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성장할 때 망가지기 쉽습니다
‘창업은 쉬우나 수성은 어렵다’는 말이 있죠. 중국 최전성기로 불리는 당나라 시대 태종 임금과 신하들의 대화에서 나온 고사성어인데요. 나라를 세운다는 목표를 쟁취하는 것보다 건국한 그 나라를 잘 유지하고 발전시켜가는 게 더 어렵다는 뜻입니다.
국가와 회사를 1대1로 비유하긴 어려우나, 이제 막 본격적 성장 국면에 접어든 기업들은 새겨들어야 할 말일 듯합니다. 종전의 성공 방식을 이끌던 요소들이 대거 변화할 수 있는 기간이기 때문이죠. 여러 인재를 추가 채용하면서 인적 구성이 대폭 달라지며, 각종 보상 체계와 채용, 승진 기준도 달라지기 쉽습니다.
기업들이 성장을 위해 박차를 가하는 이때, 오히려 그 기업이 무너지기 쉽다는 주장이 리멤버 커뮤니티에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카카오뱅크에서 기업 문화를 담당하고 있는 박종훈님의 <[culture] 기업문화는 회사가 성장할 때 망가집니다>를 재구성해 소개합니다.
리멤버 커뮤니티 원본 글 보기 > [culture] 기업문화는 회사가 성장할 때 망가집니다.
컬처핏이 희미해진다
많은 회사들이 인재 영입 단계에서 ‘컬처핏’이라는 걸 봅니다. 해당 기업의 문화에 대한 적응성을 뜻하는데, 쉽게 말해 그 회사에서 추구하는 일하는 문화와 얼마나 부합하느냐를 말합니다. 이때 컬처핏은 면접관의 주관이 아니라 회사 안에 합의된 일하는 방식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창업 초기, 소규모 조직에서는 팀워크의 중요성이 절대적으로 부각됩니다. 때문에 컬처핏 자체가 매우 엄격하게 작동합니다.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도 컬처핏이 어긋나면 채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장이 최우선인 시즌이 되면, 조직 외형이 늘어나면서 사람 채우기에 급급해집니다. 특히 유니콘 기업 중엔 1년 사이 전체 인원이 2~3배로 커지는 경우도 종종 있는 만큼, 채용 그 자체가 조직의 목표가 돼 버리기도 합니다. 당장 일손은 모자란데 인재를 하나둘씩 거르고 있다 보면 “추상적 기준일 뿐인 컬처핏이 중요하냐”는 얘기도 나오게 됩니다. 지원자의 직무 적합도나 역량은 우수한데 컬처핏이 맞지 않는 지원자들이 많아지거든요. 결국 컬처핏의 기준이 관대해지고 기존과 다른 문화의 인재들이 회사 안을 채우게 됩니다.
유명무실해지는 기존 문화
영입의 기준만 관대해지는 게 아닙니다. 단기간에 많은 인재가 유입되다 보니 신규 인력을 회사 문화에 적응시키는 ‘온보딩’ 과정이 가볍게 취급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심지어는 생략되기도 합니다. 조직의 평가나 보상, 승진 기준도 유연해지기 시작해요. 합의한 방식대로 일하지 않아도 성과만 내면 높은 평가와 보상을 받는 ‘스타 플레이어’들도 탄생합니다.
이쯤되면 컬처핏을 반문하는 다수가 생겨납니다. ‘우리가 일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우리 회사의 기업 문화는 뭐지?’ ‘우리는 어떤 인재를 대우하지?’ 그러나 이미 정량적 목표가 조직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한가한 소리로 취급되곤 합니다. “그 시간에 성과를 내도록 실천 워크숍이나 준비하라”는 피드백을 듣지나 않으면 다행입니다. 결국 컬처핏이 무너져가는데도 많은 이들이 성과라는 단일 목표 앞에 침묵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한번 망가지면 복구하기 어려운 게 문화
더 위험한 건, 컬처핏이 무너진다고 회사가 한번에 무너지는 게 아니란 점입니다. 회사의 성장은 대외 변수의 영향이 몹시 크기 때문에, 시장 수요와 트렌드에 잘 대응하기만 하면 컬처핏과 무관하게 회사는 당분간 성장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막대한 투자로 인해 돈을 잘 쓰기만 해도 쉽게 성장을 유도해낼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성장 국면은 반드시 정체기를 맞게 됩니다. 똑같은 대외 변수의 영향으로 인해, 아무리 용을 써도 구조적인 수요가 줄고 투자 환경이 바뀌면 쉽게 성장하기 어려운 고착 단계에 접어들곤 하는 거죠. 이 단계에서부턴 자사 서비스, 제품을 자기 일처럼 고민하고 발전시키려는 기업 내부의 단결력 있는 고민이 다시 뒷받침돼야 합니다. 이때 직원들의 주인의식이나 단결력을 담보해줄 수 있는 게 바로 회사의 컬처핏입니다.
그때 가서 컬처핏을 세우면 되겠다고요? 글쎄요, 아마 늦었을 겁니다. 기업들은 이 무렵이 되면 쉽게 쉽게 컬처핏을 개선하고 바로세우기 위해 별의별 캠페인들을 시도합니다. <~~ 문화 캠페인> <~~ 선언식>이 대표적이죠. 그러나 박종훈님에 따르면, 컬처핏은 방치된 시간이 길수록 더 깊이 망가져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회사 경영진부터가 오랜 시간 컬처핏에 대한 존중과 유지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는데, 직원들이 이를 신뢰할 수가 없다는 것이죠. 뒤늦은 후회로 지름길을 찾는 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애초부터 초심을 잃지 말든가, 아니면 늦었더라도 차근차근 오래도록 지켜나갈 컬처핏을 다시 차근히 세워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