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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에서 춤추는 CEO’ 재미를 발명하는 기업가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보통 책임감을 갖추고, 신중해지며,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들을 포기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과연 그런 것일까. 리처드 브랜슨(Richard Branson)이라는 인물을 보고 있노라면,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의 이야기는 역설적이게도 실패에서 시작한다. 어린 시절부터 선천성 난독증을 앓았던 브랜슨은 학교에서 늘 꼴찌를 도맡았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의 차이도 구분하지 못했다. 결국 열여섯 살에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직후 ‘스튜던트’ 잡지를 창간했다. 1970년 영국의 한 중퇴생이 잡지를 만든다는 것은 무모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그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재미있는 일이 그를 영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가 중 한 명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어쩌면 그의 도전정신은 유전자에 새겨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어머니는 네 살배기 아들을 집에서 5km 떨어진 곳에 홀로 두고 집을 찾아오게 했고, 열두 살 때는 80km 거리를 자전거로 주파하게 했다. 89세에 라틴 아메리카 사교댄스 시험에 합격하고, 90세에 골프 홀인원을 기록하고, 99세에 세계일주 크루즈 여행을 떠난 할머니도 있었다. 브랜슨의 DNA에는 이미 도전과 모험의 코드가 깊이 새겨져 있었던 셈이다.

브랜슨의 이력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특이한 패턴이 발견된다. 그의 모든 사업은 마치 아이가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했을 때처럼 시작되었다. “이거 재미있겠는데?”라는 생각이 그의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이런 재미있는 발상들은 결코 우연히 떠오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키워나갔다.

브랜슨은 늘 질문을 던진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질문을 하면서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을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깊이 있게 듣는다. 그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은 대부분 휴가 중이거나, 하이킹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테니스를 치거나, 책을 읽거나, 식탁에 앉아있을 때(때로는 그 위에서 춤을 출 때!) 떠오른다. 이런 그의 발상법은 일반적인 기업가들과는 사뭇 다르다. 음반 가게를 열 때도 그랬고, 우주여행 사업을 구상할 때도 그랬다. 특히 버진 항공의 시작은 그의 기발한 상상력을 잘 보여준다. 1979년, 약혼녀와 함께 버진 아일랜드에서 휴가를 보내고 푸에르토리코로 가려던 그는 비행기가 만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주저 없이 2,000달러짜리 전세기를 예약했다. 주머니에 200달러도 없었지만, 그는 공항과 호텔을 돌아다니며 ‘버진 항공사, 푸에르토리코행 39달러’를 외쳤다. 순식간에 표가 매진되었고, 그는 계약금을 낼 수 있었다. 심지어 공짜표 두 장과 약간의 이익까지 남겼다. 그의 상상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장난스러운’ 시작이 거의 매번 성공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역설적인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보통 기업가들은 나이가 들수록, 성공할수록 더 보수적이 되고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된다. 하지만 브랜슨은 달랐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 대담한 도전을 했다. 마치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처럼, 그의 도전은 점점 더 과감해졌고 더 재미있어졌다.

버진 그룹이라는 거대 기업의 DNA에는 이런 그의 이중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400여 개가 넘는 계열사들은 겉보기에는 매우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마치 거대한 놀이터 같다. 직원들은 일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객들 역시 서비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축제에 참여하는 것 같은 경험을 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그의 실패를 대하는 태도다. 보통의 기업가들은 실패를 치명적인 손실로 여긴다. 하지만 브랜슨에게 실패는 그저 놀이의 한 과정일 뿐이었다. 마치 레고를 조립하다 실수로 무너뜨린 아이가 웃으며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그는 실패 앞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이런 그의 태도는 직원들에게도 전염되었다. 버진 그룹의 직원들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규칙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라는 브랜슨의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조직의 생활방식이 되었다. 그는 직원들을 흥미로운 사람들로 채우고, 그들이 가장 추상적인 아이디어도 자신 있게 공유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모든 아이디어는 기록되고, 그 과정은 즐겁게 진행된다. 이것은 어쩌면 가장 성숙한 형태의 조직 문화가 아닐까.

하지만 이런 ‘놀이하는 문화’가 무책임함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브랜슨의 놀이에는 항상 깊은 책임감이 따랐다. 그는 환경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사회적 책임을 중요하게 여겼다. 2007년 그가 ‘지구를 구할 영웅’으로 선정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의 놀이는 항상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성숙함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발견하게 된다. 진정한 성숙함이란 재미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를 통해 책임을 다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브랜슨은 이것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해 보였다. 그는 어른이 되면서 소년의 마음을 잃지 않았고, 소년의 마음을 간직하면서도 어른의 책임을 다했다.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큰 아이러니 중 하나는, 수익만을 좇는 기업들이 오히려 적은 수익을 내고, 재미를 추구하는 기업이 더 큰 수익을 낸다는 점이다. 브랜슨은 이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수익이 아니라 즐거움을 좇으라”는 그의 조언은 단순한 처세술이 아니라, 깊은 통찰에서 나온 것이다.

고객 서비스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고객 서비스를 비용으로 여기는 반면, 브랜슨은 이를 또 다른 놀이의 기회로 보았다. 그의 항공사 승무원들은 마치 무대 위의 배우처럼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한다. 이것은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하나의 공연이 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런 접근이 더 높은 고객 만족도로 이어졌다.

2021년, 일흔이 넘은 나이에 자신의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날아올랐을 때도 브랜슨의 얼굴에는 여전히 소년의 웃음이 깃들어 있었다. 그 모습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나이가 들수록 재미를 잃어가는 걸까. 성장이란 정말 재미없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특히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가속화되는 이 시대에, 브랜슨의 이런 모습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기계는 효율성과 정확성에서는 인간을 능가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놀이하는 능력, 즉흥적인 창의성, 순수한 열정에서는 결코 인간을 따라올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미래 시대에 인간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이 아닐까.

브랜슨의 삶은 우리에게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른이 되는 것이 반드시 재미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 오히려 진정한 어른이란 소년의 마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책임을 다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지혜가 아닐까.

“나는 만약 어떤 일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면, 드디어 다른 일을 찾아야 할 때가 된 것이라고 믿는다.” 브랜슨의 이 말은 단순한 처세술이 아니다. “행복하지 않게 시간을 보내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다”는 그의 철학은, 쉴 때조차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그의 삶의 방식이 되었다.

결국 브랜슨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그것은 이분법을 넘어서는 삶이다. 일과 놀이, 책임과 재미, 성숙함과 순수함이 하나가 되는 삶. 그가 말했듯이 “진정한 성공이란 자신이 진정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것을 창조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인생에 특별한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보여주듯이,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조금만 용기를 낸다면, 우리도 어른이 되면서도 소년의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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