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사 시작 2시간 전부터 줄이 늘어섰다. 5천 명이 몰린 타이베이 뮤직센터는 콘서트장 분위기였다. 폭스콘, ASUS, TSMC, SK하이닉스 경영진도 보였다.
무대에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나타난 젠슨 황을 향해 수천 개의 시선이 집중됐다. 미중 갈등 속에서 아시아 최대 규모의 기술 행사가 된 컴퓨텍스 2025 (COMPUTEX 2025). 대만 출신의 이 남자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AI는 실리콘부터 소프트웨어까지 컴퓨팅의 모든 계층을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젠슨 황의 ‘귀향’이었다. 그리고 AI 시대 패권을 선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황은 30년 넘게 대만과 파트너십을 이어온 NVIDIA가 이제 필수적인 인프라 기업이 됐다고 말했다. 칩 회사에서 시작해 CUDA 플랫폼을 만들고, 이제는 기술 스택 전체를 재설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센터는 더 이상 단순한 서버 묶음이 아니라 에너지를 ‘토큰’으로 바꾸는 거대한 컴퓨터가 됐다. 전기나 인터넷처럼 필수 인프라가 될 수조 달러 규모의 새로운 산업이 열리고 있다는 얘기다.
“데이터센터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할 시점이 왔습니다.” 황이 가장 강조한 것은 ‘AI 팩토리’ 개념이었다. 기업 데이터가 지식으로, 다시 제품과 운영 인텔리전스로 이어지는 새로운 형태의 공장이라는 것이다.
첫 번째 카드는 GB300이었다. 이전 세대보다 1.5배 빠른 추론 성능, 2배의 네트워킹 성능을 자랑하는 차세대 AI 하드웨어다. 단일 노드가 2018년 슈퍼컴퓨터 전체 성능을 뛰어넘는다고 했다. 엔지니어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진짜 반전은 NVLink Fusion 발표였다. NVIDIA가 꽁꽁 싸매던 기술을 마벨, 미디어텍, 퀄컴, 후지쯔 같은 경쟁자들에게 열어준다는 것이다. 애플이 iOS를 삼성에게 공개하는 것과 비슷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황의 계산이 있을 것이다. NVIDIA 중심의 생태계를 키우면서도 핵심은 자신들이 쥐겠다는.
황은 AI 발전 단계를 설명했다. 지각 AI, 생성 AI를 넘어 이제는 추론 능력을 갖춘 ‘에이전트 AI’ 시대다. 다음은 물리 법칙을 이해하는 ‘물리 AI’다. CUDA X 라이브러리는 이미 그래픽을 넘어 5G/6G 통신, 유전체학, 의료 영상, 날씨 예측, 양자 컴퓨팅까지 바꾸고 있다.
놀라운 예측이 나왔다. 1조 매개변수 초대형 AI 모델을 개인용 기기에서 돌릴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DGX Station은 벽 콘센트 하나로 1조 개 매개변수 모델을 돌린다. 상상할 수 없던 컴퓨팅 파워가 책상 위로 올라온다.
기업용으로는 RTX Pro Enterprise 서버와 NVIDIA AI Data Platform(IQ)를 내놨다. Vast, Dell, IBM이 이미 통합하고 있고, Crowdstrike, Dataiku, DataRobot과도 손잡았다. NVIDIA는 이제 모든 것을 만들고 있었다.
로봇 얘기부터는 SF 영화 같았다. Omniverse와 Newton으로 시뮬레이션 환경을 만들고, Cosmos와 Groot Dreams로 학습시키고, Jetson Thor와 Isaac OS로 로봇을 움직인다. Groot Dreams는 인간 시연을 AI로 증폭시켜 로봇 학습 데이터 부족을 해결한다. 딥마인드, 디즈니와 만든 ‘뉴턴’ 물리 엔진은 로봇이 현실을 더 잘 이해하게 해준다.
TSMC, 폭스콘, 위스트론이 NVIDIA Omniverse로 디지털 트윈을 만들고 있다. 가상 공장에서 실제 공장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더 놀라운 건 황이 대만용 첫 대형 AI 슈퍼컴퓨터 구축과 베이토우 지역에 미국 본사급 R&D 허브 설립을 발표한 것이다.
“대만은 인공지능과 로보틱스가 탄생하고 퍼져나갈 진원지입니다.” 단순 생산기지에서 AI 중심국으로의 도약을 선언한 것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글로벌 파트너십까지 아우르는 ‘풀스택’ 전략이었다. 황은 인류가 “새로운 산업 전체”를 만들고 있는 전례 없는 기회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연설이 끝나고도 사람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않았다. 복도에서는 오늘 발표에 대한 흥분과 걱정이 뒤섞인 대화들이 이어졌다. NVIDIA 주가는 이미 천정부지고, 젠슨 황은 기술업계의 록스타가 됐다.
하지만 진짜 질문은 이거다. 이 모든 기술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30년 파트너십을 강조하며 대만을 “AI와 로보틱스의 진원지”라고 부른 황. 하지만 지정학적 긴장 속에서 대만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무대 위의 남자는 확신에 차 있었지만, 무대 아래의 우리는 미지의 영역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것이 타이베이에서 목격한 2025년 5월의 풍경이었다. 5천 명이 몰린 이 자리에서 우리는 미래 그 자체를 봤는지도 모른다.
젠슨 황의 쇼는 끝났지만, AI가 만들어갈 미래는 이제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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