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 플랫폼 스타트업들이 ‘에스크로(안심결제) 도입 의무화’ 추진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들은 다양한 이커머스 플랫폼 사업 형태를 고려하지 않은 일괄 규제가 실효성이 낮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14일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이커머스 스타트업들이 바라본 티메프 사태와 해결방안’이라는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간담회는 최근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에스크로 도입 의무화’와 ‘정산 대금 단축’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들이 잇달아 발의되면서 열렸다.

에스크로는 입점 판매자에게 지급할 결제 대금을 거래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중개 지급하는 방식을 말한다. 플랫폼 업체가 판매자에게 결제 대금을 직접 지급하지 않기 때문에 제2의 티메프 사태를 막을 방법으로 거론되고 있다.

간담회에 참석한 이커머스 플랫폼 스타트업 대표들은 에스크로 의무화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조용민 머스트잇 대표는 “이커머스는 정산 대금을 받아서 판매자의 결제 대금을 다시 정산해 주거나 취소가 발생하면 고객에게 환불을 해주는 시스템”이라며 “이 모든 금액을 제3의 기관에 예치해 업무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현석 온다 대표는 “예수금을 잘 운영해서 서비스를 개선하고 신뢰를 기반으로 커가는 게 플랫폼 산업”이라며 “티메프 사태는 경영 실패이거나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일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에스크로 제도가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한다”고 밝혔다.

김동환 백패커 대표는 모금을 통해 먼저 정산한 뒤 제품 제작에 돌입하는 핸드메이드·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의 경우 에스크로 제도 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공예품은 제작 기간이 모두 다른데 획일화된 정산 주기를 도입하면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지하 트립비토즈 대표는 “안심결제를 전방위적으로 모든 플랫폼에 도입하는 것이 큰 문제”라며 “이런 논의만으로도 전자상거래 생태계에 큰 타격”이라고 말했다. 특히 국내 스타트업들의 경쟁 상대인 해외 플랫폼에는 적용할 수 없어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스타트업 업체들은 제2의 티메프 사태를 막기 위한 방안 마련에는 공감했다. 이들은 플랫폼의 경영 상태를 미리 파악할 수 있도록 사전 고지 의무를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조 대표는 “티몬이 감사 의견 거절을 받은 것처럼 플랫폼의 재무 건전성을 가늠할 수 있는 제도는 이미 존재한다”며 “이에 대한 정보 제공을 강화해 입점사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대표는 “일부의 경영 실패로 인해서 모든 플랫폼을 규제해야 한다는 것은 과도한 일반화”라며 “제도 준수를 위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대기업으로 결국 독점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말하며 면밀한 검토를 당부했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스타트업계는 정부의 안심결제 의무화 방안이 혁신을 저해하고 국내 스타트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명확히 표명했다. 향후 정부와 업계 간의 추가적인 논의와 조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