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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인의 Daily up] 3. 갑과 을은 변한다!

갑과 을은 변한다

때는 바야흐로, 2000년 2월이다. 당시 벤처붐이 엄청 불던 시기라서 IT 비슷한 일만 하고 있으면 창투사가 돈을 싸들고 투자하러 다녔다.

당시 기억으로는 창투사가 106개 정도가 되었는데, 1-2년 전 벤처 업체들에게 투자했던 많은 업체들이 떼돈을 벌었었기에 너도나도 벤처 기업에게 투자하려고 했었고, 개인투자자들끼리 모여 최소 자본금인 100억을 만들어 창투사 설립하는 붐까지 불던 시기였다.

그러다보니 당시 IT밸리라고 하던, 역삼, 선릉, 삼성역 근처에 사무실을 얻으려는 업체가 많다보니그 지역 임대료도 폭등했지만, 그 지역을 벗어나면 IT업체가 아닌 것처럼 보이던 시기라서 울며 겨자먹기로 그 동네에 입주하려던 회사가 줄을 서던 상황이었다.

당시 내가 운영하던 회사도, IT업종은 아니었지만, 벤처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삼성동으로 이사하고, 회사이름도 바꾸고, 새로운 사업에 막 뛰어들려고 하던 상황이었다. 우리 회사의 1대 주주가 IT업계에서는 아주 유명한 분이었기에, 내가 운영하던 회사의 1대 주주라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후광이 있었고, 또한 그 분이 운영하던 회사에 투자하려는 많은 창투사들이 오면, 우리 회사에 투자하라고 권유하다보니 실제 업종도 안 바꾸고, 회사 이름도 안 바꾼 상태에서도 창투사 임원들을 무척 많이 만났다.

당시 주변의 많은 벤처 기업들은 창투사가 찾아오면, 외판원이 오듯이 귀찮아하기도 했고, 어렵사리 창투사 직원이 미팅요청을 하면, 액면가의 최소 10배 내지는 20배 정도는 불렀고, 그런 경우에 투자를 받아주면, 창투사 직원들이 술을 사주던 상황이라고나 할까.

생각해보라. 창투사를 만들기 위해 100억 혹은 그 이상 돈을 모아놨는데, 투자를 하지 못하면, 창투사의 주주들에게 일도 안 하는 사람이라고 구박을 받게 생겼으니 그야말로 묻지마 투자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그로부터 한달 뒤인 3월 20일 무렵부터 투자 분위기가 갑자기 식기 시작했다.

3월 20경 정도면, 작년 한 해의 실적을 주주총회를 통해 발표해야 하는데, 이름하여 묻지마 투자했던 많은 벤처기업들이 뚜렷한 실적도 없는 경우가 많았고, 몇몇 벤처기업 대표들은 투자받은 돈을 횡령하거나 강남 유흥가에서 엄청 쓰고 다녔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쪽에서도 벤처기업들의 실적이 좋지 않다는 뉴스가 계속 나오다보니, 갑자기 많은 개인투자자나 창투사들이 갑자기 발을 빼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주까지 액면가의 10배 혹은 20배 정도는 줘야 투자를 받아주겠다고 큰소리 쳤었는데, 갑자기 창투사들이 미팅을 미루고, 투자하겠다고 했던 약속도 슬슬 미루는 상황이 되니 곧 투자가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업을 벌였던 많은 기업들이 혼란속에 빠졌다. 한두달 뒤 수십억 혹은 수백억 투자가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벌여놨는데, 갑자기 돈이 안 들어오니 얼마나 당황스럽지 않겠는가.

그로부터 다시 한달 뒤, <동아일보>에서 그런 상황에 대한 기사를 썼는데, 그 기사의 제목이 압권이다.

‘이젠 갑이다’

한두 달 전까지 <제발 투자하게 해주세요>라고 쫒아다니던 창투사 입장에서, 한두 달 전까지 10배 혹은 20배씩 주면서라도 투자하려고 했던 창투사 입장에서, 한두 달 시간을 끄니, 이제는 벤처기업에서 연락이 오거나 5배라도 좋으니 투자해달라는 식이니 한두 달 사이에 그야말로 상황이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당시 창투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고 투자를 받았던 회사는 살아남는 경우가 많았고, 당시 창투사들끼리 경쟁시키면서 (곧 수십 수백억이 들어올 것이라고 큰 소리치던) 업체들은 대부분 망했다.

갑과 을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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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품을 팔면 팔수록 손해?
2. 빚이 얼마나 됩니까?

전자책 사업을 했던 경험을 기반으로 디지털 컨텐츠 유통을 하고 있다. 현재는 복지몰/폐쇄몰 벤더이자, 카드사/김기사몰 등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회사 블로그(http://dailyup.tistory.com)에 그동안 취급했던 제품과 제품을 취급하면서 경험했던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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