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플래텀] 플래텀이 꼽은 6월의 볼 것
디지털 노마드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살아갈 자유) – 도유진 저 | 남해의봄날 | 2017.06.10
‘우리는 무엇 때문에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곳으로 출퇴근하며 직장이 있는 도시에 머물러야만 할까?’
「디지털 노마드」의 도유진 저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야기를 던진다. 이 책이 질문에 대한 유일한 해답은 아니다. 하지만 ‘당연했던 삶의 조건’들이 정말 당연한 것이었는지를 스스로 묻게 하는 한 번의 계기가 된다. 그리고 마비된 삶 속에서 이런 식의 물음은 중요하다. 자신도 모르는 곳으로 가고 있는 삶에 브레이크를 걸어준다는 점에서.
평범한 한국의 직장인이었던 도유진 저자는 홀연 한국을 떠나, 지난 2년간 세계 25개 도시에서 일하며 68명의 디지털 노마드를 인터뷰했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노마드와 원격근무에 대한 세계 최초의 다큐멘터리인 <원웨이 티켓>도 제작했다. 한국에서는 이제 막 ‘디지털 노마드’라는 용어가 대중에게 알려지고 있지만, 저자는 용기를 내 한발 더 나아갔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루고 있는 ‘디지털 노마드의 회색 지대’라는 파트는 이 책을 추천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
‘디지털 노마드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가공해 파는 자’들이 만들어놓은 환상적인 이미지들. 이를 와장창 깨부수는 어두운 현실을 저자는 책에 담았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하는 사람도 당연히 괴로울 때가 많다. 그들이 꾸려나가야 하는 것이 여행이 아니라 삶이기 때문이다. 세금과 비자 문제서부터 좀 더 거시적 차원에서의 신식민주의 논란까지,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이 제시되어 있다.
‘젊은 여성의 고군분투 디지털 노마드 여행기’를 기대했던 독자라면 문체가 좀 건조하다고 느낄 수 있다. 아마 6개월 정도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를 즐기고 돌아온 사람이라면, 그런 말랑말랑하고 드라마 있는 글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2년간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봤고, 현재에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런 책을 펴내게 된다. 앞서 말했듯 ‘여행’이 아닌 ‘삶’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하므로. 책의 뒷부분에는 저자가 직접 방문해 본 도시와 협업 공간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다. 개인 성향별로 추천, 비추천의 이유가 꼼꼼히 적혀 있어 좋은 참고가 된다.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한국어를 잘 이해하고 제대로 표현하는 법) – 저| 유유 | 2014.03.04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은 글을 잘 쓰고 싶어 한다. 하지만 글을 잘 쓰는 것은 어렵다. 더군다나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은 더 어렵다. 외국어를 전공한 이들이 흔히 겪는 어려움이 직역해서는 의미전달이 안 되는 원어 표현을 우리식으로 옮기는 것이다. 기술 서적이라면 각주를 달 수 있겠지만 문학 서적은 각주를 일일이 달아서는 독서의 흐름도 끊기고 글의 맛도 살지 않는다.
한국 사람끼리 한국어로 이야기하는데 뭐가 이리 어려운 거지? 혹시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다면 그건 번역의 문제점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외국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일뿐 아니라, 전문 영역의 용어를 교양 영역의 용어로 옮기는 일, 교양 용어를 일상어로 푸는 일, 어른의 표현을 어린이의 표현으로 설명하는 일, 심지어 여자의 말투를 남자의 말투로 해석하는 일도 번역이다.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는 우리말을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권해줄 만한 책이다. 책 제목에 ‘번역자를 위한다’고 되어 있지만 누구나 읽어두면 좋을 만한 내용을 기술한 책이다. 이 책은 번역자를 위한 전문 서적이나 외국어 실력을 키우는 번역 교재가 아니다. 좋은 글을 판별하고 올바른 한국어 표현을 구사하는 태도를 길러주는 문장 교재다. 특히 기술 문서만 다루다 보니 한국어 어휘 선택이나 문장 감각이 무뎌진 것 같다고 느끼는 이들이나 외국어 구사 능력에 비해 한국어 표현력이 부족하다 여기는 사람들, 이제 막 번역이라는 세계에 발을 디딘 초보 번역자 그리고 원고의 질을 판단해야 하는 편집자라면 눈여겨보자.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저| 이언숙 역| 민음사 | 2015.03.12.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나는 행복한데?’
‘사토리 세대’란 1980~1990년대에 태어나 돈벌이는 물론 출세에도 관심이 없는 젊은이들을 이르는 일본의 용어다. 한국의 ‘삼포 세대’와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다. 85년생의 젊은 사회학자 후리이치 노리토시는 당사자의 시각에서 사토리 세대를 분석한다. 더 정확히는, ‘사토리 세대’를 정의하고 타자화하며 이해하지 못하는 일본 기성세대와 사회를 분석한 글이기도 하다.
거품경제의 불황 등으로 일본 사회에는 젊은 세대를 걱정하는 ‘젊은이론’이 등장했다. 하지만 웬걸, 2011년 국민 생활 만족도 조사에서 20대의 75%가 ‘나는 행복하다’고 답하면서 일본은 충격에 빠졌다.
저자는 이 불행한 나라에서 행복한 젊은이들이 생겨나는 이유를 ‘자신이 이보다 더 행복해질 수는 없다’고 믿을 때 그 사람은 ‘지금 행복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중산층의 꿈이 붕괴된 시절에 태어난 젊은이로써 내다볼 수 있고 욕심낼 수 있는 최선의 미래가 ‘오늘’ 그리고 ‘지금’이라는 것이다. 사토리 세대에게 없는 것은 욕심이 아닌 희망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세상을 바꾸려고 하거나 뭔가를 이루려고 애쓰지 않는 ‘나름의 행복한 삶의 방식’을 찾아 간 것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그것은 개인의 의지박약 문제라기보다는 그들을 이런 희망 없는 사회 속에서 살게 만든 기성세대의 업보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이런데 너희는 왜 행복하냐’는 질책은, 그 세상을 만든 장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 경제적 자취는 다르지만, 일본 사회가 겪고 있는 큰 갈등의 축을 들여다보는 것은 한국의 젊은이 혹은 한국의 기성세대에게도 도움이 될 듯하다. ‘내가 왜 이 모양인지’, ‘내 자식이 왜 이 모양인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해보자는 차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