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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의 시간’ – 시간을 디버깅하다 #13

제13화: 선택의 대가

때로는 가장 큰 성공의 순간이 가장 큰 고독을 가져온다. 2023년 겨울, 나는 강남 오피스의 최상층에서 그런 고독을 맛보고 있었다.

“시가총액 20조를 돌파했습니다.”
지연이 보고를 마치고 회의실을 나갔다.

허름한 오피스텔에서 시작한 회사가 이제는 국내 5대 기업 반열에 올랐다. 우리가 투자한 스타트업들은 하나같이 유니콘으로 성장했고, AI 특허만 해도 수백 건을 보유하고 있었다. 2025년의 기억 속 회사는 이미 저 멀리 뒤쳐져있었다.

“후회하지 않으세요?”
현우가 문득 물었다.
“너무 많이 바꿔버린 것 같은데…”

창밖으로 서울이 내려다보였다. 2025년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우리가 만든 변화는 이제 도시의 스카이라인마저 바꿔놓고 있었다.

“가끔은 두렵죠.”
내가 답했다.
“이제는 정말 미래를 모르니까요.”

현우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에는 13년 전 우리의 첫 번째 코드가 떠있었다.

“이거 기억나세요? 인증 모듈 첫 버전…”
그가 말했다.
“당시에는 이상했어요. 준서 씨가 마이크로서비스를 고집하시던 것도, 블록체인을 미리 준비하자던 것도…”

나는 숨을 들이켰다. 이 순간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뛰어난 통찰력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레인보우의 메신저 출시를 정확히 맞추셨죠. 모래시계의 불법 행위도 미리 아셨고…”

창밖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지난주에 우연히 봤어요.”
현우가 말을 이었다.
“2025년 6월 15일자 뉴욕타임즈 인터뷰 준비하시던 걸…”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화장실 거울 속에서 시간이 거꾸로 흐르던 순간.

“거기까지는 괜찮았어요.”
현우가 웃었다.
“미래에서 오신 거라고 해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의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

“하지만 이제는 어떨까요? 우리가 만든 이 새로운 미래가… 정말 좋은 걸까요?”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모르겠어요.”

현우가 의외라는 듯 나를 바라봤다.

“처음에는 모든 게 확실했어요. 실수를 바로잡고, 더 나은 선택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은…”

말을 멈추고 창가로 걸어갔다. 눈발 사이로 테헤란로가 흐릿하게 보였다.

“시간을 바꾼다는 건, 책임을 진다는 거예요. 모든 나비효과에 대한…”
내 목소리가 작아졌다.
“우리가 만든 이 새로운 미래가, 어쩌면 더 큰 재앙이 될 수도 있는 거죠.”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는 없잖아요.”
현우가 말했다.

“그래서 더 무서운 거예요.”
내가 답했다.
“이제는 정말 우리 둘만이 알 수 있는 비밀이니까…”

밤이 깊어갔다. 눈은 계속 내렸다. 13년 전 그날, 시간을 거슬러 온 순간의 선택이 이제야 진정한 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준서 씨.”
현우가 조용히 불렀다.
“우리가 만든 이 미래… 적어도 지금까지는 나쁘지 않았어요.”

그의 말은 위로보다는 확신에 가까웠다.

“우리가 해낸 일들을 보세요. AI 혁명도 미리 준비하고 있고, 유니콘들도 성장시켰고… 무엇보다 우리 회사는 더 이상 냉혹한 기업이 아니에요.”

그의 말이 맞았다. 2025년의 기억 속 회사는 성장만을 쫓는 차가운 조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달랐다.

“아마도…”
현우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이게 운명이었을지도 모르죠. 준서 씨가 돌아오신 것도, 제가 알게 된 것도…”

밤하늘에 눈이 흩날렸다. 마치 시간의 결정처럼.

git commit -m “feat: sharing the weight of time”
git push origin timelines-crossed

우리는 이제 진정한 공범자가 되었다. 시간을 거스른 자와, 그 비밀을 알게 된 자. 새로운 미래를 향한 여정에서,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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