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인터뷰

[Startup’s Story #106] “직원이 늦잠자면 대표가 모시러 가는 회사” 폴앤마크 최재웅 대표 인터뷰

교육컨설팅 회사 폴앤마크는 사업 계획도 비즈니스 모델도 없다. 이유를 물으니 자신들은 그저 계모임이고 대표는 ‘계주(契主) 형’ 이란다. 직원이 폴앤마크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하면 다른 회사를 찾아 채용될 때 까지 지원하고, 직원이 늦잠자면 대표가 데리러 간다. 더구나 최재웅 대표는 자신을 계주로 소개하면서, 자신의 꿈은 세상 사람들에게 만만해지는 것이란다. 이야기 할 수록 묘한 매력이 있는 폴앤마크의 폴(최재웅 대표)을 만나봤다. 

폴앤마크 최재웅 대표

회사 소개 및 대표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교육 컨설팅 회사 폴앤마크 최재웅입니다. 제가 폴(paul)이고요. 주로 기업과 대학, 청소년 교육을 하고 있어요. 기업 교육의 주 고객은 삼성, 포스코, SK, LG 입니다. 보통 작은 기업부터 시작하는데 저흰 신기하게 큰 기업부터 하게 됐습니다. 청소년 교육의 경우, 가장 많이 알려진 게 중앙일보 공부의 신 프로그램입니다. 해당 교육 캠프를 저희가 개발했고요. 대학 교육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저희가 취업 교육 프로그램에 리더십 프로그램을 넣어야 한다고 제안 했어요. 그걸 잡코리아와 함께 시작했고 지금은 확장이 돼 전국에 리더십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해외에서도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요. 가장 먼저 갔던 곳이 중국의 절강대학교였고, 에콰도르에 있는 아마존, 안데스 산맥,  최근에는 몰도바에 가서 ICT 에듀케이션을 진행 했습니다.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역량강화 교육이었죠. 다음엔 아프리카에 갈까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상주하고 있는 직원이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왔거든요(웃음).

폴앤마크가 하는 일이 교육이라는 것은 알겠는데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요?

기업 교육은 최근에 했던 프로젝트를 예로 들면 될 것 같아요. 삼성 인력개발원에서 했던 건데요. 삼성 그룹이 생기고 60년 만에 처음으로 ‘창의’라는 주제를 가지고 교육을 하고 싶어 했어요. 3개월 정도의 컨설팅을 거쳐서 삼성 그룹 전체 사원에게 들어가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프로그램이 첫 회는 6천 명, 두 번 째는 8천 명, 세 번 째는 만 명. 그렇게 도입이 됐어요. LG는 기업가 정신을 고취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자는 제안이 들어와 LG 핵심 인재들에게 창업가 정신을 고취시킬 수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제공했고요. ‘공부의 신’ 경우는 아이에게 재미를 주고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하는 진짜 학습법을 알려달라는 의뢰가 들어와서 그 프로그램을 개발 했습니다.

이렇듯 저희는 학습에 대한 전반적인 컨설팅과 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제안이 들어오는 내용 외에도 저희가 가지고 있는 기존 프로그램이 있어요. 교수법, 코칭, 경영 전략, 4MAT(두뇌진단교육)이 그것인데요. 이에 대한 요청이 있으면 강의를 나갑니다. 앞부분이 컨설팅에 관한 내용이라면 이건 강의에 대한 이야기지요.

다른 교육컨설팅 회사와의 차별점이라면 무엇일까요?

전달 방식입니다. 폴앤마크는 한 명의 강사를 양성하는데 1년에서 1년 반의 시간을 소요합니다. 컨텐츠를 머리로 배우는 것은 얼마 안 걸리지만 그걸 자연스럽게 몸으로 체화하는 건 꽤 긴 시간을 쏟아야 하는 일이거든요. 최소 1년이에요. 그렇게 2년 차가 되면 ‘베이비’라고 부릅니다. 이제 시작한 거니까요. 그 이후로는 자신의 역량과 청중 평가에 따라서 성장해갑니다. 이렇게 강사 양성에 있어 차별화된 노력을 하고 있고 이는 결국 고객들과 만나게 되는 교육 현장에서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몰도바에서의 ICT 에듀케이션은 어떤 것이었나요?

개발도상국에서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는 분야가 IT예요. IT가 굉장히 강한 나라라고 알고 있거든요. 또한 어떻게 갑자기 성장했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가지고 있고요. 몰도바에서 요청받은 내용은 IT 인프라를 활용해 국가를 혁신시킬 수 있는 방법이었어요. 그래서 IT 기술을 교수 기술과 접목해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지에 대해 다루었어요. 언제 학생들이 질문하고, 언제 학생들이 몰입하게 되고, 언제 컴퓨터를 끄고 선생님과 대화해야 하고 이런 것들에 대한 시스템을 만들었지요.

이런 교육에서의 포인트는, 저희가 제공하는 건 전반적인 프레임워크라는 겁니다. 나머지는 현장에 맞춰서 끌어내지요. 그렇게 베스트 케이스를 만들어 냅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세팅해서 가는 게 아니네요?

그렇습니다. 문화도 언어도 생각도 다르니까요. 다만 한국적 정서와 문화를 들고 가요. 그게 굉장한 파급력이 있어요. 그럴 때 행복해요.

폴앤마크를 만들기 전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사실 대학을 졸업할 때 까지만 해도 정치가 꿈이었어요. 졸업 하자마자 국회에서 잠깐 인턴을 하기도 했죠. 집이 좀 어려워져서 그 꿈은 포기하게 됐지만요. 그래서 그냥 평범하게 취업 준비를 했고 한 대기업에서 채용 확정이 났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가기가 싫어지는 거예요. 채용만 몇 개월을 기다렸었는데 말이죠. 당시 ‘취직이 내가 진짜 원하는 길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걸 고민하는 시기에 공모전을 몇 개 준비해서 나갔어요. 프레젠테이션, 토론 관련 대회였는데 그게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이었거든요. 전국 프레젠테이션 대회를 나갔는데 수상을 하게 됐는데요. 그 때의 심사위원들에게 다 전화를 돌렸어요. 일 시켜 달라고요. 딱 한 분 빼고 모두 거절하셨고요(웃음). 그 한 분 덕분에 시작하게 된 곳이 제 첫 회사였어요. 사실 저는 그 분이 와보라고 하셔서 그 분 회사에서 일하게 될 줄 알았어요. 좀 큰 회사였거든요(웃음). 큰 곳에서 강의를 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는데, 그 분 말씀이 저한테 ‘벤처를 시작하자’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첫 회사에서 폴앤마크로는 어떻게 이어진 건가요?

첫 회사는 존맥스웰 박사의 리더십 프로그램을 한국에 보급하는 회사였어요. 창업 멤버로 들어갔는데요. 사업을 하다보면 이견이 생길 수 있잖아요? 결론만 말씀 드리자면 쫓겨 났어요(웃음). 거길 나온 뒤엔 한 센터에서 연락이 와서 몇 개월 근무했지만 역시나 철학이 맞지 않아 나오게 됐고요. 그 다음이 ‘가속학습연구소’라고 제가 세운 회사입니다. 

당시 힘든 과정에서 얻은 게 사람이에요. 업계에 역량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됐죠. 그 중 한 명이 지금은 ‘링크스타트’를 운영하고 있는 최경희 대표고, 또 한 명은 대기업 교육 담당으로 있다가 합류한 박다임 이사예요. 이렇게 셋이 만든 게 지금 폴앤마크지요.

그렇게 세 분이 시작한 게 폴앤마크이고 대표님이 폴이라면, 마크는 누군가요?

회사에서 쫓겨 났을 때 화가 많이 나 있는 상태였지만, 그 회사에서 해오던 컨텐츠를 가져올 순 없는 거잖아요? 정말 망했구나 하고 너무 괴로워하고 있는데 한 외국인 친구가 손을 내밀어 줬어요. 미국에서 만났던 친구였고, 전 회사에서 4,5년 정도 일을 같이 했던 친구였는데요. 그 친구가 당시 수 억 가치의 30여개 교육 프로그램을 보여주며 A4 용지에다가 자기 사인을 하더니 저한테 내밀더군요. 백지계약서였죠. 그러면서 하는 말이 ‘This is the level of trust I trust you.’ 라고 하더군요. 제 꿈을 이루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어요. 한국에 남아서 저에게 그 프로그램을 가르쳐줬고요.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니까요. 사업을 같이 하고 있진 않지만 이건 은혜잖아요? 잊고 싶지 않은 거죠. 그래서 회사 이름에 그 친구 이름인 ‘마크(Mark)’를 썼어요.

마크가 폴에게 준 백지계약서

폴앤마크를 만들 당시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일단 지명도가 없는 게 큰 어려움이었던 것 같아요. 직원 교육을 진행할 정도면 일단 규모가 좀 큰 회사여야 하고, 그들이 돈을 내고 기꺼이 선택하려면 우리의 퀄리티나 강사나 믿을 수가 있어야 하잖아요? 지금도 강사업계에서 폴앤마크는 어린 편이지만, 그때는 브랜드조차 약해서 어떻게 영업하고 마케팅을 할 것인가가 고민스러웠어요.

하지만 당시 딱 하나 확실한 건 있었어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돈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본 마인드에 위배되거나 진심 어린 마음으로 교육할 수 없다면 강의하지 않는다는 거요. 갑을 관계로 형성되는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 저희는 과감하게 포기했어요. 고객과 파트너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랬더니 아무도 연락을 안 주시더라고요(웃음). 사실 건방져 보이잖아요? 모르는 분들이 보기에는 얼마나 실력이 있길래 저러나 하고 보셨을 것 같아요. 그리고 어떤 분들은 프로그램이 그냥 평균 이상에 가격이 저렴한 걸 선호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저흰 프로그램 퀄리티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어요. 폴앤마크는 엑설런트 해야 한다고 생각 했거든요. 그러니 굶어 죽어도 자존심은 팔지 말자고 이야기 했어요. 

사업초기 자금운용이 힘드셨을듯 싶은데요?

그래서 뭘 팔았냐면요. 금을 팔았어요(웃음). 최이사(현 링크스타트 대표)도 금을 팔았고, 박이사의 마이너스 통장은 몇 천만 원으로 늘어났고요. 전 집 전셋자금을 뺐고요(웃음.) 첫 해 적자는 이천이었어요. 그렇게 2년 버텼지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 땐 별로 힘들진 않았던 것 같아요. 돈이 없어서 힘든 것 보다 회사가 커지면서 일반적으로 조직 문화에서 나타나는 안 좋은 부분들, 파벌이라든가 그런 것들 때문에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 부분에 대한 해결 방법은 찾았나요?

회사인원이 10명 정도가 넘어가면 파벌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걸 없애는 데 제일 어려움을 겪었어요. 그래서 회사를 찢었어요(웃음). 저는 회사가 큰 건 별 의미가 없다고 봐요. 회사가 크면 뭐 해요. 사무실 커지고 매출 커지면 그건 회사가 부자가 되는 거지 개인이 부자가 되는 게 아니잖아요? 회사 건물이 번쩍할 게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 하는 것,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격이나 모습이 반짝거려야 진짜 큰 회사라고 생각해요. 몇 개월간의 고민 끝에 회사를 분리 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꽤 힘든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요?

사실 팀을 나눈 건 사실 굉장히 큰 문제예요. 이 방법을 찾게 된 과정이 있어요. 우리 회사에 온 친구 중에 하나가 콜롬비아에서 왔는데요. 그 친구 전공이 ‘액션러닝’이에요. 액션러닝은 무언가 ‘끊임없이 내부에서 토론을 통해 새로운 조직 문화를 형성하는 과정’인데요. 그 프로그램으로 저희가 스스로 컨설팅을 했어요. 고객에게 가르치면서 저희가 쓰지 않는 건 거짓말이잖아요(웃음). 그렇게 내린 결론이었어요.

핸드스튜디오에서는 성격 검사를 통해 성격 유형 별로 팀을 나누고 경영도 별도로 진행하고 있는데요. 그것과 비슷한 관점인가요?

폴앤마크의 경우는 사업 성격으로 나누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사업이 다르면 그 사업의 성격에 따라 팀의 성격도 달라지거든요. 저희가 기업교육, 대학교육으로 사업 1,2팀이 나뉘어져 있는데요. 대학교육을 맡은 팀은 보수성을 띄는 경향이 있고, 기업교육도 그 나름의 성향을 띄고 있어요. 제일 고민 했던 건 ‘기업문화가 필요한가’ 라는 질문이었는데요. 대학교육을 맡은 팀은 기업이라는 조직이 필요하더라고요. 위, 아래가 있어야 하고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 거죠. 그러나 제가 맡은 팀인 기업교육은 굳이 위, 아래가 없어도 되거든요. 그래서 대학교육팀의 경우는 기존 시스템을 유지 하고, 서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나가는 걸로 이야기가 됐어요.

제가 맡은 기업교육팀은 국내 8명, 외국에 있는 친구까지 총 10명 인데요. 저희팀에서는 대표 체계를 아예 없앴어요. 사장이 없는 회사인거죠. 외부에서는 대표라고 하되, 저희끼리는 다 형, 누나, 동생, 오빠예요. 제일 기분 좋을 때는 최근에 들어온 24살 동생이 오빠라고 할 때(웃음) 였어요. 왜 이런 시스템을 하냐면요. 예를 들어 누구는 성향 때문에 제 시간에 못 맞추고 자꾸 늦어요. 사장은 뭐라고 해야 하고요. 그런데 오빠는 전화해서 ‘어디야?’, ‘이제 일어났어요.’, ‘나참, 내가 데리러 갈게.’ 할 수 있잖아요? 사장이 데리러 가면 혁신으로 비춰지지만, 오빠가 데리러 가면 자연스러운 일이듯요. 그렇게 몇 개월 째 운영하고 있는데 재밌어요(웃음).

나뉘어진 두 팀 모두 폴앤마크 안에 있는 건 맞나요?

현재까지 폴앤마크 안에 있는 건 맞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독립 시키는 거예요. 회사가 나뉘면 전체 매출이 줄긴 하겠지만 스트레스는 덜하고 나눠 가지는 건 많게 되요. 사장만 욕심 안내면 되는 것 같아요(웃음).

대표님의 경영철학과도 연결될 것 같은데요?

제가 회사를 운영하는 건 핵심은 그거예요. 회사가 배부르지 않고 개인이 배부른 회사. 이게 첫 번째입니다. 회사 매출이 많고, 회사 건물이 좋은 것보다 직원들 소득이 많고 사는 집이 훌룡했으면 좋겠어요. 사장은 벤츠를 타는데 나는 자전거를 타면 안 되잖아요? 이게 핵심이에요. 개인을 성장시키고, 개인에게 소득이 분배되는 회사를 만들자는 거죠.

두 번째는 앞서 말한 개인의 성장은 회사한테 기대면 안 돼요. 스스로 얻어야 되는 거죠(웃음). 자신의 힘으로 하되, 스스로 설 수 있게 회사는 도와주는 거예요. 내버려 둘 땐 내버려 두고, 강하게 할 땐 강하게 하고, 어떤 방법이든 가리진 않아요. 이건 역량의 문제죠. 독립하지 못하면 최대한 빨리 내보냅니다.

그런 경우가 있었나요?

어떤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성향 자체가 독립적이지 않은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직장을 찾아서 내 보냅니다. 쫓아 내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에게 맞는 다른 곳에 채용 시키는 거죠. 왜냐면 저희는 ‘True Success Makers’니까요. 그런 성향의 사람은 폴앤마크를 나가는 순간 저희가 성공 시켜야 할 대상인 거예요. 그럼 최선을 다해서 그 사람을 위해 찾아 줘야죠. 그리고 설득 해야죠. 보통 나가고 싶지 않아 하거든요. 그러나 본인이 할 일이 없다는 걸 스스로 알아요. 자신의 힘으로 하라는 것의 핵심은 ‘역량’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실력’이 있어야 해요. 여기서 말하는 실력은 남들보다 잘하는 능력이 아니에요. 남들과 아예 다르길 바라죠. 비교 대상이 없는 사람을 만드는 게 제 꿈이거든요. 그게 너무 중요해요. 그러나 반드시 ‘엑설런트’ 한 사람이 들어와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들어와서 저희가 말하는 걸 체득하면 ‘엑설런트’ 해진다고 봐요. 폴앤마크가 뽑았다는 건 그 사람의 가능성을 보고 뽑은 거고, 그 가능성을 키우는 건 그 사람의 역할이 아니라 제 책임입니다. 실패하면 제 책임인거죠. 첫 번째가 ‘분배’, 두 번째가 ‘역량’, 세 번째가 ‘실력’. 이게 폴앤마크의 철학입니다.

팀 내에서의 역할은 어떻게 나뉘나요?

저흰 서포트그룹과 강사그룹,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있어요. 서포트 그룹에서 주로 하는 일은 컨설팅, 기획, 디자인이고 강사그룹은 강의를 합니다.

영업은요?

저희 영업 안 해요. 영업팀 없습니다. 아, 이게 저희 회사의 가장 특이한 점이네요(웃음).

영업이 없으면 고객사와 어떻게 연결하나요?

오는 전화는 받아요(웃음). 직접 영업을 하진 않지만요.

이유가 있나요?

마냥 손 놓고 있는것은 아니고요. 저희가 가지고 있는 DB가 있긴 해요. 영업팀이 관리해서 만들어진 건 아니고, 강의를 오래 하다 보니 생긴 겁니다. 그게 있긴 하지만 역시나 저희의 핵심은 영업이 아니라 강의입니다. 교육 회사에 영업팀과 강의팀이 섞여 있으면 어떤 일이 생기냐면요. 강의 하는 사람들은 영업 직원에게 불만이 생길 수 있고, 영업하는 사람들은 강사가 되고 싶거나 강사들을 부러워해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영업팀을 안 만들었어요. 그 시간에 핵심역량에 집중하자는 거죠. 애초에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처음에는 나름 영업을 했어요. 그렇게 생긴 고객사에서 더 늘리지 않을 뿐이에요. 산업은행의 경우 저희와 10년을 함께 했어요. 매년 저희와 하고요. SK도 7년 됐고 구찌는 6년 정도 됐네요. 고객사 중 가장 젊은 고객사가 4년이에요. 

건방지게 들리실 수 있겠지만, 컨설팅이나 교육 요청이 들어오면 이 고객사와 할 것인가는 저희가 선택합니다. 회사를 가리는게 아니라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저희와 마인드나 문화가 맞지 않으면 서비스 하지 않아요. 물론 첫 교육을 할 때는 저희의 역량도 생각도 문화도 모르기에 진짜 을로서 최선을 다해 서포트 합니다. 그러나 서로 검증이 끝나고 나면 저흰 친구가 되고 싶지, ‘용역’이 되고 싶진 않아요(웃음).

이런 건 해요. 6년 간 일 년에 두 번 콘서트를 하고 있습니다. 고마웠던 분들 다 초청해서 1년 간 폴앤마크가 했던 일들을 연극이나 음악 등 공연으로 준비해서 콘서트를 하는 거죠. 2,30명 정도 모여 맛있는 거 먹으면서 파티를 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하는데 신기하게도 새로운 곳에서 연락이 와요. 

다만 저희가 강사를 키우는 일도 하잖아요? 새로운 강사를 위해서 영업이 필요할 때는 있더라고요. 그럴 때는 공개 과정을 열어주거나 영업전문업체에 맡기기도 합니다.

사업초기 대기업과 연결이 쉽진 않았을텐데요? 

평생 잊지 못할 회사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산업은행이에요. 제가 직장생활을 할 때 거기서 강의를 했어요. 퇴사하면서 거기에 말씀 드렸지요. ‘사정이 생겨서 더 이상 강의를 못합니다’ 라고요. 그런데 담당자께서 ‘우리는 회사 때문이 아니라 팀장님 때문에 강의를 했다. 앞으로도 팀장님이랑 하겠다. 만약 회사 측에서 고객권을 주장한다면, 사실증명을 떼서 법적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보내드리겠다’ 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리고 이후에도 저를 강사로 불러주셨어요.

삼성과의 인연은 제가 만든건 아니에요. 60년 만에 사내 교육이 바뀌어서 컨설팅 업체를 알아보는 중이셨다고 해요. 저희를 찾아와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데 잘할 수 있겠냐고 물으시더라고요. 탁 보니까 항목이 다섯 개 정도가 있었는데요. 세 가지가 안 해본 거였어요. 그거부터 말씀 드렸어요. 이건 못하고, 이건 해본 적 없다고요. 그런데 그분 표정이 황당하다 못해 이건 뭐지라는 표정이었어요. 그러고 두 가지가 남았는데 이건 저희 진짜 잘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게 인상적이었나 봐요. 그분 말씀이 못하는 것도 한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거였어요. 저는 그게 당황스러웠고요. 못하는 걸 어떻게 한다고 하냐고 했죠. 그게 좋으셨대요. 그렇게 삼성인력개발원을 들어가게 됐고 컨설팅을 시작하게 된 거죠.

LG나 SK는요?

LG의 경우는 어떻게 하다가 LG전자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그게 연결된 케이스고요. SK는 제가 강의하는 스타일이 마음에 든다고 전국 프로젝트를 맡겨 줬어요. 그렇게 SK와이번즈와도 연결이 됐고요. 프로야구 선수들을 코칭 했는데 진짜 재밌었어요. 

폴앤마크는 어떤 사람을 원하나요?

사실 많이 뽑지 않아요. 작아서요(웃음).

우리의 첫 번째 기준은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사람이에요. 3개월의 인턴 기간이 있는데, 이 시기를 거치면 다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간절한가가 가장 중요한데 진짜, 진짜 간절해야 해요. 저는 강의할 때 정말 내일 죽어도 강의하겠다는 생각으로 해요. 사실 이건 제 꿈과도 연결돼요. 예전에 꿈을 하나 꿨어요. 제가 암에 걸렸는데 일주일 뒤에 죽더라고요. 제가 어디 있는지 주변을 둘러 봤더니 강의장이었고요. 아침에 눈뜨고 정말 펑펑 울었어요. 그때 느낀 게 있어서 ‘마지막 콘서트’라는 명칭의 강의를 만들어 저를 도와줬던 분들을 초청했어요. 한 친구한테는 그걸 녹화해서 제 장례식 때 틀어 달라고 부탁했고요. 제가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강의를 한다고 해서 함께 할 분들도 목숨을 걸어라는 건 아니예요(웃음). 다만 그만큼 정말 간절했으면 좋겠다는 거죠.

두 번째는 강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자질’이 있어야 하고, 서포트를 하고 싶은 사람은 ‘역량’이 있어야 해요. 강의자는 태어나지만 계발되기 전까지 모르는 거거든요. 엑설런트 해질 수 있는 자질이 있는지를 봐요. 그 자질은 저희가 금방 알아 챌 수 있고요. 서포트 그룹은 역량을 봅니다. 디자인을 못하는데 디자인을 할 수 없고, 재무재표를 보지 못하는데 회계를 할 순 없으니까요.

세 번째는 성품이에요. 보통 회사는 사람을 뽑을 때 실력을 보고 뽑지만, 내쫓을 때는 성품을 보고 내쫓는다고 해요. 저는 이게 반대로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뽑을 때는 성품을 보고, 내쫓을 때는 역량을 보고 내쫓아야 돼요. 물론 안 내보내는 게 제일 좋죠. 그건 근본적으로 기업 책임이니까요.

사업 관련 이야기를 해보죠. 폴앤마크의 BM이 꽤 특이하다고 들었어요.

사실 BM이라고 하기는 애매해요. 저흰 기업형태을 별로 안 좋아해서요(웃음). 사업을 하면서 기업이라는 구조를 좋지않게 생각 했어요. 한 사람에게 몰리게 돼 있는 구조가 기업이잖아요? 그래서 저희 끼리는 가장 합법적이면서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요.

그런데 이거 이야기해도 되나(웃음). 저흰 계모임이에요. 계(契)는 일정한 목적을 두고 돈을 조금씩 모으잖아요? 강사들이 회사에 기여를 해서 돈을 벌어 오지만, 그 돈은 제가 관리하는 것일 뿐 내 것이 아닌 거예요. 돈을 잘 모았다가 친구들한테 물어보는 거죠. ‘이거 가지고 뭐할까? (직원 중 한 사람이) 르완다에서 왔으니까 우리 아프리카 갈까?’, ‘그래!’, ‘이 만큼 남았다. 이걸론 뭐할까?’, ‘제주도로 다 같이 놀러가자!’ 이렇게 해서 그냥 가는 거예요. 우리 돈 인거죠. 내가 준다는 개념을 가지면 끝인 것 같아요. 내 것이라 생각하는 순간 위험해져요. 

그래도 월급이 나가긴 해야 하잖아요?

월급이 나가는 분들도 있어요. 서포트팀은 무조건 월급 받고 성과급이 따로 있어요. 성과급은 그 계모임에서 나가고요(웃음). 강사그룹은 거창하게 말하면 협동조합인데요, 그보다 저흰 그냥 계가 좋아요(웃음).

처음 강사그룹으로 들어온 분은 형편이 안될텐데요?

처음 들어온 분은 당연히 곗돈을 낼 형편이 안 되죠. 1년 정도 서포트를 합니다. 예를 들어 1년 동안은 2백만 원씩 월급을 주고 강사가 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거죠. 사람들이 1년 동안 돈을 못 벌면 힘이 빠져서 배울 수 있는 여유가 없어져요. 그럼 당연히 저희가 뽑았으니 월급을 주는 거고요. 그 동안은 따라 다니면서 보고 배우는 거죠. 그렇게 몇 개월만 지나면 자기 역할을 찾으면서 정말 빛나는 사람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고객이 생겨요. 그 뒤엔 강사료를 쉐어하는 거죠. 그게 계인 거예요(웃음) 

1년이 지났는데 돈을 못 버는 분이 있으면 어떡하죠?

저희가 판단하기에 역량은 있는데 1년이 지나도 돈을 못 번다면, 저희 계모임에 상정 됩니다(웃음). 이 친구를 이번에 어디어디에 보내서 돈을 이렇게 주자고 의견을 나눠요. 이 부분은 굉장히 세부적으로 시스템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소득이 생기게 해줘요. 강사는 외롭거든요. 내일 강의가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을 항상 달고 살아요. 미래 보장이 안 되니까요. 계가 있다고 해서 보장이 된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서로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든든하잖아요. 

그럼 대표님은 계주인 건가요?

그렇죠(웃음). 제가 계주로서 하는 건, 사람은 돈이 생기면 욕심이 생기잖아요. 그걸 조절합니다.

조절하는 방법은요?

제가 제일 많이 벌잖아요? 제가 모델이 돼주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제안하고 좀 더 포기하고요. 더 많은 돈을 계로 나누면 자연스레 형이 되는 것 같아요. 계주 형이죠(웃음). 형이 계주를 하는 거니까 형 말을 들으면 되고, 형 말이 마음에 안 들면 동생이 이야기 할 수도 있는 거고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무서운 부분은 사람의 역량이 키워지고 있는지는 모든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는 거예요.

최대웅 대표 저서 강의력

‘강의력’이라는 책도 출간하셨는데, 책은 어떻게 쓰게 됬나요?

박신영 소장(삽질정신, 기획의 정석 저자) 제안으로 같은 편집자를 만나게 됐어요. 편집자도 책을 내는 것에 긍정적이더라고요. 처음엔 제가 간절히 원했던 것들이 내 안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려주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조금 쓰다가 보니 이건 강사가 쓸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그 부분은 접었어요(웃음).

왜 그런 생각이 든 건가요?

자기 자랑 하는 것 같았어요. 분명 누군가는 자기 자랑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긴 할 텐데요.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방향을 어떻게 잡으셨나요?

제 책을 보는 사람들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이 책을 본 사람들이 평생 얻을 수 있는 게 뭘까. 생각 해보니 제가 만난 사람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다 말을 잘 하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잘 말할 수 있는 기술을 담은 책을 쓰자고 생각 하게 됐죠. 집필 중에 누가 그러더라고요. 지금은 한 달에 몇 십에서 몇 백 명 밖에 못 만나는데, 책을 통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 않느냐고요. 더 동기부여가 됐죠.

제가 달필이 아닌지라 최선을 다해서 예시를 들었어요. ‘강의를 폼 나게 하는 법’이나 ‘대중 앞에서 멋지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방법’과 같은 실제 스킬에 대해서요. 가끔 기업 대표나 유명인들이 발표 하는 것을 보면, 소위 말해 ‘오글’거릴 때가 있잖아요? 서양 사람들의 것을 무작정 따라 해서 그런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아시아스러운 것도 정말 멋있어요. 아시아스러우면서도 글로벌 한 게 무엇일까를 항상 고민해왔기 때문에 작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책을 쓰면서 제가 지금까지 배웠고 만났던 사람들의 에센스를 뽑아 내려고 애를 많이 쓴 것 같아요. 

폴앤마크를 운영하며 혹은 강의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사실 항상 강의를 할 때 마다예요. 구체적인 사례를 들자면, 리더십 강의를 나갔던 대학 이야기가 있겠네요. 어느 대학에 강의를 나가면서 정말 진심으로 대했고 학생들과도 정말 친해졌는데, 그만 둔 일이 있었어요.

무슨 일이었나요?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저희와 갑을 관계가 형성이 되면 그만 두거든요. 어느 날 학교를 갔는데 담당자가 바뀌었더라고요. 저희와 인간관계가 형성이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저희가 갑입니까 을입니까’ 라는 이야기로 시작 하더니 무언가를 원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만 뒀어요. 내가 가르치는 대로 살지 않는데 뭘 가르칠 수 있겠어요. 그래서 그만 뒀고 서운한 마음이 가득한 채로 연락이 끊어졌어요.

그런데 연말에 전화가 왔어요. 그 학교 학생회 학생이래요. 선배들에게 추천을 받았다고, 신입생 환영회 때 강의를 해주시면 좋겠다는 거예요. 천 명이 넘는 학생들 앞에서 설 기회를 준 거죠. 고마웠어요. 더 고마운 말은, 학생회 예산에서 백만 원을 주겠대요. 뭘 그렇게 많이 주느냐고 그냥도 간다고 하고 가기로 했어요. 그렇게 확정된 상태에서 전화가 또 왔어요. 이번엔 자연대 학생회래요. 마찬가지로 신입생들한테 강의를 해 달래요. 그 이후 세 번째 전화가 왔어요. 디자인 과래요. 예산이 없다고 자기 알바비를 떼서 준다는 거예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어요. 돈은 필요 없다고 이야기 했고, 강의를 준비하는 과정에 뭔가 돌려주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그 학교에서 만나 인생이 바뀌고 학생들에게 모델이 될 만한 친구들을 모았어요. 대기업을 간 친구도 있고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자기 삶대로 살고 있는 친구도 있고, 저와 연락하고 있는 친구들을 다 모아서 영상을 만들었어요. 자기 학교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아서요. 왜냐면 뭔가 용기가 필요하고 잘 살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 최고의 메시지는 그 모든 상황을 이겨낸 선배의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그 메시지들을 편집해서 틀어주고 당신이 어디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있는 곳이 세상이 중심이라고 믿을 때 진짜로 당신은 중심이 되고 빛날 수 있다고 이야기 했어요.

학생들에게 정말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 같아요. 폴앤마크의 신념, ‘TRUE SUCCESS MAKERS’는 어떻게 나온 말인가요?

아, 이건 답하기 쉬워요(웃음). 어느 날 강사들이 모인 곳을 갔는데요. 리더십 강사가 이런 말을 했어요. 원래 CS강사는 CS를 못하고, 화술 강사는 말을 못하고, 리더십 강사는 리더십이 없다고요. 그런데 거기 있는 사람들이 막 웃는 거예요. 웃는다는 건 공감한다는 거잖아요.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학생들에게 ‘여러분, 할 수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속으로는 ‘아, 여긴 힘들겠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건 사기예요. 그래서 진심으로 성공을 만들어 주고 싶은 사람들이 강의를 하는 곳. ‘TRUE SUCCESS MAKERS’죠.

얼마 전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출연도 하시고, 섭외가 꽤 들어 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소감이 어떠세요?

재밌어요. 세바시를 나가게 됐고 이어서 CBS, tvN에서 연락이 왔어요. 얼마전에는 MBC에서 TV특강을 했고요. 그런데 제가 결정한 게 있어요. 그만 하자고요(웃음).

이유는요?

의미가 없더라고요. 제가 회사를 세운 건 진심 어린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강의를 하고 싶기 때문이었어요. 저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클라이언트예요. 그만 해야 겠다고 생각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방송사 측에서 제 일정을 고려해주는 게 힘들다는 거였고, 두 번째는 강의를 듣는 사람이 불특정 다수라는 거였어요. 그냥 앉아서 재밌게 웃을 순 있겠죠. 하지만 제 이야기를 진짜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 번째는 조금 알려지니까 어떤 것을 바라는 분들에게서 연락이 와요. 그런데 제가 해드릴 것이 거의 없는 분들이었어요. 대부분은 본인들이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시기의 사람들이더라고요. 조금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 분들은 무언가 기적같이 터지는 것을 바라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생 살면서 하루에 스무 명씩 만나 강의를 한다고 해도 평생 만 명을 만나지 못할 거예요. 그렇게 따지면 지금 저에게 주어진 소수의 사람들을 진짜로 가르칠 시간도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 사람들에게 더 투자할 시간이 필요해요. 방송은 그렇게 하기가 어려우니까 포기하는 게 맞다는 판단이 들었고요.

대단해지고 싶지도 않고 엄청나지고 싶지도 않아요. 강사가 유명해지면 진짜 강의를 할 수 없겠다는 생각도 해요. 유명해지니까 저를 보고 떠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좋아서 떠는 걸 수도 긴장해서 떠는 걸 수도 있는데, 이렇게 되는 건 안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만만해지고 싶어요. 제가 만만해야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하고 막말도 할 거 아니에요? 그래야 거리감 없이 진짜 도와줄 수 있거든요. 강사가 어려운 존재가 되는 순간 그 강사는 빵점인 것 같아요.

폴앤마크 최재웅 대표 세바시 강연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투자자나 청중에게 사업 설명을 해야할 일이 많습니다.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코칭을 해준다면요?

보통 IR을 할 때 어떤 순서로 이야기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IR 코칭을 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게요. 자기가 생각하는 강점을 강하게 부각한다는 거였어요. 그걸 부각하면 진짜 강하게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내 돈을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그걸 구분 못하지는 않거든요? 그럼에도 불과하고 거짓말은 아니지만, 진짜가 아닌 걸 이야기 하는 것 같아요. 진짜지만, 진짜 진짜는 아닌 거요(웃음). 예를 들어 ‘우리 제품은 소비자 선호도에서 지난 3개월 동안 늘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런거죠. 소비자 선호도라는 게 지수가 여러 개 잖아요? 그걸 명확히 할 필요가 있어요.

또는 투자자들에게 이익이 안 되는 이야기를 엄청 장황하게 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 이야기 나오면 듣는 사람은 이미 관심이 급격히 떨어져요. 그러다가 투자자들이 툭툭 질문을 던지죠. 발표자는 뇌사 상태가 되요. 그냥 어영부영 대답하다 끝나 버려요. 그런 질문에 제대로 대응 못하면 IR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방법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첫째는 자기만의 플로우가 있어야 되고 두 번째는 거짓말을 하면 안 돼요. 진짜 가능성과 진짜 이야기를 간단하게 해야 해요. 세 번째는 머릿속으로 이야기하는 걸 멈춰야 해요. 실패하는 IR은 자기 머릿속에 있는 걸 정리해서 말하는 IR 이에요. 이건 빵점이죠. 자기가 자기한테 소개하는 거잖아요. 그건 스스로가 설득되는 거지, 상대방을 설득할 순 없는 것 같아요. 스스로 설득 안 된 상태에서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건 정말 더 나빠요. 네 번째는 구체적으로 말하는 거예요. 특히 수치에 대한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IR 준비할 때 핵심은 ‘나라면 투자 할 것인가’예요.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야 해요. 이게 정말 KEY QUESTION 이죠.

폴앤마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라면요?

사실 비전이나 미션은 크게 변하지 않아요. 개발도상국에 가는 거나 교육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교육을 하는 것에 대한 꿈, 그리고 진심 어린 마음이요. 폴앤마크는 이미 비전 속에 서 있는 것 같아요. 이뤘고 앞으로도 계속 이뤄 나가야 할 길 위에 서 있는 거죠. 여기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저 말고 다른 사람들이 꿈 꿀 수 있게 하는겁니다. 꿈을 꾸기 위해 온 직원들이 독립하고 성공하고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제가 가장 원하는 것이고요. 조금 더 나아가자면 우리 안에 있는 행복이 차고 넘쳐서 국가와 세상에 영향을 준다면 폴앤마크라는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가 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성공한 사람을 보며 ‘나도 언젠가 저 사람처럼 빛나야지’ 라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있는 곳에서 만족하는 방법을 찾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지금 만족하지 못하면 나중에도 만족하지 못 한다고 봐요. 지금 있는 곳을 행복하게 만드는 게 진짜 비전이고 진짜 교육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요. 1등만 행복한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1등부터 꼴등이 아니라 그냥 한 명 한 명,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각자 다르게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폴앤마크 계모임 단체사진

플래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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