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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미커가 5년 만에 돌아와 말하는 것 ‘AI의 전례 없는 속도’

(c) BOND

메리 미커(Mary Meeker)가 5년 만에 다시 보고서(Trends –Artificial Intelligence)를 썼다. 그녀가 설립한 벤처캐피탈 본드(BOND)를 통해 발표한 이 문서는 340페이지에 달한다. 주제는 AI다.

‘인터넷의 여왕’이라 불리며 1995년부터 기술 트렌드를 예측해온 그녀가 왜 지금 AI에 주목하는가. 답은 데이터에 있다.

그녀는 이 보고서에서 ‘전례 없는(unprecedented)’이라는 표현을 51번 사용했다. 과거 인터넷과 모바일의 변화를 지켜본 사람이 이런 표현을 반복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먼저 ChatGPT의 성장을 살펴보자. 2022년 11월 출시 후 17개월 만에 주간 활성 사용자가 1억 명에서 8억 명으로 증가했다.

1억 사용자 도달 시간을 비교하면 더 극명하다. ChatGPT는 2개월, 인스타그램은 2.5년, 넷플릭스는 10.3년이 걸렸다.

확산 패턴도 다르다. 출시 3년 차에 전체 사용자의 90%가 북미 외 지역에서 나왔다. 인터넷이 미국에서 시작해 점진적으로 확산된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연간 검색량으로도 ChatGPT는 2년 만에 3,650억 건에 도달했다. 구글이 같은 수준에 이르는 데는 11년이 걸렸다. 이 숫자들이 말해주는 것은 명확하다. 기술 채택의 속도가 과거와는 다른 차원에 있다는 것이다.

투자 규모를 보면 변화가 더욱 뚜렷하다. 미국 빅테크 6개사의 2024년 자본지출은 2,120억 달러로 전년 대비 63% 증가했다. 매출 대비 비중도 15%로 10년 전 8%에서 크게 늘었다.

그 중에서도 엔비디아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10년간 매출이 28배 증가했다. 2024년 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8% 늘어난 390억 달러를 기록했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 자본지출에서 엔비디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달한다. 그래픽 카드를 만들던 회사가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 공급업체가 된 것이다.

AI 경제학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모순적 구조다. 한쪽에서는 비용이 치솟고, 다른 쪽에서는 급락하고 있다.

모델 훈련 비용은 8년간 2,400배 증가해 현재 최대 10억 달러 수준이다. 앤트로픽 CEO 다리오 아모데이는 “100억 달러짜리 모델 훈련이 2025년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반면 추론 비용은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2022년 11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99.7% 감소했다. 엔비디아 GPU의 토큰당 에너지 소비량은 10년간 10만 5천 배 줄었다.

이런 비용 구조 변화의 결과는 분명하다. 개발자 생태계가 폭발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엔비디아 생태계 개발자는 7년간 6배 증가해 600만 명에 달한다. 구글 생태계는 1년 만에 5배 늘어 700만 명을 기록했다. 과거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거대 기업만이 감당할 수 있었던 AI 기술을 이제는 대학생도, 스타트업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기업 현장에서의 변화는 어떨까. S&P 500 기업의 50%가 실적발표에서 AI를 언급하고 있다. 미국 기업의 7%가 AI를 도입했으며, 분기 대비 21% 증가했다.

구체적인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AI 어시스턴트 ‘에리카’는 2018년 출시 이후 25억 건의 상호작용을 기록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AI 제품 연간 매출은 전년 대비 175% 증가한 130억 달러다.

생산성 향상도 입증되고 있다. 스탠포드 연구에 따르면 AI를 사용하는 고객서비스 직원의 시간당 처리 건수가 14% 증가했다. 미국 직장인의 72%가 AI 도구로 업무 효율성이 향상됐다고 답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변수가 하나 있다. 중국이다.

중국 AI 기업들의 성과가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딥시크 R1 모델은 수학 문제 해결에서 93% 정확도를 보였다. OpenAI o3-mini의 95%에 근접한 수준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효율성이다. 중국 모델들이 미국 모델 대비 현저히 낮은 훈련 비용으로 비슷한 성능을 달성하고 있다.

사용자 점유율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데스크톱 기준 딥시크의 글로벌 사용자 점유율이 2월 대비 4월 10%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AI에 대한 인식도 지역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2024년 조사에서 중국인의 83%가 AI의 이익이 단점보다 크다고 답했다. 반면 미국인은 39%에 그쳤다. 이는 단순한 설문조사 결과가 아니라 두 문화가 기술을 바라보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또 다른 변화는 오픈소스의 급성장이다. 메타의 라마 모델 다운로드 수가 8개월 만에 3.4배 증가해 12억 건을 기록했다. 허깅페이스 등록 AI 모델 수는 2022년 3월 3만 5천 개에서 2024년 11월 116만 개로 33배 늘었다.

성능 격차도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오픈소스 모델들이 폐쇄형 모델과 비슷한 수준의 성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메타 CEO 마크 저커버그는 “2025년이 오픈소스가 주류가 되는 해”라고 전망했다.

AI의 영향은 디지털 세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물리적 세계로의 확산이 가속화되고 있다.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 누적 주행거리가 33개월 만에 100배 증가했다. 웨이모는 샌프란시스코에서 20개월 만에 자율주행 택시 시장점유율 27%를 차지했다.

인프라 구축 속도도 놀라울 정도다. xAI의 콜로서스 데이터센터는 122일 만에 완공됐다. 미국 평균 주택 건설 기간 234일의 절반 수준이다.

농업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카본로보틱스가 AI 레이저 제초기로 23만 에이커를 처리하며 10만 갤런의 제초제 사용을 줄였다. 이는 AI가 환경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노동 시장의 변화는 더욱 직접적이다. AI 관련 채용공고가 2018년 대비 448% 증가했다. 반면 비AI IT 직종은 9% 감소했다.

AI 관련 신규 직무 타이틀은 2022년 2분기부터 2024년 2분기까지 200% 늘었다. 엔비디아 젠슨 황 CEO는 이렇게 말했다. “AI에게 일자리를 잃는 것이 아니라 AI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생존법칙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더 흥미로운 변화가 감지된다. 아직 26억 명이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처음 인터넷을 경험할 때 마주하게 될 것은 AI일 가능성이 높다.

스타링크 등 위성 인터넷 서비스 확산이 이런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실제로 ChatGPT 모바일 앱 사용자의 14%가 인도에서, 9%가 미국에서 나온다.

AI가 서구 중심이 아닌 진정한 글로벌 현상이 되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빠른 성장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은 여전히 과제다.

OpenAI는 2024년 37억 달러 매출을 올렸지만 컴퓨팅 비용이 50억 달러였다. 주요 AI 스타트업들의 기업가치 대비 매출 배수는 30-80배에 달한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이런 초기 손실이 반드시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마존은 1997-2003년 27분기 동안 30억 달러 손실을 냈다. 그러나 이후 27분기 동안 1,760억 달러 순이익을 기록했다.

현재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메타 CTO 앤드류 보스워스는 이를 “우주 경쟁”에 비유했다. AI 리더십이 지정학적 리더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브래드 스미스 부회장은 더 직설적이다. “미중 간 국제 영향력 경쟁에서 가장 빠른 선점자가 승리할 것이다.”

미커는 이 모든 변화를 종합해 이렇게 전망한다. “향후 10년간 AI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인터넷이 그랬듯이 AI도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 것이라는 예측이다.

변화의 속도가 핵심이다. 전기 비용이 50% 하락하는 데 25년이 걸렸다. 컴퓨터 메모리는 20년이었다. 하지만 AI 추론 비용은 2년 만에 같은 수준의 하락을 보였다.

결국 이는 적응의 문제다. 새로운 도구를 받아들이고, 그 변화 속도에 맞춰 우리 자신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미커의 보고서는 그 변화의 규모와 방향을 보여준다. 이제 우리가 그 변화를 어떻게 활용할지 결정할 차례다.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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