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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회생의 길, 그 불확실한 여정”

조주연 홈플러스 사장

아직도 ‘홈플러스’의 진열대에 놓여진 물건들은 무심한 듯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세상에, 그 웅장한 유통공룡이 파산의 문턱에 섰다니. 한때 한국 대형마트 업계의 양대산맥이었던 그들이, 이제는 법원의 손을 빌려야 할 만큼 몰락했다니. 그게 현실이었다.

오늘(14) 오전,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본사에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조주연 사장은 단정한 정장차림으로 단상에 섰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어조로 회생 절차의 진행 상황을 설명했다.

“이번 회생절차로 인해 불편을 겪고 계신 협력사, 입점주, 채권자 등 모든 분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가 말한 ‘불편’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많은 현실을 함축하고 있는지. 누군가에게는 미지급된 납품대금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확실한 미래다.

지난 3월 4일, 홈플러스는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그것은 대형마트라는 사업 모델의 한계를 인정하는 행위였다. 온라인 쇼핑몰의 성장, 코로나19 이후 변화된 소비 패턴, 그리고 고금리 시대의 재정적 부담. 이러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한때 국내 유통업계의 거인이었던 홈플러스를 법원의 보호 아래로 몰아넣었다.

조 사장은 사실에 근거한 숫자들을 나열했다. “13일까지 상거래채권 중 3400억원을 상환 완료했으며 대기업과 브랜드 점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세업자 채권은 곧 지급 완료될 것입니다.” 그는 또한 “13일 현재 기준 현금시재가 약 1600억원”이라고 덧붙였다.

숫자는 객관적이지만, 그 의미는 주관적이다. 누군가에게 3400억원은 엄청난 금액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일 수 있다. 경영의 세계에서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회생절차 개시 이후 홈플러스의 매출이 오히려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조 사장에 따르면, 지난 4일 이후 한 주간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4% 증가했으며, 고객 수도 5% 늘었다고 한다. 이는 마치 오래된 서점이 폐업 세일을 시작하자 갑자기 사람들로 북적이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인간의 소비 심리는 때로 예측불가능한 방향으로 흐른다.

홈플러스의 회생 가능성은 어떨까? 조 사장은 “2022년 선보인 식품특화 매장인 홈플러스 메가푸드마켓 점포의 매출 증가 및 온라인부문 성장, 그리고 멤버십 회원 수가 1100만명을 초과”한다며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희망과 현실 사이의 거리는 때로 생각보다 멀 수 있다. 그리고 그 거리를 좁히는 것은 단순한 결의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현실적으로 모든 채권을 일시에 지급해 드리기는 어렵기 때문에 소상공인과 영세업자 분들의 채권을 우선순위로 해 순차적으로 지급 중에 있습니다.”

그의 말속에는 대기업 협력사들에 대한 요청이 담겨 있었다. “대기업 협력사들이 조금만 양보해 준다면 분할상환 일정에 따라 반드시 모든 채권을 상환하겠습니다.” 이것은 바다에서 조난당한 사람이 지나가는 배에게 보내는 구조 신호와도 같았다.

홈플러스의 미래는 기업의 자구 노력뿐만 아니라, 시장 환경, 소비자 선택, 그리고 채권자들의 인내에 달려 있다. 그것은 마치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복잡한 게임과 같다. 각자의 선택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최종 결과는 그 모든 선택의 합으로 결정된다.

한 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주말을 보냈던 대형마트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소비하는 방식, 쇼핑하는 방식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으며, 그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홈플러스의 위기는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그 사실을 상기시키는 하나의 사건일지도 모른다.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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