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케팅은 어떠한 감정을 유발하고 있는가
#프롤로그 : 이모션(Emotion)과 모션(Motion)
‘너의이름은’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에는 열차가 참 많이 등장한다. 특히 ‘너의이름은’에서 주인공의 엇갈리는 감정을 스치듯 지나가는 열차들로 표현한 건, 무척 인상적이다. ‘신카이 마코토’는 열차의 운동과 인간 감정의 흐름을 꾸준히 작품 속에 의식적으로 그려왔다. 주인공의 감정(Emotion)을 기차의 운동(Motion)으로 표현하고 기차의 운동으로 주인공 감정의 변화를 표현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의 복잡한 감정을 복잡한 전철의 움직임이라는 메타포적 활용을 통해 표현했는데 열차의 고속운동(Motion)과 인간 감정흐름(Emotion)의 상관성을 선명한 색채로 풀어낸 것이다. 이모션(Emotion)과 모션(Motion)은 철자도 비슷한데, 어원을 보면 이모션(Emotion)은 일종의 운동(Motion)인데 밖으로(e-, Out) 향하는 운동을 의미한다. 즉, 이모션(Emotion)은 감정이 밖으로 드러나는 운동(Motion)인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모션(Emotion)과 모션(Motion)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상호작용을 한다는 점이다. ‘초속 5센티미터’의 제 1화 벚꽃 이야기에서는 두 주인공 사이에 가로놓인 물리적, 정신적 거리가 폭설로 지연되는 열차로 증폭되는데, 열차의 모션이 인간의 이모션에 영향을 주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실제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감정은 필연적으로 행동을 유발한다는 것을 쉽게 경험할 수 있다. 공포는 ‘도피하라’는 행동을 유발하고, 배고픔은 ‘먹어라’는 충동을 동반한다. 행동은 감정으로부터 온다(motion comes from emotion)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행동과 감정은 긴밀하게 상호작용한다. 그리고 소비자의 행동(구매)을 유도해야 하는 마케터의 입장에서 행동과 감정의 상관성은 분명 고민해볼만한 주제다. 마케팅보다는 심리학이나 철학에 더 어울리는 주제라고 생각하거나, 당연한 이야기로 치부해서 정작 마케터가 놓치기 쉬운 주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감정과 행동의 연관성, 이를 통해 소비자의 감정을 유발하는 것이 마케팅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 탐구해보고자 한다.
#소비자는 의식보다 무의식에 이끌려 행동한다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소비자의 행동 유발에 정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인간이 무엇인가를 소비하는 이유, 인간에 대한 본질적 탐구로 들어가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를 보면, “왜 나는 검은색 자동차가 아닌 하얀색 자동차를 사고 싶어 할까?” “왜 나는 사이다보다 콜라를 먹고 싶어 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의식적으로 내가 선택한다기 보다는 무의식적으로 나도 모르게 내가 좋아하고 행동하는 것임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해보인다. (『호모데우스』에서는 내 자유의지가 아니라 단지 뇌를 구성하는 원자들의 결합, 내 DNA의 화학적 반응의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바지를 입을 때 의식적으로 오른발부터 넣을지 왼발부터 넣을지 고민하지 않고 무의식에 이끌려 행동한다. 방문을 여닫을 때 손잡이를 30도만큼 돌릴지, 40도만큼 돌릴지 고민하지 않는다. 밥 먹을 때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기 위해 의식적인 동선을 짜지 않는다. 심지어 직장으로 출근할 때 스마트폰과 음악에 몸을 맡기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계단을 오르고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최대한 적은 정보로 결정하려는 인간의 성향을 ‘인지적 구두쇠’라고 하는데, 우리가 길거리에서 음식점을 선택할 때 원조를 더 선택하는 이유는 선택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무의식의 영향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은 상당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행동한다. 인간 결정의 95% 이상은 무의식에서 나온다는 인지과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무의식이 나쁜 것은 아니다. 만약, 이런 무의식 없이 의식에 의해서만 행동한다면, 얼마나 순간순간이 피곤하겠는가. 의식하고 고민하여 결정하는 순간들의 연속일 것이다. 무의식은 인간이 더 효율적으로 생활하게 해주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소비할 때, 무의식의 영향력은 더 커진다. 백화점에 가서 처음엔 이것저것 골라보지만, 결국 같은 스타일을 고르게 되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아무리 합리적으로 고르려고 해도, 무의식 속에 이미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있는 것이다. 특정 음식의 냄새에 끌리거나 특정 카페의 의자 촉감이 좋으면, 나도 모르게 그 매장을 다시 찾게 된다. 향수가 좋으면, 이성적인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무의식적으로 내 말초신경이 특정 제품, 브랜드, 사람까지도 끌리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구매는 합리적이라기보다 무의식에 이끌리는 경우가 많다. 다만, 무의식에 이끌려도 우리는 무의식이 아닌 내 의식적인 행동,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무의식의 욕구를 나 스스로가 합리화시키면서 결국 ‘합리화된 행동’이 되는 것일 뿐이다.
#소비자는 감정을 소비한다
감정은 무의식의 영역이다. 의식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감정을 제어할 수 있었다면, 어제 저녁에 헬스장이 아닌 수제맥주집으로 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헬스장을 가서 건강을 챙기는 것보다 시원한 맥주 한잔이 주는 ‘기쁨’, ‘개운함’을 소비할 수밖에 없었다. 수제맥주집을 선택한 것을 온종일 고생한 나를 위한 선물이며 운동은 내일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하면 충분히 오늘 하지 않았던 운동량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럴듯한 이유로 스스로를 합리화시켰다. 결국 필자의 행동을 지배한 건, 이성이 아닌 감정이었다.
인간은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고 착각하지만, 결국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무의식의 영역에서 나 자신도 제어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먹는 행동을 유도하는 것은 ‘배고픔’이라는 감정이다. 감정은 무의식의 영역이며, 제어하기 어렵다. 그래서 마케터는 소비자의 감정을 자극해야 한다.
‘두려움’을 유발하는 금연광고나, ‘측은지심’을 유발하는 기금 유도 광고는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는 대표적인 마케팅이다. 괜히 품절됐거나 사이즈없다고 하면 무리해서라도 구매하게 되는 것도 ‘불안함’이라는 감정이 동요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소비하는 것이다. 신용카드는 인간의 소비를 획기적으로 높여준 아이템인데, 신용카드는 소비자의 ‘부끄러움’의 감정을 잘 해소해준 도구다. 예전에는 외상이 부끄러운 행동이었지만 신용카드가 생기면서 외상은 합리적인 행동이 되었고 소비자는 신용카드를 통해 ‘부끄러움’을 해소하고 구매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감정적 소비를 해왔다. 아이는 이성적 판단 조건을 조합하여 구매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냥 감정에 이끌려, 사고 싶어 사는 것이다. 가장 감정적인 건 어릴 때다. 아이가 사달라고 할 때 부모는 결국 사주셨다. 감정적 소비가 매우 쉬운 것임을 어렸을 때부터 경험했던 것이다.
감정에 영향을 받는 대표적인 소비재로 자동차가 있다. 소비자 중 상당수는 자동차로 ‘자신감’을 구매한다. 자동차는 점점 필수재로 인식되고 있다고는 해도, 사치재로 바라보는 시각이 상당하다. 엠브레인에서 조사한 설문결과를 보면, 자동차를 사회적 지위나 위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비중이 42.9%나 된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주변 시선을 의식하여 자동차를 구매하며,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부를 보여주는 척도로 생각한다. 자동차를 통해 일종의 ‘자신감’을 구매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럭셔리 세단이나 외산 차가 잘 팔리는 이유다.
#인간이 소비하는 세 가지 이유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2부 ‘소비는 감정이다’ 편을 보면, 런던대 펀햄교수는 인간이 소비하는 세 가지 이유로 ‘불안할 때’, ‘우울할 때’, ‘화났을 때’를 들었다. 우선 ‘불안할 때’는 홈쇼핑 소비가 대표적이다. 홈쇼핑에서는 ‘매진임박’이나 ‘오늘만 할인’이라는 등의 각종 미사여구를 강조하며 소비자를 홀린다. 이때 소비자는 매진임박이라는 말에 ‘불안감’을 느끼며 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결국 구매에 이르게 된다. 한때, 고등학교 교복이라 불리었던 노스페이스 바람막이는 사회적으로 무리에서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구매한 것이다. 다른 제품보다 디자인이나 성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사회적 소속감을 추구하는 인간의 불안감이 유발된 것이다.
소비자는 우울할 때 ‘우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소비를 하는데, 일주일 중 항공권 예약이 가장 많은 요일은 보통 월요일이라고 한다. (출처= 인터파크투어) 월요일은 한주가 시작되는 날로 직장인들이 일명 월요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울함이 최고조에 달하는 날이다. 그 우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항공권을 예매하는 것이다.
화났을 때는 ‘홧김비용’이 대표적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트레스를 낮춰야 한다는 생각으로 안 좋은 일을 잊어버리기 위해 즉흥 구매를 하게 된다. 홧김에 치킨을 시키거나 홧김에 택시를 타는 것 등이 적절한 예일 것이다. 스트레스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인 것이다.
그 외에도 시식코너에서 먹어본 사람이 제품 구매확률이 높아진다거나 음식점에 들어가자마자 세팅을 해주면 음식점을 다시 나갈 확률이 낮은 건 소비자가 ‘미안함’이라는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구워주고 세팅해주었기 때문에 ‘미안함’이라는 감정이 생겨 구매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하는 이유는 참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이유가 많다.
‘불안’, ‘우울’, ‘분노’ 등 부정적 감정을 느낄 때 인간은 ‘상실감’을 느끼며, 상실감이 크기 때문에 그 빈자리를 채우려는 욕구가 생긴다. 그래서 긍정적 감정보다 부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게 오히려 소비를 유도하기 쉬울 수 있는 것이다. 홈쇼핑이 ‘불안함’을, 시식코너가 ‘미안함’을 유발한 것처럼 적절하게 감정을 자극하여 행동을 유도해야 한다.
물론, 부정적 감정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언급했지만, 긍정적 감정 유발은 가장 기본적으로 소비를 촉진하는 방법이다. 제품을 알아보기 위해 매장에 들어갔다가 매장 직원의 칭찬에 구매까지 하고 나온 경험이 있을 것이다. 칭찬은 무의식적으로 소비자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고, 그 ‘좋은’ 감정이 행동까지 유발하곤 한다. 놀이공원에서 신나는 음악과 화려한 조명 덕분에 더 ‘신나서’ 소비를 하게 된다거나, 구매하면 일정 금액이 기부되는 것을 통해 ‘뭉클한’, ‘흐뭇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 등 소비자에게 긍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것은 마케팅에서 필수다.
#마케팅을 통해 감정을 유발하라
<보이지 않는 영향력> <컨테이저스 전략적 입소문>의 저자 조나버거 와튼스쿨 교수는 감정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실험을 했는데, 실험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A그룹은 굉장히 즐겁거나 슬픈, 감정을 자극하는 동영상을 시청하고, B그룹은 그렇지 않은 동영상을 시청하도록 했다. 이후 두 그룹 모두 동영상과 관련 없는 중립적인 기사를 읽도록 한 후 이 기사를 친구나 가족, 혹은 동료와 얼마나 공유하고 싶어지는지를 물었다. 실험 결과, 감정을 자극받은 그룹에서 이후에 읽은 중립적인 기사를 타인들과 공유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점이 발견됐다. 감정 자극이 디지털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행동인 ‘공유’의 욕구를 활성화해주는 셈이다.
소비자의 행동 유발에 감정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마케터는 소비자의 감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우리 브랜드나 제품에 필요한 감정을 적절하게 유발할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가 이미 우리 브랜드나 제품에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있고 그 감정이 부정적이라면, 이를 긍정적으로 이끌어 줄 감정을 유발해야 한다.
마케팅을 통해 적절하게 감정을 유발한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하면,
- 1. 오로나민C는 에너지 드링크 시장에서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3년 만에 판매량이 120% 증가할 만큼 엄청난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에는 전현무가 모델로 유명한 광고의 영향이 컸다. 오로나민C는 굉장히 활기차고 신나는 감정이 느껴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춤을 추던 전현무의 공이 컸다) 브랜드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활기찬’ ‘신나는’ 감정을 제공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인데, 10~20대 젊은 층을 공략하여 박카스, 비타500의 기존 2강 체제를 허물고 있다.
- 2. 햇반은 출시 초기에 ‘편리한 밥’이라고 제품을 소구했다. 이때 주부들이 즉석 밥을 해주면서 인스턴트를 해준다는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을 발견했고, ‘밥보다 더 맛있는 밥’이라는 메시지 수정을 통해 주부들의 죄책감을 해소해주고 ‘흐뭇함’ ‘만족감’의 감정을 유발하였고 결과는 연평균 40% 이상의 신장세를 보이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소비자의 감정을 잘 이해했던 것이 성공의 핵심이었다.
- 3. 이니스프리는 매장 방문 시 항상 직원들이 따라붙어 소비자가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혼자볼게요 바구니’를 매장 입구에 배치했다. 입구에서부터 소비자는 ‘부담감’ 없이 편안하게 매장을 둘러볼 수 있게 되었고, 자유롭게 원하는 걸 담아 매출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주었다.
- 4. 작년 11월, 대대적인 광고로 한국 게이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던 포트나이트의 광고를 기억하는가. “포린이들(포트나이트+어린이)” “한국인이랑 할 때가 완전 쉬워” “1000억의 대회상금 중에서 한국인이 가져갈 수 있는 상금은 0원” 등 세계적인 배우 크리스 프랫을 모델로 한국 게이머들을 도발하는 광고로 국내 게임 부동의 1위 리그오브레전드보다 더 높은 검색량을 보이며 화제 몰이에 성공했다. 포트나이트는 광고를 통해 소비자에게 ‘약이 오르는’ ‘분노’의 감정을 유발했고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 5. 최근 트렌디한 교통수단으로 소비자들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는 ‘타다’ 서비스는 일부 택시에서 느꼈던 ‘불안함’ ‘불쾌함’ 등의 감정을 해소해주는 ‘편안한’ 서비스다. 차량이 미니밴인 카니발이기 때문에 승차감이 안락하며, 항상 깨끗하게 실내를 유지한다. 와이파이나 스마트폰 충전도 가능하다. 또한 승차거부 걱정 없이 바로 배차가 되다 보니 편안한 마음으로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일반 택시보다 약간 비싼편이지만, 재탑승 비율이 80%대에 육박할만큼 소비자의 호평을 받는 건 소비자에게 ‘편안함’이라는 교통수단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했던 감정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마케팅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소비자의 어떤 감정을 유발할지 항상 고민해야 한다. 배고픔? 통쾌함? 슬픔? 편안함? 수없이 다양한 감정 중에서 마케팅 목표를 실현할 수 있게 해 줄 감정을 찾아야 한다. 그 감정이 느껴질 수 있도록 제품, 서비스를 적용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의 행동을 얻을 수 있다.
마케팅을 통해, 당신이 유발하고 싶은 감정은 무엇인가?
글 : 이성길 / 현재 광고회사 이노션에 재직 중인 광고기획자이며, 인문학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