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미래를 쓰는 자들
비밀을 공유한다는 것은 공모자가 된다는 뜻이다. 2010년의 어느 늦은 밤, 강남역 인근의 24시간 카페에서 우리는 미래를 다시 쓰고 있었다.
“2015년에 모바일 결제 시장이 폭발할 거라고요?”
현우가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네. 그때 저희가 놓친 가장 큰 기회였거든요. 인증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결제 시장으로 확장하지 못했죠.”
카페의 형광등 불빛이 현우의 얼굴을 창백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내가 그려준 미래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2025년까지의 IT 시장 변화, 주요 기업들의 성공과 실패, 새로 등장할 기술들. 마치 미래 세계의 지형도 같았다.
“이런 걸 혼자 알고 계셨다니…”
현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치지 않으셨나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2주 전까지만 해도 이 비밀은 나 혼자만의 것이었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압박감, 모든 선택이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두려움. 그것은 고독한 싸움이었다.
“그래서 말씀드린 거예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는 둘이서 미치면 되니까요.”
93일째 되는 날 아침, 예상대로 레인보우가 메신저 서비스를 출시했다. 현우는 약속대로 치킨을 샀다. 우리는 사무실 테라스에서 서울의 야경을 보며 치킨을 먹었다.
“이제 정말 믿으시나요?”
내가 물었다.
“처음부터 믿었어요.”
현우가 대답했다.
“다만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했죠.”
이제 우리는 본격적으로 미래를 바꾸기 시작했다. 모래시계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우리는 모든 주요 IT 기업들과 동시에 협상을 시작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행보였다.
“미쳤다고들 하더군요.”
지연이 회의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한 회사와 독점 계약을 맺는 게 더 안전할 거라고…”
“안전한 길이 정답은 아니죠.”
현우가 말을 받았다.
“가끔은 위험해 보이는 길이 실제로는 더 안전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이제 내 동반자가 되어 있었다. 미래를 아는 자의 고독을 함께 나누는 공모자. 우리는 서로를 보며 살짝 웃었다.
2011년 초, 업계에 충격적인 소식이 퍼졌다. 레인보우와 모래시계가 동시에 우리 회사의 인증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발표였다. 경쟁사들은 어리둥절했다. 어떻게 신생 기업이 업계 양대 산맥과 동시에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타이밍이에요.”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담담히 답했다.
“시장이 원하는 것을 정확한 시점에 제공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현우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단순한 타이밍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이 순간을 위해 6개월을 준비해왔다. 2025년의 기억을 바탕으로, 모든 변수를 계산하고 최적의 순간을 기다려온 것이다.
“다음은 뭔가요?”
늦은 밤, 현우가 물었다.
“가상화폐예요.”
내가 답했다.
“2012년부터 조용히 준비를 시작해야 해요. 2017년에 폭발적으로 성장할 테니까요.”
“또 미친 소리를 하시네요.”
현우가 웃었다.
“근데 이상하게 설레네요.”
우리는 다시 노트북을 펼쳤다. 새로운 미래를 그리기 위해.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
창밖으로 2011년의 서울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직 아무도 모르는 미래가 저 불빛 사이로 숨어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미래를 우리 손으로 다시 쓰고 있었다.
“가끔 두렵지 않으세요?”
현우가 문득 물었다.
“미래를 바꾼다는 게…”
“매일 두려워요.”
내가 답했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잖아요.”
깊어가는 밤, 우리는 계속해서 미래를 그려나갔다.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진지하게. 이것은 어쩌면 시간과의 체스게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두 명의 플레이어가 있었다.
“근데 말이에요.”
커피를 마시며 현우가 말했다.
“2025년의 저는 어땠나요?”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2025년에 그가 회사를 떠났다는 것을, 우리가 서로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이번에는 다를 거예요.”
결국 나는 그렇게 답했다.
“우리가 다르게 만들 테니까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도 짐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돌아온 이유를, 우리가 바꿔야 할 것들을.
git commit -m “feat: rewriting future together”
git push origin new-timeline
밤이 깊어갔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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