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하반기 대한민국을 강타한 ‘응답하라1994’(이하 응사). 저도 참 재밌게 봤는데요. 개인적으로는 나레기 커플이 됐으면 했는데 결말이 그렇게 나서 참 만족스럽게 봤습니다. 제 주변에서는 칠봉이와 나정이가 커플이 되길 바라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에 대해 언급하는 글에서 왜 쌩뚱맞게 ‘응답하라1994’ 이야기를 할까요?
저는 이 응사를 보면서 한가지 걸렸던 점이 있습니다. 내용의 전개나 옥의 티 이런 응사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것을 표현하는 당시 화면의 문제였습니다. 말이 좀 어렵기는 한데 역시 이럴땐 이미지 하나로 설명하기 좋으니까 아래의 이미지를 보시면 바로 아실 것 같습니다.
아래의 캡쳐영상은 쓰레기와 나정이가 애틋하게 얘기하는 장면이었는데요. 이 애틋한 분위기에 저는 좌상단에 있는 “응답하라 1994 – 최종화 90년대에게”와 “tvN 새 금토드라마 응급남녀 1/24(금) 밤 8시 40분 첫방송” 이 부분 때문에 완벽히 몰입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요즘 TV를 보면 예능이나 각종 드라마에 보면 위의 이미지처럼 프로그램명과 해당 방송사의 로고가 나옵니다.
이 두가지 요소를 보면서 직업병이 도졌는지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비지니스 프레젠테이션에서 정말 자주 보이는 페이지 번호와 발표자가 속한 회사의 CI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비슷한 두가지, 드라마에서 나온 프로그램명과 방송사 로고, 그리고 슬라이드에서 나오는 페이지 번호와 기업CI에 대해서 디자인적 관점을 중심으로 말해보고자 합니다.
비지니스를 기반으로 하는 문서들은 필연적으로 내용이 많습니다. 그런 이유로 인해 하나의 페이지를 만들다 보면 내용을 꾹꾹 눌러담기가 다반사죠. 그런데 이 때 페이지 번호가 디자인적으로 문제를 유발하게 됩니다. 그 문제는 바로 공간을 생각보다 많이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페이지 번호 자체만으로는 공간을 그렇게 많이 차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슬라이드에 삽입되는 순간부터 그 주변의 공간은 사용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흔히 페이지 번호는 슬라이드의 가장 하단부분에 들어가는데 이럴경우 하단 부분은 페이지 번호를 제외한 다른 텍스트가 들어갈 경우 페이지가 산만하게 보입니다.
페이지 번호로 줄어든 슬라이드에 본문 내용을 채워넣기 위해서는 결국 글씨들이 작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단순히 글씨의 세로 길이만 줄어 드는 것이 아니라 가로 길이까지 같이 줄어들기 때문에 텍스트가 실제적으로는 훨씬 작게 들어가게 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페이지 번호때문에 본문의 내용을 집어넣을 공간이 줄어들게 됩니다. 단순하게 보면 세로 영역만 줄어든 것처럼 보이고, 단지 글씨를 세로 길이만큼만 줄이게 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텍스트를 만약 세로로 줄이게 될 경우 글씨의 비율이 맞지 않아 가독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글씨 본연의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 세로가 줄어든 만큼 가로의 영역도 작아집니다. 물론 사용자는 이를 체감하기 힙듭니다. 왜냐하면 글씨의 크기가 비율에 맞게 크기가 자동으로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용자는 이를 오랫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덕분에 사용자는 글씨가 작다, 크다는 결과만 구별하게 됩니다. 페이지 번호나 다른 요소로 인해 내용을 적을 공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개념은 없이 말이죠. (워드아트일 경우에는 세로만 혹은 가로만 줄일 수 있습니다)
로고 또한 페이지 번호와 마찬가지의 원리 때문에 슬라이드에 꼭 넣어야 할지 말지를 잘 선택하셔야 합니다. 만약 제출할 결과물이 인쇄물이라면 아마 페이지 번호는 꼭 삽입해야할 요소일 것입니다. (로고는 선택사항일 듯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화면으로만 보여준다면 페이지 번호와 로고는 과연 꼭 넣어야 하는 것인지 판단을 해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요소들로 인해 여러분들의 내용을 담을 그릇, 즉 본문영역이 줄어들게 되고 글씨 크기 또한 작아지게 된다면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에서 중요한 가독성을 스스로 훼손시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이 페이지 번호와 로고가 무조건 빼야할 요소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슬라이드를 만들때면 이 페이지 번호와 로고가 삽입되면, 이것들이 하나의 페이지의 전체적인 구도를 안정적으로 잡아줄 수 있고, 흔히 말하는 허한 느낌을 지우는데 도움이 될 때도 꽤 있습니다. 하지만, 슬라이드는 프레젠테이션이라는 하나의 생명체에서 일부일 뿐 절대 중심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논지에서 볼 때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 슬라이드에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가득 채우는 행위는 결국 발표자에게나 청중에게나 그닥 좋은 일은 아닙니다. 발표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부정적인 요소를 제거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더욱 만드는 꼴이니까요. 그리고 대부분의 발표자들은 발표를 꺼려하고 어려워하기에 더욱 이런 요소를 줄여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 슬라이드를 만드시는 실무자 여러분들. 로고와 페이지 번호에 너무 집착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결재를 해주실 그 분께서 넣으라면 넣을 수 밖에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생긴다면 페이지 번호와 로고를 한번쯤은 빼시는 것이 여러분의 슬라이드에 좀 더 많은 자유로움을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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