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명 팀을 3명으로 줄였더니…개발 속도는 오히려 빨라졌다

거절과 배팅
한킴은 마이리얼트립을 세 번 거절했다. “너무 힘들다. 여러 도시의 가이드를 다 포섭하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 그런데 이동건이 올 때마다 숫자가 계속 증가했다. 마지막엔 협박처럼 물었다. “오늘도 거절하실 겁니까?”
투자했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여행 산업이 멈췄다. 한킴은 더블다운을 결정했다. “5년 안에 코로나가 끝나면 굉장히 큰 기업이 될 수 있다.” 한 파트너가 물었다. “10년 가면 어떡하냐?” 한킴이 답했다. “10년 가면 우리 다 끝났어.”
그 배팅은 맞았다. 이제 마이리얼트립은 또 한 번 승부를 걸고 있다. 13년 된 이 회사를 AI 조직으로 완전히 바꾸는 실험이다.
6일 서울 강남구 아모리스 역삼에서 열린 채널콘 2025에서 알토스벤처스 한킴 대표와 마이리얼트립 이동건 대표가 ‘AI 시대, 성장하는 기업은 뭐가 다를까’를 주제로 40분간 대화를 나눴다. 채널코퍼레이션 김재홍 CRO가 진행을 맡았다.
모바일 시대의 후회
이동건은 2012년에 창업했지만 2015년에야 앱을 출시했다. 3년을 허비한 이유는 단순했다. “앱으로 몇백만 원짜리 여행 상품을 살 리 없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틀렸다. 1년 만에 경쟁사에 따라잡혔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창업자의 상상력이 빈곤하면 회사가 위기로 가는구나. 다음에 모바일 급의 변화가 오면 누구보다 빠르고 과감하게 움직이겠다고 다짐했죠.”
넥스트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블록체인, 크립토, NFT가 넥스트일까 고민하다가 2022년 말 챗GPT 발표를 봤다. “이게 넥스트다 싶었습니다.”
이동건은 조직을 움직이려 했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챗GPT가 얼마나 좋은지 계속 이야기했어요. 근데 구성원들도 다 압니다. AI가 좋다는 걸. 집에서는 잘 써요. 그런데 회사에서는 쓸 이유가 없는 거예요. 어제까지 하던 일하는 방식이 있는데, 어떤 발표가 나왔다고 해서 오늘 그 방식을 바꿀 이유가 없죠.”
이동건은 깨달았다. 설득으로는 안 된다.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인위적 결핍
“인위적 결핍”이라고 불렀다.
제품을 하나 출시하려면 최소 8~9명이 필요하다. iOS 엔지니어, 안드로이드, 프론트엔드, 백엔드, QA, DA, PM, UX 디자이너. 마이리얼트립은 일부러 3명만 배정했다.
김재홍 CRO가 놀라 물었다. “3명이요?”
“마이리얼트립 앱을 설치하면 오늘 출시한 기능을 보실 수 있습니다. ‘리셀마켓’이라고, 여행 중고 상품을 거래하는 마켓플레이스인데요. 이걸 두 명이 만들었어요.”
청중석이 술렁였다. 채팅창에 “두 명이요?”라는 질문이 쏟아졌다.
이동건이 설명을 이어갔다. “본인이 안드로이드 엔지니어인데 iOS까지 출시를 맡아야 한다면, AI를 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8~9명이 팀을 이루면 조율에 엄청난 시간이 듭니다. 그런데 2~3명이 되면 내가 믿는 대로 만들 수 있습니다. A부터 Z까지 내 판단대로 작업할 수 있게 되죠. 모바일 시대에 제가 가장 답답했던 게 바로 그 분업과 조율이었습니다.”
단, 조건이 있었다. “인위적 결핍으로 인한 고생을 절대 무시하면 안 됩니다. 8명 치 일을 3명이 했다면, 그 3명은 모바일 시대에 3명이 받던 것보다 훨씬 높은 보상을 받아야 합니다.”
실험은 성공했다. 올해 여름, 더 큰 결정을 내렸다.
“엔지니어 직군을 모두 하나로 통합했습니다. iOS, 안드로이드, 백엔드, 프론트엔드로 나뉘어 있던 직군을 ‘프로덕트 엔지니어’라는 단일 직군으로 통합했고, 연말까지 두 번째 언어, 두 번째 영역을 다루는 걸 목표로 사내 교육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교육은 정규 시간에 진행된다. “퇴근 후가 아니라 정규 근무 시간에 교육을 받습니다. 그래서 당장의 개발 속도는 오히려 느려졌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투자가 회사 차원에서 반드시 일어나야 우리가 원하는 트랜스포메이션이 가능합니다.”
김재홍 CRO가 물었다. “대표님, 토큰 사용량을 공개하고 계신가요?”
“여름부터 리더보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개발자보다 다른 직군 분이 상위권에 올라가기도 합니다.”
이동건이 강조했다. “최상위 리더가 AI를 보고 ‘써봐’라고만 하는 게 최악입니다. 본인은 안 쓰면서요. 최상위 리더가 가장 열심히 써야 실제 변화가 일어납니다.”
채용 기준도 바뀌었다. “유연함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됐습니다. 마이리얼트립은 조직 개편도 잦고, 일하는 방식의 재정의, 사라지고 생기는 포지션 등 지속적으로 큰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한번 해보지 뭐’ 정도로만 열려 있어도 훨씬 수월합니다. 반면 커리어 계획이 촘촘한 분들은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리더의 고백
변화는 순탄하지 않았다. 이동건이 말했다.
“모바일 시대에는 모든 게 창출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앱 개발자라는 직업이 새로 생기고, 앱스토어가 나오고. 그런데 AI는 창출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사라지는 것도 많습니다. 그래서 리더가 조직에 메시지를 던질 때, 마냥 희망적으로만 던지기 어렵습니다.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움과 희망이 공존하거든요.”
그는 자신의 방식을 돌아봤다. “모바일 시대에 대한 후회가 컸기 때문에, 제 최우선 과제는 필요한 변화를 제때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한 가지만은 확신한다. “이런 변화가 구성원들에게도 훗날 마이리얼트립을 떠나서도 의미있는 변화라고 믿기 때문에 강하게 추진하는 겁니다. 마이리얼트립도 좋아지지만 팀원들의 개별 커리어나 미래 커리어 관점에서도 100% 의미있다고 확신합니다.”
확산
한킴이 말했다. “마이리얼트립처럼 하지 않으면 굉장히 절망스러운 상황입니다.” 알토스 포트폴리오 기업 대부분이 팀 규모를 줄였다. 8~9명을 2~3명으로. 주기적으로 사례를 공유하고, 대표와 CTO들이 모여 경험을 나눈다.
한킴이 자신들의 변화도 공유했다. “AI 전문가를 채용했습니다. 각국의 AI 기술을 이해하고 우리에게 설명하는 게 임무죠. 그런데도 어려워서, 그 설명을 챗GPT에 넣어 ‘중학교 1학년 수준으로 설명해달라’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정리했다. “어느 순간 AI 없이는 일하기가 괴롭고 힘들어졌습니다.”
시장도 바뀌었다. 한킴이 말했다. “예전에는 한국 시장에서 2~3년 국내 경쟁만 있었습니다. 이제는 ‘잘하는 것 같다’ 싶으면 한 달 안에 전 세계에서 경쟁자가 들어옵니다. 반대로 한국 회사들도 해외로 빠르게 나갈 수 있습니다. 훨씬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합니다.”
이동건이 마이리얼트립의 방향을 밝혔다. “저희에게 글로벌은 인바운드입니다. 지금 한국은 외국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됐고, 인바운드 전망이 어느때보다 좋습니다.”
코로나 때 한킴의 결정이 떠올랐다. “5년 안에 끝나면 굉장히 큰 기업이 될 수 있다.” 지금 마이리얼트립과 알토스는 또 한 번 배팅하고 있다. 13년 된 회사를 AI 조직으로 바꾸는 실험. 그 실험은 산업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40분 세션이 끝났다. 청중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