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와 결혼한 여자 3호 ver.0
안녕하세요. 개발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3호입니다. 12월 한정으로 한다더니 왜 1월에도 하냐고요? ‘개발자와 연애하기 힘들어요.’라는 제보가 너무 많이 와서입니다. 개발자와 연애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답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개친연을 더 연재할 계획입니다.
개발자 남자친구와 헤어져도 개친연은 계속되죠. 아무튼 개친연 3호 카와이이하게 시작할게요.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간단한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여자 3호: 안녕하세요. 저는 게임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기획자고요. 제 남편은 게임회사 개발자입니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개발자 부부 다음으로 귀하다는 기획자-개발자 부부시군요!
레어템이다!
신림동 캐리: 남편분은 언제, 어디서 만났셨어요?
여자 3호: 회사 직원분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어요.
신림동 캐리: 그럼 처음부터 개발자라는 건 알고 만나셨겠네요.
여자 3호: 네, 주선자를 통해 기본적인 정보는 다 듣고 만났어요.
신림동 캐리: 소개팅은 어땠나요?
여자 3호: 일단 대화가 잘 통해서 좋았어요. 아무래도 같은 업계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처음 만나도 공통의 화젯거리가 많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죠. 제 주변에선 IT업계에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해도 잘 모르거든요.
신림동 캐리: 소개팅은 남자가 말하고 여자는 웃으면서 ‘아, 그러시구나.’라거나 ‘정말 대단하세요.’라고 맞장구 쳐줘야 잘 된다던데….
역시 될 사람은 어떻게 해도 잘 되는 겁니다.
여자 3호: 그리고 저희 집 공돌이는 일반적인 개발자와 좀 달랐어요. 제가 예전부터 ‘내 이상형은 감성적인 공돌이야!’라고 말하고 다녔는데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은 ‘니가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라거나 ‘넌 안될 거야. 아마….’하고 비웃곤 했어요.
신림동 캐리: 맞아요! 저도 수학 잘하는 남자가 이상형이라고 하면 미친 여자 취급 받아요!
여자 3호: 이과남이 얼마나 매력적인데!
여자 3호: 아무튼 근데 이 소개팅에 나온 개발자가 여느 공돌이들이랑은 좀 다른 거예요. 일단 헐렁한 체크 남방이 아니라 몸매가 드러나는 흰 티셔츠를 입었고요.
신림동 캐리: 그래, 체크 남방 입지 마!
여자 3호: 바람막이 등산복이 아니라 캐주얼한 재킷을 입고 나왔죠.
신림동 캐리: 전 바람막이랑 백팩 조합 되게 좋아하는데….
여자 3호: 전 싫어해요. 아무튼 그래서 스타일에선 일단 합격점이었죠. 게다가 인디 음악을 즐겨듣고 이소라를 좋아한다는 감수성 넘치는 부분에 가산점!
신림동 캐리: 실제로 즐겨 듣는 음악이 Baba Yetu라고 해도 소개팅 나가선 제프 베넷이나 어반 자카파라고 해야죠.
여자 3호: 무엇보다도 맘에 들었던 건 그동안 너무 일만 하고 살았다며 앞으로 일은 적당히 하고 인생을 즐기면서 살겠다는 선언이었죠. 제가 그 말에 속아서 만났는데….
신림동 캐리: 그런 말 믿으면 안 돼요! 개발자들은 기본적으로 다 워커 홀릭에 매저키스트예요! 힘들다 힘들다 앓는 소리 하면서 버그 해결하면 막 코르가즘 느끼고!
아, 너무 격분했네요. 릴렉스하겠습니다.
여자 3호: 그렇게 소개팅으로 시작해 몇 번 만나다 보니 공돌이답잖게 애교도 많고 센스도 있었어요.
신림동 캐리: 공돌이가 애교와 센스를 갖췄다니 흔치 않은 능력치네요.
여자 3호: 연애 초기의 일인데요. 토요일 아침에 영화를 보기로 했어요. 영화관 앞 지하철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이 남자가 조금 늦는 거예요. 약간 괘씸했죠. 근데 멀리서 걸어오는 남자의 손에 커피가 들려 있었어요. 아침이라 모닝커피를 샀는데 뭘 좋아할지 몰라서 두 개를 샀다고, 아메리카노랑 카푸치노 둘 중에 고르라는 거예요. 사실은 일찍 나왔는데 커피를 미리 사놓으면 식을까 시간 맞춰 사느라 늦었다고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하고요. 그때 완전히 감동 받았죠. 이 남자는 내가 찾던 감성적인 공돌이다!
신림동 캐리: 저까지 막 눈물 나려고 그래요. 거기 티슈 좀 뽑아주세요.
여자 3호: 하지만 그 날 이후로 그런 센스는 찾을 수가 없었죠…. 인제 와서 그 센스 어디 갔냐고 물으면 그때 다 넘쳐서 없어졌다고….
신림동 캐리: 개발자와 연애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게 있으신가요?
여자 3호: 저희 집 공돌이는 일하면 연락이 잘 안 돼요.
신림동 캐리: 개발자가 그렇죠.
여자 3호: 연애 초기엔 문자에 재깍 재깍 답장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제가 10개 보내면 1~2개 답장하더라고요. 여러 개 보내면 한꺼 번에 건성으로 읽고 몇 개는 빼먹고 읽어서 몇 개는 답이 없기도 하고요. 처음엔 ‘뭔가 바쁜 일이 있겠지.’하고 넘어갔는데, 그런 바쁜 일이 몇 달째 계속되는 거예요.
신림동 캐리: 인생은 짧고 코딩은 기니까요.
여자 3호: 여자는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죠. 혹시 다른 여자와 있는 거 아닌가, 나에 대한 마음이 식은 게 아닌가 그런 거요. 근데 또 전화하면 받아요. 정신없이 일하면서 건성으로 받죠.
신림동 캐리: 아무래도 코딩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이죠.
여자 3호: 일 끝나면 제정신이 돌아와서 막 애정표현을 해요.
신림동 캐리: 맞아요. 개발자는 일할 때와 일을 안 할 때의 스위치 온오프가 확실한 직업 같아요. 그런 게 매력적이기도 하고요.
여자 3호: 한 번은 기념일이었는데 서버에 문제가 생겼어요. 그것도 새벽에요. 언제 복구가 될지 몰라서 그날 일정 다 취소하고 저는 하염없이 기다렸죠. 밤까지 해결이 안 되는 거에요. 밥도 못 먹고 일하는 것 같길래 제가 먹을 것을 사서 회사에 갖다 주고 왔어요. 화가 나다가도 그런 모습을 보면 안쓰럽고 불쌍하고 그래요. 힘들 텐데 나까지 괴롭히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으로 참는 거죠.
신림동 캐리: 개발자가 원하는 이상적인 아내시네요. 저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게 됩니다.
여자 3호: 저도 그래서 맨날 남편한테 ‘나 같은 여자가 세상에 어딨어? 응?’하고 수시로 교육하고 있어요.
신림동 캐리: 저도 개발자와 사귈 때 그렇게 ‘나 같은 여자는 없다. 넌 날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이다.’라고 무한히 세뇌하곤 했죠. 그러면 조용히 하라더군요.
여자 3호: 근데 개발자 남자는 왜 그런 거 싫어하죠?
신림동 캐리: 그러게요. 저도 자꾸 그러니까 답정너 같다고 하더라고요. ‘다 아니까 굳이 말 안 해도 된다.’라면서요.
신림동 캐리: 남편분께서 공대 농담을 하시나요?
여자 3호: 저희 집 공돌이는 공대 농담을 거의 안 해요. 근데 공대 농담만 안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말을 잘 안 해요. 주로 저 혼자 떠들죠. 어떤 때는 벽에다 대고 얘기하고 있는 느낌도 들어요. 뭘 물어봐도 거의 단답형으로 대답하거나 모른다고 답하죠.
신림동 캐리: 맞아요! 뭘 물어봐도 반 이상의 대답이 ‘몰라.’예요. 그래서 왜 그렇게 성의 없게 대답하냐고 하면 모르겠는데 어쩌라고 그래요.
여자 3호: 제 남편도 제가 하는 질문에 80%는 ‘몰라.’예요.
신림동 캐리: 그럼 어떻게 하세요?
여자 3호: 그래서 그냥 제 맘대로 해요. 제 마음대로 집 꾸미고, 물건 사고, 메뉴 고르고, 여행 장소 정해요.
신림동 캐리: 아, 그런 해결 방법이 있구나….
여자 3호: 결혼생활에 대한 모든 걸 거의 제 맘대로 할 수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얘기하면 대부분 그러라고 해요.
신림동 캐리: 그럼 남편이 개발자라 좋은 점은요?
여자 3호: 제가 기획자라 업무 관련된 것을 남편에게 많이 물어봐요. 이런 기능은 구현이 가능하냐, 이런 건 구현이 어떻게 되는 거냐, 난이도가 어느 정도냐 그런 거요. 그런 걸 알고 있으면 개발자와 협업할 때 무척 도움이 되거든요.
신림동 캐리: 다른 남편과 개발자 남편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여자 3호: 한집에 살지만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기 힘든 날이 많아요. 제가 잘 때 남편이 퇴근해서 들어오고 제가 출근할 때는 남편이 자고 있거든요.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늦게까지 일하고 가끔은 외박도 하고요.
신림동 캐리: 아까 소개팅할 때 남편분이 적당히 일하고 즐기며 살겠다고 하셨다지 않았어요?
여자 3호: 네, 그 말을 믿은 제가 바보였어요….
신림동 캐리: 그래도 연애할 때보다는 결혼하고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지 않나요? 아무래도 한집에 사니까요.
여자 3호: 그쵸. 그래도 요새는 12시 전에 들어와 집에서 일해요. 저희 집 공돌이가 침대에서 노트북으로 코딩하고 있으면 전 남편 팔뚝에 기대어 키보드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듭니다.
신림동 캐리: BGM으로 ‘섬집 아기’를 깔아줘야 할 것 같네요. 남편이 서버에 버그 따러 가면 아내는 홀로 남아 집을 보다가….
신림동 캐리: 부모님 세대에선 개발자라는 직업이 생소할 텐데 친정에선 사위가 개발자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혹은 업무를 이해하시나요?
여자 3호: 저희 부모님은 개발자가 뭐 하는 직업인지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저희 집 공돌이는 모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는데 처음에 결혼한다 했을 때 저희 아빠가 사업하는 놈이라며 불안해하셨어요. 그리고 지금도 사위 만나면 맨날 주식 이야기만 하세요.
신림동 캐리: 공대 출신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 꼭 ‘닭튀김 수렴공식‘으로 빠지는데요. 코딩하다 막혔을 때 동네 통닭집 주인 아저씨에게 물어보면 알려주신다더라 그런 농담을 하곤 하죠.
[box]이 레어템 부부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b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