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타이완, ‘아시아의 나스닥’을 꿈꾸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아시아 자본시장의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중국 시장 진출 제약이 커지고 홍콩의 국제금융센터 지위가 흔들리는 가운데, 타이완 증권거래소(TWSE)가 아시아 혁신기업들의 새로운 상장 플랫폼으로 부상하고 있다.

타이완이 이 시점에서 적극적인 해외기업 유치에 나선 데는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다. 타이완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첨단기술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핵심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동시에 지정학적 긴장 고조로 경제적 다변화 필요성이 커진 상황이다.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전환 가속화로 아시아 스타트업들의 자금조달 수요가 급증한 것도 기회 요인이 됐다. 2025년 1월 6일 공식 출범한 ‘타이완 혁신위원회 2.0(Taiwan Innovation Board 2.0, TIB 2.0)’은 이러한 목표 실현의 핵심 수단으로 평가된다.

이번 개편의 주요 변화는 기존 30만 명의 적격투자자 제한을 전면 해제하고, 타이완 전체 1,300만 계좌 보유자에게 혁신 기업 투자 기회를 개방한 것이다. 셔먼 린(Sherman Lin) TWSE 회장 겸 CEO는 “적격투자자 제한 해제는 시장 유동성 증진과 기업 가치 평가 향상을 동시에 견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타이완이 해외 기업에게 제시하는 경쟁 우위는 기존 아시아 금융허브들과 차별화된다. TWSE의 주가수익비율(P/E) 21.3배, 주가순자산비율(P/B) 2.5배는 일본, 한국,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 주요 시장 대비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홍콩과 싱가포르 대비 타이완의 경쟁력이 부각되고 있다. 홍콩은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국제적 신뢰도가 하락했다. 상장 규제도 강화됐다. 싱가포르는 높은 진입 장벽과 까다로운 실사 과정으로 중소 스타트업들의 접근이 어려워졌다. 반면 타이완은 상대적으로 유연한 상장 기준과 합리적 비용 구조를 제공한다.

시장 규모와 유동성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했다. 2024년 기준 TWSE의 시가총액은 2조 3천억 달러(세계 12위)를 기록했으며, 일평균 거래액은 125억 달러(세계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2024년 6월 기준 1,018개 기업이 상장되어 있으며, 이 중 925개가 국내 기업, 78개가 해외 기업이다.

특히 타이완 시장의 산업 구조가 첨단기술 기업 유치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상장기업의 약 70%가 설비, 자본재, 소재, 반도체 등 기술산업 분야에 집중되어 있어, 혁신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들에게 적합한 투자 생태계를 제공한다.

2021년 도입된 타이완 혁신위원회는 수익성 조건을 배제한 상장 기준을 적용한다. 해외 기업은 타이완 내 물리적 거점 구축 없이도 상장이 가능하며, 상장 비용은 일본 대비 10분의 1 수준으로 조사됐다.

타이완 혁신위원회는 현재까지 20여 개 기업의 성공적 상장을 기록했다. BONRAYBIO, EIKEI Group(케이만), TIGERAIR TAIWAN 등 다국적 기업들이 연이어 상장을 완료했다. 특히 평가가치 기반 상장 기준 도입으로 전통적 유형자산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혁신 가치와 기술력 중심의 기업 평가가 가능해졌다.

TWSE는 2025년 국제적 확장 전략을 본격 추진하며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핵심 시장의 혁신 기업 유치를 계획하고 있다. 린 회장은 “혁신위원회 2.0는 자국 스타트업의 국내 정착과 아시아 신경제 기업들의 타이완 진출을 동시에 촉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과의 협력도 구체화되고 있다. 2025년 1월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GICON)과 타이완 최대 스타트업 육성기관인 TTA(Taiwan Tech Arena)가 CES 2025를 계기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은 양국 AI, 디지털, 콘텐츠 분야 스타트업 교류 추진과 글로벌 진출 협력, 아시아 테크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협력 체계 구축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현재까지 한국 스타트업의 TWSE 직접 상장 사례는 없으나, 양국 스타트업 생태계 교류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타이완 상장 시 고려해야 할 위험 요소들을 지적한다. 우선 중국과의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될 경우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중국어(번체) 사용으로 인한 언어 장벽과 현지 법률 체계에 대한 이해 부족이 진출 기업들의 부담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타이완 현지 네트워크 구축과 지속적인 IR 활동에 따른 추가 비용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타이완 금융감독위원회(FSC)는 Market Uplift Plan을 통해 투명하고 공정한 자본시장 구축 및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 옌량천(Yen-Liang Chen) 부위원장은 “이번 조치는 투자자들이 신흥 혁신 기업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하여 타이완의 아시아 자산관리센터가 되려는 목표에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타이완 자본시장의 2024년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타이완 가중주가지수(TAIEX)는 2024년 28.5% 상승을 기록하며 아시아 최고 성과를 달성했고, 글로벌 차원에서는 미국 나스닥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이는 주로 타이완반도체(TSMC)를 중심으로 한 AI 관련 기술주 강세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타이완벤처캐피털협회 앤디 추(Andy TC Chiu) 회장은 “이번 제도 변화가 스타트업의 자본 조달 환경 개선과 전 산업 부문의 성장 및 혁신 촉진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타이완의 해외 기업 유치 정책은 아시아 자본시장 경쟁 구도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현재 TWSE에는 925개 국내 기업과 78개 해외 기업이 상장되어 있으며, 외국인 투자자가 전체 시가총액의 40.6%를 보유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타이완의 이번 전략이 성공할 경우 아시아 스타트업 생태계에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중국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거나 홍콩 상장을 재고하는 한국 스타트업들에게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타이완의 ‘아시아 나스닥’ 구상이 현실적 제약에 부딪힐 가능성을 제기한다. 나스닥이나 런던증권거래소 같은 글로벌 거래소 대비 국제적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글로벌 기관투자자 참여도도 제한적이다. 중국의 견제 가능성 등이 장애 요인으로 지적된다.

타이완의 첨단기술 중심 산업 구조와 혁신위원회 2.0의 개방적 정책이 결합되면서, 아시아 스타트업들의 새로운 상장 허브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향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 스타트업들의 타이완 진출과 상장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지정학적 리스크와 시장 특성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자 /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전달하며, 다양한 세계와 소통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 I want to get to know and connect with the diverse world of start-ups, as well as discover their stories and tell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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