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 신냉전 그리고 위대한 환상
팝 가수 ‘스팅’의 1985년 곡 ‘러시안(Russians)’은 미·소 냉전시대와 관련한 내용을 담은 웅장한 곡이다. 직설적이면서 함의를 담은 이 노래의 후렴구는 그 시대의 무지와 광기를 표현한다.
We share the same biology
우리는 같은 생활을 공유하고 있어
Regardless of ideology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What might save us, me, and you
우리를, 나를 , 그리고 너를 구원하는 것은
Is that the Russians love their children too
아마 러시아인들도 그들의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일 거야.
이 노래가 발표되던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소 양극체제하에서 사회주의진영과 자본주의진영 간 정치 ·외교 ·이념상의 갈등은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근래 미국과 중국 사이에 발생 중인 무역전쟁은 과거 미소 냉전에 빗대어 ‘신냉전’이라고도 불리우고 있다.
몇주 전 미국 클레트 윌럼스 전 백악관 무역자문위원은 CNBC 인터뷰에서 “현재 미국과 중국 간 긴장이 상당히 고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국민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알지만, 이러한 상황은 신냉전의 시작이고 우리가 조심하지 않는다면 상황은 훨씬 더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외 강경론자로 알려진 로버트 카플란 미국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지난해 외교지 포린폴리시에 “새로운 냉전이 시작되었다”라는 제목의 기고를 하기도 했다.
클레트 윌럼스는 정책 결정을 하는 위치에 있지 않고, 로버트 카플란은 정부 관료가 아니기에 두 사람이 미국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 학계와 정책계 전반에서 중국을 과거 소련과 같이 자국을 위협하는 ‘적’으로 분류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부분이라면, 과거 소련과의 경쟁이 군사력에 방점이 있었다면, 중국과는 경제적인 부분에서 마찰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미국의 경제 상황이 어렵게 된 배경에는 미국 은행 정책과 규제 정책에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재 미국 정부는 정책이 초래한 경제 문제를 중국 탓으로 돌리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 경제가 과거 미국과 소련처럼 완전히 분리되어 적대적으로 돌변한다면, 양문 갈등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피터슨 세계경제 연구소와 중국금융 40포럼이 2017년 공동 발표한 연구보고서는 ‘미중 무역 갈등은 양국 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경고했다. 가까운 국가와만 무역을 해야 하는 중력모델 경제로 회귀된다면 어떻게 될까. 지난 20년 동안 구축되어 온 기술, 산업, 생산 네트워크가 붕괴된다면 재구축되는데 소모되는 시간과 비용은 예측조차 할 수 없다.
사실 과거 냉전시대와 같은 정세로 회귀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냉전 기간 동안 미국과 소련은 문화적, 경제적, 개인적 접촉이 거의 없었지만, 미국과 중국은 현재 강한 경제적 연관성, 문화적 유대관계, 민간 우호 관계를 밀접하게 맺고 있기 때문이다.
체제는 다르지만,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 전략적인 부분에서 공통점이 많다. 현재 둘 다 코로나19가 초래한 악영향을 타파하기 위해 최선의 방법을 찾고있고, 경제 활성화를 통해 자국 빈곤 감소가 당면 과제이다. 그리고 둘 다 자국 경제를 위해 아시아의 안정을 바란다.
하지만 낙관적으로만 볼 수도 없다. 1909년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 노먼 에인절(영국)의 저서 ‘위대한 환상(The Great Illusion)’은 전쟁이 없는 세상을 이야기한다. 그는 유럽이 전쟁을 할 수 없는 배경으로 전쟁의 경제적 비용이 너무 커서 아무도 시작하지 못할 것이라 예견했다. 또 혼인과 혈연으로 뭉친 유럽의 왕가들이 싸울 이유도 없다고 명시했다. 책에서 노먼 에인절은 2차 산업혁명으로 세계가 경제적으로 통합되고 상호 의존도가 높아짐으로써 산업국가간 전쟁은 얻는 것은 없고 잃는 것만 커졌기 때문에 일어날 이유가 없어졌다는 논리를 펼쳤다.
하지만 이 주장은 위대하지 않은 환상으로 그쳤다. 20세기 초 영국과 독일은 문화와 경제의 유대가 많았음에도, 비참한 전쟁을 시작했고 세계 대전으로 번졌다. 그리고 산업혁명 이후 물질적 풍요가 예상되던 세계는 경제 대공황이라는 아노미에 빠졌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