렌드와 일치한다. AI·딥테크·헬스케어가 투자 주도 분야다. 클라이밋테크도 성장한다. 한국이 선택한 길이 세계가 가는 길과 같다. 다만 경쟁이 치열하다.
AI 기업들이 들었다. 희망을 품는다. 모태펀드 출자금이 늘어나고, 퇴직연금 벤처투자가 허용되며, 연기금 출자도 확대된다. 정부 돈이 AI 쪽으로 더 많이 흐르면, 자신들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정부 연구개발비는 주로 대기업과 연구소로 간다. 중소기업까지 내려오는 길은 여전히 멀고 험하다. 모태펀드가 늘어도 심사는 까다롭다.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역설이 있다. 정부 자금이 늘수록 기업의 자립성은 약해질 수 있다. 정책 자금에 의존하는 기업들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낮다. 진짜 혁신은 시장의 냉혹함 속에서 나온다. 정부는 토양을 만들 뿐이다. 기업은 스스로 뿌리내려야 한다.
상법과 자본시장
“자본시장 선진화”를 말했다. 상법 개정안이 취임 이후 7월 3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날 코스피가 1.3% 올라 연고점을 기록했다. 시장이 즉시 반응했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고, 3% 룰을 도입하는 내용이다. 공약의 실현이다.
경제 8단체가 우려를 표했다. “이사의 소송 방어 수단이 마련되지 못했다”고 했다. “투기세력 등의 감사위원 선임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걱정했다. 재계의 아쉬움이 크다.
아이러니가 있다. 주주 권익을 강화하려던 제도가 오히려 경영진을 위축시킬 수 있다. 위험을 회피하는 경영진은 혁신을 기피한다. 신생기업 투자도 줄어들 수 있다. 제도의 의도와 결과가 어긋나는 경우다.
그럼에도 변화는 필요하다. 한국 기업의 저평가는 오래된 숙제다. 투명성이 높아지면 장기적으로는 자본 비용이 낮아진다. 신생기업들도 상장 시 더 좋은 조건을 받을 수 있다. 단기 혼란을 견뎌야 장기 이익이 온다.
5극 3특
지역균형발전을 말했다. “수도권 1극 체제를 극복할 국토 균형발전”이라고 했다. 5극 3특 체제가 그 답이다. 영남, 충청, 호남, 대구경북, 그리고 강원·전북·제주가 각각의 극과 특별구역이 된다.
“소멸 위기 지역을 더 배려하는 것처럼 모든 국가 정책에서 지역을, 지방을 더 배려하겠다”고 했다. 민생 쿠폰도 소멸 위기 지역에 더 준다. 공공기관 2차 이전도 예정되어 있다.
지역에는 여러 산업이 있다. 농업도 있고 제조업도 있다. 관광업도 있고 서비스업도 있다. 기술 산업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각 지역이 특화 산업을 키우면, 그 중에는 신생기업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인재다.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가면 공무원들이 따라간다. 하지만 신생기업에 필요한 것은 개발자, 기획자, 마케터들이다. 이들을 지방으로 끌어내리기는 쉽지 않다. 서울 집값이 비싸다고 대전으로 이사가지는 않는다. 일자리가 있어야 사람이 간다.
실리콘밸리도 처음부터 실리콘밸리는 아니었다. 반도체 산업이 몰리면서 생태계가 형성되었다. 지역 특화가 성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급하게 밀어붙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추경과 외교
취임 후 1호 지시로 비상경제점검TF를 가동했다. 30.5조원 추경안. “역대 어느 정부보다 빠르게”라고 했다. 전 국민 15만원에서 50만원 지원 예정.
G7 정상회의에도 참석했다. “민주주의 복원, 경제 복원, 정상외교 복원을 전 세계에 알렸다”고 했다. 국제무대 복귀 선언. 외교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해외 투자 유치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외국 투자자들이 보는 것은 정상회의 참석이 아니라 숫자다. 매출, 이익, 성장률이다. 정치적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투자하지 않는다. 결국 기업이 실적을 내야 한다.
글로벌 벤처투자에는 리스크가 상존한다. 지정학적 불확실성 7.5%, 사이버보안 위협 6.0%, 밸류에이션 하락 4.0%.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처럼 하루아침에 투자가 급감할 수도 있다.
정책과 현실
정부가 제도를 만들고 자금을 조성한다. 벤처투자 시장을 40조원으로 키운다는 계획. 100조원 국민펀드로 AI 생태계를 만든다는 구상. 돈은 정부가 만든 길로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돈이 원하는 곳까지 도달할지는 다른 문제다. 모태펀드가 늘어도 심사는 까다롭고, 경쟁은 치열하다. 퓨리오사AI 같은 성공 사례가 있지만, 실패하는 기업이 더 많다. 정책과 현실 사이에는 여전히 간격이 있다.
핵심은 시기다. 정부 자금이 시장에 나오는 시점과 기업들이 자금을 필요로 하는 시점이 맞아야 한다. 너무 이르면 거품을 만들고, 너무 늦으면 기회를 놓친다. 지금은 AI 붐이지만, 2년 후에도 그럴지는 모른다. 정책의 속도와 시장의 속도는 다르다.
글로벌 시장도 변화한다. 2025년 초 평균 딜 사이즈가 모든 단계에서 상승했다. 자금 조달 문턱이 높아졌다. 작은 기업들에게는 더 어려운 환경이다.
정책과 시장이 만났다. 상법 개정 발표와 동시에 코스피가 연고점을 기록했다. 우연이 아니다. 시장이 정책을 인정했다. 하지만 지속성은 다른 문제다.
벤처투자자들은 기다린다. 40조원 시장이 현실이 되기를. 100조원 펀드가 조성되기를. 새로운 자금의 흐름이 시작되기를. 그리고 그 기회가 자신들에게 오기를.
정책은 발표되었다. 숫자도 나왔다. 이제 실행이 남았다. 공식적으로 벤처·스타트업을 거명했다. 방향은 분명해졌다. 하지만 의도와 결과는 다를 수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벤처 생태계는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정부의 말은 들었다. 이제 행동을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각자 살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생존의 법칙이다.
변화는 시작되었다. 글로벌 경쟁은 이미 치열하다. 누군가는 살아남을 것이다. 누군가는 사라질 것이다. 이것이 시장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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