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 업무를 이메일 확인부터 시작한다. 평일 업무를 준비하는 일상이 여느 날과 다르지 않지만, 시야가 막힌 도심숲이 아니라 거침없이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 제주도다.
수년 전부터 ‘디지털 노마드’, ‘리모트워크’가 회자되었지만 일반 직장인이 타지역에서 일을 한다는 건 그림의 떡이었다. 하지만 근래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미래의 업무 방식이 아닌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지역, 심지어 해외에서도 일을 하는 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기업들도 자의반타의반 이전보다는 열린 태도다. 그간 자택만 가능했던 재택근무 규정을 완화해 업무와 성과를 책임 있게 자율관리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장소 제약 없이 유연하게 선택 할 수 있도록 하는 곳도 등장하고 있다. 한 달 이상 단위로 기간을 설정해 제주, 강릉 등 다른 지역에서도 근무 가능하며 추후 코로나 종식 상황을 고려해 해외에서의 근무 가능 여부도 검토되고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리모트워크를 하고 있는 근로자들의 생산성이 그렇지 않은 근로자들 대비 66% 더 생산적이라고 한다. 업종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성과가 더 나오는 업무 방식을 기업이 막을 이유는 없다. 과거 원격근무를 시행하다 폐지한 기업들도 있지만 코로나 국면이 회사 기조에 변화를 줬다.
이색적인 장소에서의 환경적 일탈은 매력적이긴 하지만 제약이 있다. 회사의 공식 업무인 출장이 아니라면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는 것은 길면 길 수록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든다. 게다가 매 끼니도 집에 있을 때보다 더 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짧은 기간 근무와 휴식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워케이션’(Worcation, 일(Work)과 휴가(Vacation)의 합성어)이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제주나 강원 등 휴가지에서의 업무도 정상 업무 범주에 두는 것이다.
기자는 7박 8일 일정으로 제주에 왔다. 수요일(6월 23일) 김포공항을 출발해 7일간 현지에서 머무른 뒤 그 다음주 수요일 오후(6월 30일)에 돌아오는 일정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가족을 두고 일주일간 이런 호사를 누리는 건 쉽지 않다. 기자의 가족 중 한 사람이 제주 도심에서 일주일 간 강의 일정이 잡혀 겸사겸사 온 가족이 함께 했다.

김포에서 오후 5시 비행기로 출발해 6시쯤 제주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파란색 도로선을 따라가니 해안도로 밖 바다가 펼쳐지고 있었다. 해안선 곳곳에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일몰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는 모습도 보인다. 도착한 숙소는 더블 침대가 두 개 배치된 23평형 오션뷰 리조트. 한 달 전인 5월 22일 경 예약했다.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가 테이블과 의자, 바비큐 장비가 구비된 테라스로 나가니 거침없는 주변 풍경이 눈을 시원하게 만든다.

다음 날 일출 감상과 아침 식사를 마치고 업무를 위해 도보 10분 거리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지역 카페보다는 프렌차이즈 카페가 일하기는 편하다. 다소 오래 앉아있어도 부담이 적고 내외견도 이색적이다. 리모트워커 대상 코워킹스페이스도 체류 기간 동선에 넣어놨다. 오전 업무를 마친 뒤 점심을 먹으러 가까운 인근 식당으로 갔다. 맛집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도심에 비해서는 이색적이다. 아스파트 지열이 아닌 바다 바람을 맞으며 제주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이번 워케이션은 가족 세 명이 함께했고 숙박비는 7박 약 90만원 수준. 비행기 값은 왕복 24만 원(대한항공) 정도가 소요됐다. 사실 그리 저렴한 가격에 워케이션 플랜을 짠 건 아니다. 더 나은 숙소도 찾을 수 있었지만, 가족의 출퇴근을 감안하고 오랜만의 가족여행이라는 것이 심리적 가성비 추구 욕구를 잦아들게 했다. 제주 도심에서 업무를 해야하는 가족 여건상 상대적으로 관광지가 적은 제주 북쪽에 숙소를 잡았다. 하지만 동쪽이든 서쪽이든 간에 바다는 광활하다. 혼자 움직였다면 절반 이하의 가격으로 주변 여건이 더 제주스런 곳에 체류가 가능했을거다. 예약한 객실은 리조트에서 가장 비싼 가격이었음에도 한달 전 기자가 예약한 이후 하루 뒤에 마감이 되었다. 현재 이 리조트의 대부분 객실은 매진 상태다.
제주에는 워케이션 근무자를 겨냥한 다양한 상품이 출시돼 있다. 최대 89% 할인가로 호텔을 이용할 수 있는 ‘호캉스’ 기획 상품도 있고, 풀빌라를 최대 77% 할인 판매하는 상품도 있다. 에어비앤비를 비롯해 리브애니웨어와 미스터멘션 같이 한 달 살기 숙소를 전문적으로 매칭하는 서비스도 있고 스테이폴리오처럼 지역 특색에 맞춰 큐레이션해 거처를 매칭해주는 플랫폼도 있다. 이도저도 귀찮으면 여행객이 자신의 취향과 상황에 맞추어 여행을 주문하면 전문가들이 맞춤화된 일정과 예약을 도와주는 큐레이션 플랫폼도 있다.
환경만으로도 충분한 휴양이지만 숙소에만 머무를 순 없다. 하지만 디테일한 여행 기획은 적성에 잘 안 맞는다. 그렇다고 걱정하진 않았다. 여행에 특화된 스타트업 서비스는 차고 넘친다. 마이리얼트립과 와그, 프립 등 여행 관련 앱을 뒤지며 액티비티 상품과 가족 스냅 사진 예약, 여행 가이드 등을 예약했다. 널리 알려진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일정은 지양하고 싶어 가이드라이브를 통한 뮤지엄 투어도 예약했다. 맛집도 새삼 리스트업했다. 리뷰를 읽어가며 검증하는 성실함을 지양하고 여러 셀럽이 추천한 맛집을 이동 동선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나열해서 선택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저 휴가지로 근무 환경만 바꾼건 아니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제주 유망 스타트업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제주 스타트업 생태계 현장도 스텔스 모드로 견학한다. 일이 병행되는 일정이지만 렌터카는 빌리지 않았다. 카카오 택시도 호출을 하면 바로 잡히고 로카와 같이 사전 확정 요금 기반 택시예약 플랫폼도 최근에 등장했다. 촉박한 약속도 없고 정적인 가족 성향상 여기저기 찾아 다닐 일도 없기에 뚜벅이로도 충분하다.
리모트워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선 나와 회사가 디지털 소통에 익숙해야 한다. 다행스러운 건 모바일 근무와 협업툴 사용은 지금 회사에선 일상이다. 몸이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최고의 근태는 결과물이다. 그리고 회사는 내가 있든 없든 간에 잘 돌아간다.
업무적으로 서울에서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주변이 바뀌어서 가능해진 것도 있다. 스타트업 전문 매체 기자가 제주 도착 하루만에 이런 기사를 쓰게 된 거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