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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접기의 법칙’ 20주년 야놀자와 AI 여행의 미래

이수진 야놀자 충괄대표

누군가는 한국의 2000년대를 ‘플랫폼의 시대’라고 부를 것이다. 수많은 스타트업이 ‘한국판 00’를 꿈꾸며 등장했다가 사라졌고, 그 틈새에서 살아남은 기업은 이제 1조 클럽에 입성했다. 숙박 플랫폼 야놀자의 창립 20주년 행사는 이런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4월 2일, 판교 텐엑스타워에서 또 다른 플랫폼의 미래가 논의되고 있었다.

‘Re:Imagine What is Possible’라는 다소 슬로건 아래, 4천여 명의 야놀자 임직원이 온·오프라인으로 모였다. 온라인 참여자 중에는 인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이들은 한때 한국의 모텔 예약 사이트였던 회사가 어떻게 28개국 70개 오피스를 거느린 글로벌 기업이 되었는지를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었다.

이수진 총괄대표는 연단에 서서 야놀자의 지난 20년을 요약했다. 2005년 열악한 환경 속 B2B 웹사이트로 시작한 회사는 2007년 B2C로 피벗했고, 2011년 모바일 앱으로 다시 한번 변신했다. 2015년에는 ‘리스타트’를 선언하며 호텔, 해외 숙박, 레저, 교통, 항공까지 아우르는 ‘슈퍼앱’을 표방했다. 이런 변화의 과정은 한국 IT 산업의 전형적인 성공 서사를 따르고 있었다. ‘정확한 타이밍에 적절한 방향 전환’이라는 공식이 야놀자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단순한 숙박 플랫폼을 넘어 Global No.1 Travel Tech Company로 도약할 것입니다.”

이 대표의 말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누적 투자금 2조 5천억 원, 2025년 예상 매출 1조 원이라는 숫자가 그 뒤에 있었다. 특히 2019년 인도 호텔 솔루션 기업 ‘이지 테크노시스’ 인수와 2023년 206개국 대상 글로벌 데이터 인프라 구축은 이 회사가 더 이상 단순한 ‘국내 1위 플랫폼’이 아님을 증명했다.

흥미로운 것은 야놀자가 그리는 미래의 모습이다. AI와 데이터를 결합한 ‘하이퍼 커넥터(Hyper-connector)’를 자처하며, 파편화된 전 세계 여행 데이터를 하나로 연결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는 ‘데이터 주권’이 화두가 된 시대에 상당히 도전적인 목표다. 각국의 여행 데이터는 문화적, 정치적 맥락과 얽혀있고, 이를 통합한다는 것은 단순한 기술적 과제를 넘어선다. 그러나 야놀자는 이 복잡한 문제를 ‘AI’라는 마법의 단어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새롭게 공개된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야놀자 오렌지’라는 컬러를 전면에 내세웠다. 여행지에서 마주하는 석양처럼 따뜻한 감성을 담았다고 하지만, 사실 이 컬러는 배달의민족, 당근마켓 등 한국의 주요 플랫폼들이 선호해온 ‘밝은 톤의 노출도 높은 색상’이라는 공식을 따른 것에 가깝다. 디자인의 독창성보다는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 선택이었다.

행사장 내부에서는 AI, 휴머노이드, 자율주행 등 기술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여행자에게는 맞춤형 생성형 AI 서비스를, 여행 사업자에게는 AI 에이전트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청사진이 제시됐다.

행사 막바지에 나온 축전 영상이 눈길을 끌었다.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 가수 싸이, 아데나 프리드먼 나스닥 CEO 등이 차례로 등장했다. 특히 나스닥이 뉴욕 타임스퀘어 빌보드에 띄운 축하 메시지는 한국의 스타트업이 거둔 성과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순간을 보여줬다. 2005년 작은 커뮤니티로 시작한 회사가 이제는 글로벌 금융의 중심지에서 축하받는 위치에 오른 것이다.

이수진 대표는 마지막으로 임직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의 가능성을 믿어 보시겠습니까? Global No.1 Travel Tech Company를, 우리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보시겠습니까?” 그는 자신이 말한 ‘종이 접기의 법칙’을 믿는 듯했다. 종이 한 장도 여러 번 접으면 엄청난 두께가 된다는 원리처럼, 작은 혁신들이 모여 상상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믿음.

종이를 몇 번 접을 수 있을지는 종이의 크기와 질에 달려 있다. 야놀자가 가진 기술과 데이터, 그리고 글로벌 네트워크라는 ‘종이’가 얼마나 더 접힐 수 있을지는 앞으로 10년이 증명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AI가 추천하는 여행 일정을 따라, 어쩌면 더 편리하고 예측 가능한 여행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과연 여행의 본질에 더 가까운 경험일지, 아니면 또 하나의 디지털 소비에 불과할지는 여전히 열린 질문으로 남아있다.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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